발바닥교육(14) 5월에 잊지 말아야 할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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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교육(14) 5월에 잊지 말아야 할 어른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2.05.11 09: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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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교장(순창여중)

푸르고, 높고, 시린 날들이 많은 5월이다.

가정의 달에 어른을 생각한다. ‘어른얼다에서 나온 말로 남녀가 결혼하여 성혼한 사람을 지칭한다. 즉 가정을 이루어 책임을 다하는사람이 어른이다. ‘자기를 넘어서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서 어려움과 고통, 희생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열심히 일해도 궁핍이 일상이었던 시절에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른이 많았다. 한 걸음 더, 이웃이 먹고살 수 있도록 힘듦을 마다하지 않은 어른도 많았다. 사람 사는 이 말이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을 보기 힘들 때는 산처럼 든든한 어른이 그립다. 기억과 경험은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5월에는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육십이 넘어서 아버지가 어른으로 기억되는 일들을 떠 올린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산골농촌은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마다 끼니 걱정을 하는 집이 몇 집씩 있었다. 우리집은 끼니 걱정은 덜 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와야 모내기를 할 수 있는 논, 천수답이 우리 논의 대부분이었다. 천수답의 모내기가 식구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좌우하는 시절이었다. 오월에 비가 오지 않으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그래서 아홉 개의 다랑이 논 제일 위에 물을 담아두기 위해 방죽을 팠는데, 흙이 차서 2년에 한 번씩 흙을 파내야 했다. 더 많은 물을 방죽에 담아야 모내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방죽에서 흙을 파내면서 지게질을 배웠다. 12월 초·중순에 캄캄할 때까지 아버지와 방죽 흙을 지게로 퍼냈다. 쌀쌀하고 새카만 밤에 집에 오면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지게질을 시킨다고 역정을 내고 안쓰러워 어쩔 줄 몰랐다. 아버지는 세상을 살다 보면 무슨 일을 겪고 살지 모르니까 지게질도 일찍부터 배워야 한다는 게 지론(持論)이었다. 자식이 커서 어른역할을 하는 데 낫질, 지게질, 괭이질, 삽질, 톱질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5월 말부터 시작되는 모내기철에는 어머니와 큰 다툼이 있었다. 동생들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유는 아버지가 방죽물을 빼고, 비 온 물을 가두어서 우리 논에 물이 벙벙하게 차게 되면, 어머니 몰래 밤에 물꼬를 터서 모내기가 어려운 다른 사람 논에 물을 대준다. 그렇게 애가 타도록 모은 물을 남의 논에 대주니 어머니는 천불이 난다. 당연하다.

아이고 내가 못 살아~~~. 그 아까운 물을, 어떻게 채운 물인데. 이 숫하고 숫한 양반아.”

온갖 타박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사람아, 아래 논 짓는 사람도 먹고는 살아야지. 지금 물이 조금만 더 있으면 모심을 수 있는데. 지금 못하면 올해 모도 못 심을 수 있어. 비가 더 올지도 모르고. 식구들도 많다는데.”

참으로 선()하고 어른다운 분이었다. 마을 이장을 할 때는 끼니 걱정하는 집에 어떻게든지 밀가루 한 포라도 면()에서 지원을 받아 도움을 주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집안일과 동네일을 다 해내야 했으니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날마다 일을 했다. 옆 동네에서 아버지를 아는 분들이 그 양반 일 좀 덜 해야 한다고 걱정을 했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나란히 잠든 삼형제를 보며 저 애들을 먹이고, 입히고, 어떻게 공부를 시킬까걱정으로 새벽같이 일터로 나갔다. 아버지 손톱은 평생 뒤집혀 있었고, 발톱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우리 삼형제를 대학까지 보냈다.

18년 전,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인 가을이었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날이다. 전주에서 영구차로 모신 아버지를 동네 분들이 마을 어귀에서 꽃상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자네 아버지를 상여에 모시고 묘 쓰는 곳으로 가야 하네. 그래야 자네 아버지가 애쓴 공()을 조금이라도 갚는 거네.”

아버지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책임지는 어른이 그리운 시절(時節)이다. 순창여중 아이들이 참된 어른과 만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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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순창 2022-05-11 10:04:29
고향 순창..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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