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씨앗을 움트게 하는 ‘경천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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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씨앗을 움트게 하는 ‘경천 농부’
  • 김보성
  • 승인 2024.01.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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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순창읍 순화)

필자가 경천 농부를 만난 날은 오래전, 강무(江霧)가 채 걷히지 않은,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날 무렵이다.

안개가 짙어 지척에 누군가 있는지를 눈보다는 귀로 발소리를 통해 더 빨리 알아챌 만큼 지독한 안개였는데 경천 농부는 멀리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그가 비단 산책뿐만이 아닌 허리춤에 비닐을 꿰고선 집게를 찰랑거리고 있던 까닭인데 어찌나 주울 것이 많던지 농부의 집게와 비닐은 쉴 틈 없이 찰랑거리고 또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쓰레기 줍는 희수 무렵의 농부

희수(喜壽) 무렵으로 보이는 농부에게 수고 인사를 건네고선 얼마간 걸으며 다소간의 대화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이른 시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허허~ 고생은 무슨 이게 제 일인데요. , 허허허.”

노인일자리 하시는 모양이시네요. 일은 좀 할만하신지요.”

아뇨, 돈 받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허허허.”

순간 필자는 면구스러워 주춤하고 말았다. 농부는 이른 시간에 자진하여 쓰레기를 주우러 온 것인데 필자는 평소 경천을 깨끗이 하고 청소하는 일은 비단 용역이나 근로자로서 돈을 받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태 무심코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 무렵 농부가 먼저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농부라고 생각해요. 허허.”

 

양심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

농부라고 생각한다니 무슨 뜻인고 물으니 농부는 잠시 계단에 앉아 숨을 돌리며 설명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면 쓰레기를 버릴 사람들도 나를 보고선 안 버리고 하다 보면 누군가 나처럼 자진하여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지 않겠냐고, 이른바 사람들의 양심을 키우고 거름을 주는 농부라 하였다.

그렇다면 양심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시로군요.”

농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지 않아요. 양심은 모두가 가지고 있지요. 저기 산책하는 노인도, 근처 다방에 들려 커피를 사 마시는 젊은이도 모두 다 선한 양심을 지니고 있는 법이요. 나는 다만 그 양심에 거름을 주는 셈이지요. 허허.”

농부는 여태껏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쓰레기를 줍지 않는 사람도 원망하거나 질책하는 일이 일절 없었으며 그들도 이미 무엇이 선한 양심을 행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고, 다만 그것을 행하는 것이 씨앗이 열매를 맺기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말했다.

나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게 오래전 누군가를 보고 시작한 일이에요. 종종 그분이 아침 일찍 쓰레기를 줍는 걸 봤는데 언젠 가부턴 그것이 뜸해지더니 나오지 않으시더라구요. 알고 보니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쓰레기를 줍고 다니셨다더라구요. 그 후로는 이제 제가 쓰레기를 줍고 다닙니다. 허허, 어찌 보면 저도 그 사람에게서 양심의 거름을 받은 셈이지요. 허허허.”

 

필자에게 양심의 거름을 준 농부

얼마간의 산책을 하고 대화를 마칠 무렵에는 농부의 이마에 이슬이 맺히고, 강무는 걷히고 해가 비추고 있었다.

농부는 그날 필자에게 양심의 거름을 주고 간 것이다. 마침 그 무렵에 해가 비춤은 싹이 움트게 하려 할 까닭일까.

경천의 산책로의 끝에서 얼마간 해를 쬐다가 도로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필자도 농부가 되어볼까 싶었기 때문이다. 경천 농부가 지나온 길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해서 나는 담배꽁초 두어 개를 겨우 주웠다.

근래 들어 경천 농부의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졌는데 오래전 그 당시에도 상당한 고령이었을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경천 농부는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양심의 씨앗을 움트게 하고 있을것이다.

이제는 필자와 여러분이 농부가 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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