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숨겨진 이야기(14) 순창 다녀간 유명인사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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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숨겨진 이야기(14) 순창 다녀간 유명인사들①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4.05.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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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민이 알아두면 의미 있는 이야기와 그동안 잘못 알려진 순창 관련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검증된 객관적 사실 위주로 살펴봅니다

적성 고원리 원촌마을에서 바라본 적성강(섬진강)

 

조선 전기 전라도 행정구획에서 전주에 종2품 부윤(府尹), 나주·제주·광주 세 곳에 정3품 목사(牧使), 남원 등 종3품 도호부사가 4, 4품 군수는 12, 5품 현령이 6, 6품 현감이 파견된 고을이 31곳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전라도 57개 지역 중 순창의 위상은 종4품 군수가 다스리는 상당한 위치에 속하는 고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1018(고려 현종 9)부터 189584일 전라도가 전라남·북도로 개편될 때까지 900년 가까이 순창은 전라도 중앙에 위치해 있어 군세(郡勢)가 지금보다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꽤 많은 유명인사가 우리 고장 순창을 다녀갔다. 그들은 주로 순창읍 동헌과 객사를 방문하고, 적성과 남원을 거쳐 전주로 이동했으며, 당시에도 절경으로 이름을 떨친 강천산 등을 유람하기도 했다. 때로는 순창에 오래 거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고려 현종 때 귀주에서 거란(요나라)을 격파한 강감찬이 젊은 시절 순창을 방문해 응향지에서 밤새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구리 떼를 조용히 시켰다는 이야기, 고려말 젊은 시절 최영 장군이 화산(채계산산)에서 무술 수련했다는 이야기, 만일사와 무학대사·이성계와 순창고추장 관련 이야기도 전설로 전해오지만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순창을 방문한 이들과 그 일화를 시대순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규보(李奎報) - 고려시대 최고 시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고려 중기 무인집권기 최고 문인이자, 한국 문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다.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다. 고전에서 좋은 구절을 응용해 시를 짓자는 의견에 대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해 시인 자신의 목소리로 독창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독창적이면서도 탁월한 구절이 많다.

32세 때인 1199(신종2)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으로 보임해 서기(書記)를 겸임했는데, 12월에 전주를 떠나게 되었다. 이때 적성면 고원리에 있던 나루터 적성진(赤城津)에 도착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강변 누각에서 절경 화산(華山·채계산)을 감상하지 못하고 푸른 산봉우리(煙鬟·연환)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가랑잎 같은 작은 배 술 취한 늙은이 태우니,

석양에 돌아오는 행색(行色)이 병풍 그림이로다.

평소 화산 경치가 좋다고 들었더니,

연환(푸른 산봉우리)이 푸른 하늘에 점점이 찍힌 것을 바라보기만 하네.

一葉輕舟載醉翁/夕陽行色畫屛中/平生聞說花山好/空望煙鬟點碧空

-동국이상국전집9

 

김종직(金宗直) - 사림파 영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사림파(士林派) 영수였다. 그의 도학 사상은 제자인 김굉필·정여창·김일손·남효온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457년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은 단종을 죽인 세조를 의제(義帝·회왕)를 죽인 항우(項羽)에 비유해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근하게 비난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훗날 제자 김일손(金馹孫)이 사관으로 있을 때 사초에 수록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부관참시되었다가 종종반정으로 신원(伸冤) 되었다.

1487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낼 때 순창에 들러 시 세 편을 남겼다. 그 중 현 순창군청 부근에 있던 관정루(觀政樓)에서 절도사 이계동(李繼童)과 함께 차운한 시를 소개한다.

임 뫼신지 한 달에 이름만 헛되고 / 관정루(觀政樓)에 앉아 술 생각만 하였는가 / 정히 요긴한 건 가슴을 열고 고뇌를 쫓는 것 / 비록 낯을 씻어도 깊고 맑은 마음은 간직할 수 없네 / 교만한 마음 번잡해서 나그네길 떠나는데 /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 나무마다 자욱하네 / 예부터 순주(淳州·고려 전기 순창)는 순박하기로 이름났는데 / 하던 일 잠시 쉬고 꾀꼬리 소리 듣네.

甘棠朞月竊虛名/觀政樓中喚麴生/正要披襟驅熱惱/不須灑面挹深淸/一方行旅橋心鬧/千室炊煙樹頂平/從古淳州號淳朴/簿書揮罷聽鶯聲 - 점필재집22

 

소세양(蘇世讓·1486~1562) - 황진이 연인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 ~1562)은 조선 중기 전라도관찰사와 형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그는 황진이(黃眞伊)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시를 연모한 황진이와는 마음을 열고 30일 동안 함께 지냈다고 한다.

소세양과 헤어진 다음에 황진이가 그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시조가 어저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이다.

또한 아래 시는 여자 종을 시켜 한양에 있는 소세양에게 전했다는 시이다

소슬한 달밤에 무슨 생각 하시나요 / 잠자리에 뒤척이며 꿈인지 생시인지 / 님이여 때로는 내 얘기도 적어 보나요 /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은가요 / 멀리서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게 궁금해요 / 하루 하루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 바쁠 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귀찮은가요 기쁘나요 /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蕭寥月夜思何事/寢宵轉輾夢似樣/問君有時錄忘言/此世緣分果信良/悠悠憶君疑未盡/日日念我幾許量/忙中要顧煩或喜/喧喧如雀情如常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무슨 생각하나요로 시작하는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의 노랫말은 이 시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호남실학 4대가 중 한 사람인 황윤석(黃胤錫)1787(정조 11) 일기문 형태로 정리한 이재난고(頤齋亂藁) ‘고사산 감역 반선정 양공전’(故四山監役伴仙亭楊公傳)당시 김인후·소세양·임억령 등 명사(名士)들의 시가 적성강변 화산(채계산) 아래 중연 위에 있던 누정 반선정(伴仙亭)에 걸려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다음은 소세양이 반선정에서 읊은 <차반선정운>(次伴仙亭韻)이다.

가파른 벼랑이 위태롭게 얽혀 공중에 떠있으니 / 먼지 한 점 머무르는 것을 어찌 용납하리오 / 누르스름한 문발은 안개 낀 밤에 달을 길이 간직하고 / 대자리는 해를 두려워하여 가을을 흠씬 머금네 / 학의 등에 타고 세 개의 섬을 지나는 것에 비길 만하고 / 운오 악기를 연주하며 열 개의 섬에 노는 것 같네 /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낙화를 보내지 말게 / 근원을 찾아가면 아마도 무릉도원의 배가 있을 걸세.

懸崖危搆半空浮/埃壒寧容一點留/緗箔霧宵長貯月/桃笙畏日剩含秋/擬騎鶴背凌三島/如按雲璈戲十洲/莫遣落花流出洞/尋源疑有武陵舟 - 양곡선생집7

 

노수신(盧守愼) - 김인후·설당·순창군수와 교류

조선 선조 때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차례로 역임한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은 김종직과 김굉필, 조광조로 이어지는 성리학 학통을 계승했다. 그는 윤원형(尹元衡·15031565)이 을사사화를 일으키자 이조좌랑 직위에서 파직되어 1547(명종 2) 순천으로 유배되었다. 그 후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죄가 가중됨으로써 진도로 이배되어 19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기간 동안 김인후·이황(李滉등과 서신으로 학문을 토론했다.

이때 순창에 있던 김인후·순창군수 임회·설당과 환취당(環翠堂) 등지에서 교유했다. 환취당은 설당(薛塘)이 금과면 매우리 뒷산에 세웠던 누정이었다. 그의 저서 소재집 제4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순창군에 머무르다. 10일이다. 갰다가 혹은 비가 오기도 했다. 유배 중인 사람이 큰 고을에 머무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라, 형제간의 호의만 가지고 변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길을 출발해 담양으로 갔다가 저녁에는 순창에 머물렀는데, 순창군수 임회(林薈·15621624)가 나와서 만나보고 간소한 주연을 베풀어 주었다.

· 강천사로 들어가다. 12일이다. 가랑비가 내렸다.

-소재집(蘇齋集)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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