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농사일기(24)수국이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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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농사일기(24)수국이 필 때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2.06.1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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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짓는농부)

담장 위 장미가 지면서 오월이 물러가고, 유월이 왔다. 수국이 필 때다. 수국의 다채로운 색깔과 풍성한 꽃송이가 참 볼만하다.

우리 집 수국은 재작년 겨울, 광주에서 이사 왔다. 이사 올 때는 자루 같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긴 마른 나뭇가지였다. 수국을 이사시킨 이는 이모님이었다. 갈색의 다 죽은 가지들을 화단 앞에 휙 던져 둔 이모님은 땅에 꽃아 두면 내년 봄에 새싹이 나고 꽃이 필 거라고 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수국, 이름처럼 물을 좋아하는 꽃

날은 춥고, 믿거나 말거나 마른 나뭇가지를 화단에 꽂아 두었다. 그래도 수국이 피면 어울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지 서너 개는 혹시나 하고 물병에 꽂아 따듯한 거실 탁자 위에 두었다. 탁자 위에서는 오래지 않아, 흰 뿌리 몇 개가 돋아났다. 그걸 화분에 심었다.

봄이 되자 화단의 수국도 새싹이 올라왔고, 손바닥 같은 잎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올 봄은 가물었다. 수국은 이름처럼 물을 좋아하는 꽃이라 물주기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유월, 꽃이 핀 것이다.

 

 

▲ 유월, 수국이 필 때

아무리 가물었어도 여기저기 피고 지는 꽃들 천지다. 이웃집 화단의 양귀비 덕에 오가며 눈 호강을 했는데, 어느새 씨앗을 맺고 있었다. 농장 가는 길에 보니 하수구에 고개를 내민 양귀비가 보였다. 그 씨앗은 작년 이맘때 그곳으로 날아갔겠지, 겨울도 거기서 나고, 봄볕에 간신히 싹을 틔웠을 것이다. 그리고 하수구에 드는 볕에 천천히 자라났다. 하수구 격자판 덮개까지 안간힘을 썼겠지. 격자판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기어이 꽃을 피웠다. 화단의 다른 양귀비꽃 보다는 조금 늦었다. 그래도 피어났다!

 

토마토, 막바지 곁순에서 또 꽃이

농장의 토마토꽃을 보며 첫 꽃이 피었네, 꽃을 열, 스물, 수 백 개나 세며 수선을 떨었던 삼월을 지나 그 많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고, 빨강과 빨강이 가득해지며 수확기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요즘에도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막바지 곁순에서 또 꽃이 피고, 작은 열매가 맺힌다. 수확을 위해서는 보이는 대로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곁순에서 꽃은 재빨리 피었다 지고, 작은 열매를 맺는다. 그런 꽃의 안간힘도 기특할 때가 있어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 안간힘으로 꽃 피었네

 

<아씨방 일곱 동무> 서로 도와야 해

농장에서 쓰는 작업용 장갑은 몇 번 빨아 쓴다. 말간 물이 나올 때까지 빨아서 햇볕에 보송보송 말린 것인데도 봉지에서 꺼내자마자 후줄근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장갑은 꼭 있어야 하는 든든한 친구다. 토시도 마찬가지다.

작업용 토시와 장갑과 이렇게 친구가 될 줄은 몰랐다. 옛날 소설 <규중칠우쟁론기>를 전래동화로 만든 <아씨방 일곱 동무>에는 바느질을 좋아하는 빨간 두건 아씨와 자, 가위, 바늘, , 골무, 인두, 다리미가 서로 자기 역할이 최고라고 다투다가 결국에는 모두가 서로 도와야만 바느질이 이루어짐을 깨닫는 이야기가 있다.

▲ 농장의 친구들

 

산책 나온 자라’, 이런 산책 괜찮다

우리 농장의 동무들도 여럿이다. 수레, 바구니, 가위, 박스, , 테이프, 스티커, 장갑, 토시, 모자, 운동화……, 테이프 커터기는 그 중 부지런하다. 이 녀석이 부지런을 떨어야 수확량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 커터기도 몹시 바빴다. 그래 지쳤는지 움직이는 솜씨가 예전만 못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몸도 마찬가지…….

늦잠을 잔 아침, 아예 늑장을 부리기로 합의를 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마을 밖으로 느릿한 산책을 나섰다. 얼마 전 비로 냇물도 콸콸 흐르고, 논의 물도 찰랑댄다. 마을 밖 포리똥(보리수)도 익어가고, 밤느정이도 허옇다. 마을을 돌며 일명 '배고픈 다리'를 건너 농장으로 돌아오는데 거기서 산책 나온 자라를 만났다.

누구냐 너? 아이쿠, 어쩐 일이니? 너도 산책자냐? 오늘은 나도다!”

오늘의 게으름으로 자라와도 만났다. 이런 산책 괜찮다!

 

▲ 산책길-배고픈 다리, 자라, 포리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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