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26)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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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그림책(26)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2.11.0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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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취업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이었고, 결혼을 일주일 앞둔 예비 신랑신부였고, 생일이라 친구들이랑 놀러 나온 평범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세월호 침몰사고(2014)가 있었고, 삼풍백화점(1995),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4)가 있었습니다. 씨랜드수련원화재사건(1999)으로 숨진 유치원생들도 있었습니다.

주인 잃은 운동화 한 짝, 깨진 핸드폰, 찢어진 옷, 손때 묻은 가방만 무심히 가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왜 이들은 돌아오지 못한 걸까요? 계속 반복되는 사고, 그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한 걸까요? 어른들은 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걸까요?

 

피리 부는 사나이

여기 사회적 문제를 꾸준히 그림책에 담아온 고정순 작가의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노란상상)을 소개합니다.

표지를 보면 검은 벽을 배경으로 누군가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의 표정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실루엣만 보입니다. 한 장을 넘기니 속표지에 빨간 동백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나뭇가지가 보입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하멜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시작됩니다. 쥐떼로 골치를 앓는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 한 사나이가 나타나 피리 소리로 쥐를 쫓아내 줄 테니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합니다.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온 동네 쥐들이 일렬로 모여들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 거죠. 화가 잔뜩 난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합니다. 피리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일렬로 모여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라져가는 아이들

시간이 흘러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잊혀 질 무렵, 마을에 다시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청년이 되고, 정당한 대가와 안전을 약속받고 각자 자신이 꿈꾸던 일터로 갑니다. 그림속의 일터는 용접공을 비롯해서 대부분 연장을 들고 일하는 노동 현장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아니라서, 때로는 어른이 아니라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작가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이들을 작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또 하나둘 사라지지 시작합니다.

첫 번째 작은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들이 마시며 쓰러집니다. 아마도 몇 년 전, 삼성반도체 클린룸에서 백혈병으로 쓰러져간 노동자들로 여겨집니다.

두 번째 작은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쓰러져 있습니다. 지하철 구이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협력업체 하청노동자 김군(2016, 당시 19)입니다.

세 번째 작은 사람이 차가운 길 위에서 사라졌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하라는 압력에 시달리다 사고를 당한 청년 라이더, 배달 노동자입니다. 배달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배달은 청년 산재 사망 원인 1위라고 합니다.

네 번째 작은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헤드셋을 쓰고 있습니다. 거친 소음 속에 쓰러집니다. 다름 아닌 언어폭력, 성희롱, 감정노동, 실적압박으로 시달리는 콜센터 직원들입니다. 2017년 콜센터 현장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작은 사람들이 사라져 갑니다. 점점 더 사라져 갔습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까마득한 절벽으로, 세상 끝으로 젊은 청년들을 내몹니다. 이들은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 표정도 알 수 없고, 축 늘어진 어깨에 고개 숙인 모습이 현실의 고단함을 보여줍니다.

열한 번째,

열두 번째,

열세 번째…….

열세 번째 아이, 여기서 우리는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납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도로로 질주하는 13명의 아해들…….

뭔가 불길한 예감. ‘하멜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는 130명의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

이들의 죽음 위로 다른 죽음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얼마 전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를 당한 파리바케트 20대 여성노동자 A씨가 떠오르고, 태안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2018, 당시 비정규직)이 겹쳐집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21조로 근무해야하지만 당시 혼자 근무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아들이며, 딸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오래일하기를 요구합니다. 하루 7, 1년에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떻게 해야 안전한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배에 물이 차오르는데도 무책임한 어른들은 단지 기다려라고 말하고 자기 자신만을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동백꽃을 닮은 아이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가면 피리 부는 사나이 뒤를 13명의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갑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행진합니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일로 그치기만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탐스러운 붉은 동백꽃 한 가지가 등장합니다.

왜 갑자기 동백꽃일까요? 동백꽃은 다른 꽃과 달리 꽃이 질 때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전부 붙은 채로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 합니다. 탐스럽게 피었다가 갑자기 툭 져버리는 모양새가 숨진 청년 노동자들을 닮았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추모하는 걸까요? 아니면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걸까요? 이 장면에는 글이 없고 그림뿐입니다. 여러분이 작가라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무사히 돌아오는 일상을 꿈꾸며

또다시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다행하게도 이전의 그림들과 달리 아이들의 얼굴에 눈, , 입이 있고 표정이 있습니다. 이제 이 아이들이 자라 청년노동자가 되겠지요. 작가는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행복한 노동자가 되는 꿈을 꿉니다. 더 이상 피리 부는 소리도,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안 나타나기를.

스스로 그림책 만드는 노동자라고 말하는 고정순 작가는 우리에게 청소년 현장 실습 노동자들과 사회초년생 청년노동자들의 반복적인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 때문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일명 김용균법, 2020116)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202118)이 만들어졌지만 도처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어른들은 몇 명의 아이들이 사라져야 정신을 차리게 될까요?

마지막 장을 덮고 뒤표지를 바라봅니다. 여전히 피리 부는 사나이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앞표지에서 어두웠던 배경이 조금 밝고 투명해졌습니다. 앞표지에서 왼쪽을 바라보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과거의 사람이라면, 뒤표지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며 피리를 부는 사나이는 미래의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아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모두의 소망입니다. 잘못을 사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약속을 지키는 어른이 되자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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