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7회-정문섭
상태바
[연재소설]인연의끈 17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2.12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연의끈 17

 

둘은 객줏집 행랑아범의 배려로 객주의 한 귀퉁이 방에서 잠을 잤다. 아침 일찍 주인과 대면하려 했으나 주인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50대 후반으로 좀 늙수레한 주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위아래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거 오기는 잘 왔소만, 나이가 어찌되오? 둘은 어떤 관계인고?”

. 지는 이제 서른아홉이고 야는 지 아들인디 열일곱입니다요.”

흐흠. 우리 일은 서른다섯이 넘으면 환갑이외다. 아들은 실해 보이누만. 둘을 다 쓰지는 못하니 그리 아쇼.”

어르신, 지가 이래 뵈도 아직은 팔팔합니다요. 동네 상머슴 이상 간당게요.”

그려도 안 되야. 농사일과는 다르단 말이여. 종 주제에 멀 안다고.”

억새가 순간 분노가 치솟아 얼굴이 벌게졌다. 들쑥이 급히 아들의 팔을 잡아끌어 고개를 돌리게 하였다. 둘은어쩔 수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남쪽으로 향하다가 날이 저물어 불갑산 남쪽 함평의 한 주막에 들어갔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잠을 청했지만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그들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생전 처음 먼 길을 걸어 발바닥이 붓고 부르터서 더 걸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날 밤, 몸을 더 추스른 후 아침 다시 길을 재촉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 무안 청계면의 산과 바다를 보며 남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목포항 객줏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술시를 지나 한밤중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보름달이 그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잠을 깨웠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행랑아범에게 사정사정하여 뒷방 윗목 한 귀퉁이에 몸을 풀었다.

이튿날 새벽에 소피를 보러 밖으로 나온 들쑥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억새를 깨웠다. 두 부자는 문 옆에 있는 싸리비와 나무 삽을 들고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집 앞 마당과 고샅길까지 눈을 다 쓸고 나니 점차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집안의 아녀자들이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이들 두 부자의 모습을 보았다. 억새가 또 그녀들에게 다가가 물지게를 지어 물을 날라 주었다.

평소 조반 전에 집 안팎을 둘러보던 객줏집 주인 김상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행랑아범이 다가왔다.

그게. 어젯밤 늦게객주 일을 하겠다고 온 자들입죠. 저 옆방에 재웠는디 아침에 봉게 이 자들이 눈도 치우고이 물지게도 지고이, 하여튼부지런합디다. 부자간인 것 같은디 이 쪽지를 가꼬 왔당게라우.”

그려어?! 우선 밥이나 멕이고이, 내 앞으로 데려 오게나.”

 

내가 이 추천서를 봤소만, 거기는나이가 들어 보이는디, 등찜 일을 할 수 있겄소이? 오래 허다간 허리 나가고 다리도 절단이 날 것인디.”

주인의 말하는 투가 엊그제 그 법성포 그 자와는 천양지차였다.

! 어르신. 걱정하시는 말씸, 정말 감사합니다요. 알아 들었구만이라우. 정 그러시다면, 석 달만 지켜봐 주시쇼. 지가 한 번 열심히 혀보고 그때 가서 영 아니다 싶으면 주인님 의견에 따라 머 돌아가든지 하겠습니다요.”

<목상객주(木相客主)>, 이곳이 나중에 그들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은 평생 잊지 못할 곳, 일생의 큰 변곡점이 될 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주인 김상길은 들쑥보다 네댓 살 많은 사십대 중반으로 수완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한양 한 외척세도가의 노비였으나 주인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면천하여 성()을 주고 목포에서 객줏집을 운영케 하였다. 목포의 나무 목()에 자신의 이름 상길의 앞 글자 서로 상()을 써 객줏집이름을 지었다. 목상객주는 주로 물건의 매매주선에 주력하면서 수십 명의 보부상을 거느린 객주로 규모가 제법 컸다. 그는 옛 주인의 주선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해남에 사는 향반 윤씨(고산 윤선도의 방계 후손)의 여식과 혼인하여 열여덟 살 아들 형만과 열다섯 살 된 딸 숙영을 두고 있었다. 제법 큰돈을 벌어 인근에서 수완꾼 알부자소리를 듣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들쑥 부자가 처음에 하게 된 일은 접장을 따라 영광굴비를 등에 지고 한양에 가는 것이었다. 등짐을 지고 한양에 오르는 천리, 아직 겨울이 다 끝나지 않은 때라 스무 날 이상을 걷는 동안 다리가 붓고 손이 트고 발이 동상에 걸렸다. 한양에서 일이 끝나자 다시 청나라 비단 옷감을 지고 일부는 공주와 전주의 점포에 넘기고, 또 다른 물품을 받아 광주와 나주 점포에까지 지고 왔다. 초봄이 되어 중국으로부터 온 노리개 등 귀한 물건을 나주와 광주로 올리고, 목포와 영광에서 나오는 갈치, 고등어와 조기를 소금에 절여 남원오일장에 내놓고 함양과 거창오일장을 거쳐 대구와 안동에까지 올라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대처에 나가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고 또 먹고 자는 것이 모두 형편없는 풍찬노숙(風餐露宿)에다가, 먼 거리를 걷다 보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부르트고 짐이 무거워 힘에 부쳐 헐떡거리고 있었다. 점차 다른 젊은이들을 따라 가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들쑥을 배려한답시고 짐을 나누어 지어주고 또 뒤쳐지면 기다려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한 두 번이지 자주 그러다보니 자연히 민폐가 되고 어떤 젊은이는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더욱이 아들 억새가 더 힘들어 했다. 아버지 짐을 더 지게 되고 게다가 접장과 동료들의 뒷소리도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석 달이 다 되어간 어느 날. 들쑥 부자가 주인 김상길과 면대하였다.

일 해보니 어떻습디까? 힘들지요? 계속 헐 수 있겄소?”

그게대처에 나가 볼 것도 많고 재미도 있긴 헌디, 주인님 말씀대로 몸이 안 따라 주느만요. 어짜면 쓸까요? 지가 미안시럽고 좀 그렇네요.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고이, 참 난감하게 되었습니다요.”

허어! 예전엔 뭘 허며 지냈소? 농사일은 혀 봤소? 어떻소?”

그거야 식은 죽 먹기죠. 눈 감고도 쟁기질도 할 수 있지라우. 어디 농사일이라도 할 곳이 있으면 좋겄는디. 머슴이라도 괜찮고요 이.”

결국 들쑥은 상길의 주선을 받아 근처 해남군 삼산면 들 지주 최씨 집에서 머슴으로 지내게 되었다. 명진 주인집에서 평생 농사일을 해온 데다가 천성이 부지런하여 자기 집일처럼 열심히 하였다. 지주가 김상길에게 좋은 사람 보내 줬다고 감사해 하였다.

 

늦가을 추수가 마무리 되었을 때 들쑥 부자가 다시 김상길을 찾았다.

어떻소? 농사일을 해보니 할 만 합디까? 최씨 말이 내년에도 기속 허면 좋겠다고 말하던디, 새경 좀 올려준다는 말은 안 허든가요?”

이때 억새가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1981년 중앙부처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