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8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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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18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2.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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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끈 18

 

주인님. 지 아부지가요 농사일을 열심히 혀도 보람을 못 느끼고 재미도 없다하십니다요. 이 객주에 도움을 못 드리고 있다는 말이지라우. 참 안타까워하신다니까요. 지가 생각이 하나 있는디들어 보시겠어라우?”

그려? 머신디, 한 번 얘기해 보그라.“

그러니께. 제가 짧은 기간이지만 지켜보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구만요. 여기 객주에 상시로 붙어있는 식구가 많은데다가 들락날락하는 상인들도 또 뜨내기도 많드라구요. 어쨌거나 이 사람들이 먹는 것 모두 다 이곳 객주에서 해결하고 있는디, 그 양식을 어디서 다 가져 옵니껴? 모두 읍내 싸전에서 사오드만요. 그것도 비싼 돈을 치르고 말입니다요. 남새도.“

그래, 니 말이 맞다. 그 읍내 싸전 주인이 우리 같은 객줏집 덕으로 돈 좀 벌었다는 소문을 내가 듣은 적이 있제. 그래서 어떡허자고?“

그 쌀을 밖에서 사올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대면 어떠겄는가 하는 생각이 들.”

댄다? 자급자족? 어떻게? 누가 농사를?, 아하! 억새야! 내 니 말 알아듣겄다. 그려 맞어. 어허!”

김상길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억새의 어깨를 두드렸다.

들쑥이, 혼자서 몇 마지기까지 지을 수 있겄소? 스무 마지기?”

? 아 그거야 충분허지라우. 더 지을 수도 있습죠. 다만 모내기도 하고 추수헐 때에 그러니께 한창 바쁠 때 한 대엿새 정도는 여기 객주사람들이 좀 나서주어야 합니다요. 겨울에 눈 온다고 놀지 않지라우. 여그서 필요한 새끼도 꼬고 가마니를 짜고 덕석도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어요?”

아하! 눈비가 와도 쉴 시간이 없다? 야아! 오늘 당신들 부자(父子) 덕에 큰 건 하나 챙기게 되었네그려. 하하! 내 복안이 하나 섰소이다. 당장 논을 사야겠네그려. 형만아. 근처에 논 내놓은 거 있는지 조용히 좀 알아 보거라이. 들쑥이는 인자부터 우리 집 농사를 지을 준비를 하시게. 품삯은 객주에서 일하던 때에 주던 대로 허세.”

들쑥이 신이 났다.

예예! 남새밭도 좀 널게 쳐서 정지깐(부엌)에다 푸성귀도 넣어야지라우. 눈이 날리믄 김장도 허고이. 주인께서는 어떤 남새를 좋아허신가요?”

 

어느 덧 3-4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다. 두 부자는 주인의 말에 늘 순종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앞장서 해주니 주인이 점차 품삯을 올려 주었다.

그러던 추석 며칠 전 저녁 어둑해질 무렵, 객줏집 대문 앞에 사내들 셋이 나타나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행랑아범이 대문을 닫으며 집안으로 못 들어가게 막아섰지만 막무가내인 그자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행랑아범이 걷어 채이고 집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김상길이 보니 이전부터 말썽을 피우고 그때마다 적당히 푼돈을 줘 내보낸 왈패들이었다. 주인은 여느 때처럼 돈을 갖고 나와 손에 쥐어 주고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에이주인장. 이걸 돈이라고 주는 게요. 술 한 잔이나 머 지대로 먹갔어어?”

형만이 식식대며 밖으로 나가려 하였으나 어미 윤씨가 바짓가랑이를 꽉 붙잡았다. 상길이 아들 형만을 눌러 앉히고 돈을 더 갖고 나왔다.

이봐. 주인장. 더 가져 나왔다는 게뭐여? 거지새깽이도 아니고 이. 몇 년 째 똑 같구만. 큰 돈 좀 내놔 봐아! 우리들 땜시 장사 잘혀 돈 벌어놓고, 이러면 안 되제에. 안 그려여어?”

김상길이 대략 난감하여 어정쩡하니 마루에 서 있는데, 이때 누군가가 그 자들한테 다가 왔다. 멱살을 휙 쥐어 잡더니 바로 패대기를 쳤다. 다른 놈이 달려들었지만 어깨를 누르고 허벅지를 걷어차니 바로 앞으로 넘어지며 코피가 터졌다. 이어서 두 놈을 질질 끌고 대문 밖에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머지 한 놈이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을 쳐 줄행랑을 놓았다. 억새였다. 김상길은 억새가 대견하면서도 그놈들이 보복을 하러 몰려 올 거라며 태산같이 걱정을 하였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과연 왈패 예닐곱 놈이 도끼로 대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억새가 측간에 갔다가 대문 부서지는 소리에 급히 안에 들어 왔을 때, 왈패들 두 놈이 이미 대청을 거쳐 윤씨와 숙영이 거처하는 내당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두 여인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주인과 아들 형만은 어찌할 줄을 모른 채 마루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지 그놈 어디 있어? 당장 나오라 그려어! 다리를 분질러 놓기 전에 이.”

그려어? 내 다리 여기 이쓴께. 좋은 말 헐 때 밑으로 내려와이! 이놈들아!”

억새가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마루로 뛰어 올랐다. 왈패 두 놈이 동시에 눈알을 부라리고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억새가 순간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빼더니 옆구리를 발로 차고 왼쪽 놈의 목을 수도(手刀)로 냅다 갈겼다. 이어서 뒤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가슴팍을 뒤 팔꿈치로 꽂았다. 왼쪽에서 한 놈이 또 달려들자 이단 옆차기로 머리를 내질렀다. 또 한 놈을 팔 정강이로 가슴을 눌렀다. 순식간이었다. 나머지 두 놈이 몽둥이를 들고 쩔쩔 매고 있는 것을 본 객주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와하며 환호하였다. 억새가 다가가자 뒷걸음치는 두 놈을 행랑아범과 하인들이 몰려와 몽둥이와 도끼를 빼앗고 넘어뜨리며 무릎을 꿀렸다. 행랑아범이 으쓱하며 큰 소리를 쳤다.

주인 어르신, 이놈들 어찌할깝쇼? 관아에 넘겨 곤장 맛을 지대로 보여줘야 혀요.”

김상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년 동안 왈패들에게 시달리고 돈을 빼앗긴 일들이 떠오르며 억새가 이처럼 왈패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것을 보고 안도하였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들, 오늘에야 지대로 임자를 만났구나이. 당장 묶어라. 바로 관아로 보내는 것이 상책이여! 새복부터 남의 집에 무담시 쳐들어 와 이 소란을 피워? 그 죄가 얼매나 큰 죄인지를 보여주어야 혀. 아암!”

왈패들, 두 놈은 턱 조가리가 나갔는지 입에서 피침을 흘리며 옆으로 고꾸라져있었고, 두 놈은 무릎 정강이가 깨져 다리를 절뚝거리고, 한 놈은 어깨가 빠진 듯 팔 하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일곱 놈 모두 인득을 피하며 엉금엉금 기어와 김상길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이 닳도록 빌었다.

아이고. 주인 나리. 지들이 잘못했습니다요. 한 번만 봐 주시쇼. ?”

김상길이 주위를 돌아보자 사람들이 왈패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아예 다리 몽뎅이를 분질러 놔야한다.’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놈들이 다시 바짝 엎드리며 기어 왔다.

어르신, 한번만 봐 주시라우.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우. 맹서헙니다요. 믿어 주시라우. 참말이라우. 지발 지발.“

봤제? 인자는 니놈들 열 명이 와도 안돼야. 꼬라지가 볼만허구마이. 여그 사람덜이 다 봤느니. 맹서헌 것 헛말은 아니것제? 이놈들 잘 들어. 앞으로 이 목포 바닥에서 얼쩡거리다간 우리 억새한테 다리몽뎅이뿐이냐? 허리를 분질러 사내구실도 못허게 될 거야. 다시 나타나 봐라. 그동안 우리한테 뺏은 돈 뿐이냐? 이 목포 바닥 객줏집 주인들 다 동원해서 니놈들 헌티 뺏긴 돈 다 게워내야 헐 거시여. 관아에 보내 곤장 맞게 허고 감옥에 처넣어 부릴 거여. 뭔 소리인지 알아들었냐? 이놈들아!”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1981년 중앙부처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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