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1974년>
이성부(李盛夫)
1942~2012 전남 광주 출생.
시집 <지리산>, <우리들의 양식> 등 다수

올해도 봄이 왔습니다.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입니다. 하지만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봄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겨울은 아름다운 봄을 만들기 위해 있었고, 우리가 겪었던 힘들고,어렵고 , 고통스러운 것들은 기어이 오고야 마는 봄이 있었기에 모진 고난을 참고 이겨냈습니다.
이렇게 오는 봄은 급할수록 더디게 옵니다. 올듯 말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을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숨이 넘어갈 때 쯤 그 때야 옵니다.
그렇게 오는 봄은 눈이 부셔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소리조차 굳어 이름조차 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오는 봄은 나를 위한 봄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봄이어야 했습니다. 이성부 시인이 이 시를 쓴 때는 1974년, 그 때는 유신 독재의 시대로 모든 국민에게 자유와 인권이 없는 때였습니다. 암울한 그 때의 심정을 이 한 편의 시로 표현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이 시를 읽은 같은 동향일 광주의 양성우 시인이 1975년 일본의 어느 잡지에 <겨울공화국>을 발표해 그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2년 간 옥살이를 했고, 그가 다니던 학교 교사직도 잃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보다 마음으로 기다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봄도 겨울일 때가 있습니다.
이렇듯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신념 속에 사는 사람을 위해 올해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오늘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잡은 이 봄날에 씨를 심어야 찬란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