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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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
  • 조은영
  • 승인 2023.06.2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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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회룡)
저희집 돌담위의 붉은 미니 장미입니다.
저희집 돌담위의 붉은 미니 장미입니다.

김장에 쓸 고추는 아니더라도, 한 여름날 찬물에 밥말아 된장 찍어 먹을 고추 모종을 텃밭에 심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5년째 잘 자라고 있는 블루베리 나무에 거름 줄 시기도 놓쳤습니다. 해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던 돌담위의 붉은 미니장미는 환한 미소를 잃었나 봅니다. 한창 아름드리 예뻐야 할 꽃송이가 예전만 못합니다.

바빠서 그랬다고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손주인 다율이와 다미를 돌보면서 시기를 놓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제대로 다듬어 주지 않아서 제멋대로 커버린 돌 틈 사이 좀눈향은 숲을 이루어 버렸습니다. 봄부터 여름 초입까지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 준 매발톱은 어떻구요. 계단에까지 올라와 불청객 아닌 불청객이 되어 잘려 나가 버렸답니다. 작년 전시회 때 지인에게 선물받은 노란 장미는 풀에 가려 보이지도 않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건 한 해 농사의 시작

시골에서 봄을 맞이하는 것은 한 해 농사의 시작인데, 아이들 보느라 때를 놓친 것입니다. 5월이 지나고 6월인데, 모종을 구할 수 있을까? 체념 반 기대 반으로 시장에 들렀습니다. 일반 고추는 보이지 않았으나, 색깔이 보라색이라는 가지고추만 15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거름도 못한 텃밭에 모종을 심었습니다. 작년 거름이 남아 있기도 하였고, 비오는 날 웃거름을 줄 심산도 있었습니다. 다른 집보다 한달 정도 늦었지만, 더운 여름철 밥반찬으로 풋고추 만한 게 없으니 늦은 수확을 하겠지만 심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순창 토종씨앗 모임에서 활동하는 지인에게 혹시나 하며 모종을 부탁했는데, 가지와 사과참외를 선물 받았습니다. 잘 심고 가꾸어서 씨앗도 받고, 필요한 이웃에게 나눔도 해야겠다는 의지를 새겨봅니다.

 

둘째 다미를 순창으로 데려왔습니다

순창에서 돌보던 둘째 다미를 아들 내외곁으로 보내면서, 그동안 밀린 일이며 집안 살림에 집중하려고 맘 먹었었지요. 그런데 주말에 아들이 첫째 손주 다율이를 데려오면서 꿈꾸던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낮에 잘 놀던 다율이가 한밤중에 열이 나서 잠이 들지 못하고, 새벽 5시까지 앓으니 식구들 모두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병원을 다녀왔어도 열이 쉬이 내리질 않았습니다. 해열제를 복용하고 조금 차도가 있자 아들은 엄마 운전하면서 아이랑 청주 올라가는 것이 어려울 거 같아요. 같이 가시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집에 오게되었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주일을 머물다가 둘째 다미를 순창으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아들 내외와 손주들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예전처럼 물멍하며 은빛 강물을 바라보고도 싶었고, 구들방에서 삭힌 발효차도 마시고 싶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언제 적부터 상상하며 그렸던 원피스도 만들어 입고 싶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육아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상실감으로 다가옵니다.

 

할미를 보고 아이가 해맑게 웃습니다

그런데 이런 할미를 보고 아이가 웃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해맑게 웃는지, 나도 같이 웃었습니다. 아이와 함께라도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되는데욕심이 앞서서 아이가 주는 기쁨을 잊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옹알이를 들으며 모임에도 나가고 미술관에도 다녀왔습니다. 마음을 달리하니 새날이 옵니다.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우리밀 천연발효빵 만들기수업도 강사님의 양해를 얻어서 신청했습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빵수업 강의실에 들어가니, 다리가 불편하신 강사님께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하하하~ 어머나, 진짜 아이를 데려왔네요하며 한참을 웃으시네요~. 요즘은 아이 보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교육생 여러분께서도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옵니다. 용기 내어 오기를 참 잘했습니다.

한쪽 발을 수술하여서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이 아니면 안되는 캄파뉴 발효빵을 보조강사 없이 수강생의 도움만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환하게 웃는 강사님이 인상 깊게 들어옵니다. 그녀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오랜만에 멋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밀 수입 267만톤국내 밀 자급률 1%

사는 곳이 아름다운 자연이다 보니, 찾아오는 지인분들이 있습니다. 주변에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서 지인에게 매번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난감할 때가 많았지요. 밥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먹던 반찬을 내어놓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사 때를 놓친 경우에도 간단하게 요기가 될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다가 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빵을 만드는 재료인 밀가루 중 수입 밀가루가 유전자 조작(GMO)과 강력한 제초제의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산 우리밀의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구요.

2022년도 밀 수입은 267만톤이며 국내 밀 자급률 1%, 일본은 17%라고 합니다. 먹는 음식은 곧 생명인데,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갈수록 먹고 사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와 함께 건강한 빵을 만들며, 나무와 꽃을 가꾸고 텃밭을 돌보는 일들이 일의 효율성은 떨어지겠지만 맘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평화와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되어 주었습니다. 작년 6월에 태어난 다미는 날짜로만 계산하면 20236월 이번 달이 이 됩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출산 예정일로 셈하여 교정일수를 적용하면, 265일차로 아직 8개월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6개월 전후에 첫니가 나오는데, 다미는 며칠 후면 9개월인데 아직 기미도 보이질 않습니다.

기다리면 하얀고 뽀얀 첫니가 나오겠지 하며 기다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의 입안을 들여다 본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온 방안을 기어다니고 눈에 띄는 데로 만지며 입에 가져다 댑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노심초사하지만 아프지 않고 웃어주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품어야 하는 자식

올봄 텃밭 농사를 일구지 못했어도꿈꾸었던 작품공모전에 출품하지 못하고, 다시 할머니로 주저앉았어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하고픈 일은 다음에 하면 되는 것이고, 못한다 해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사랑하고 품어야 하는 자식을 뒤로 미룬다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 말할 수 없겠지요. 한참을 옹알이하고 놀던 아이가 잠이 들었습니다. 곤한 잠에서 깨어나면 서암권역 황토열매마을에서 열리는 팜파티에 아이와 함께 다녀와야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다미와 나를 위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과 소통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아 가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찔레인데 분홍색이어요. 이웃에서 얻어 삽목하였더니 이리 이쁘게 성장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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