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통신]죽음에 대한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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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통신]죽음에 대한 나의 이야기
  • 이남숙
  • 승인 2023.08.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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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숙(구림 장암)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갖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삶으로 들어온 죽음의 첫 기억

나는 산세 좋은 탄광촌에서 자랐다. 버려진 학교 사택을 얻어 살던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면 운동장으로 나갔다. 허약했던 동생을 데리고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하시는 단상에 누워 별을 보곤 했다.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많던 별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별을 찾아 동생이 볼 수 있을 때까지 손가락으로 끈질기게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비행기라는 건데, 나 나중에 저거 타고 세상 구경할 거다.”

18살이 되던 해, 나는 서울로 가서 일 년 반 동안 돈을 벌었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겠다고 가족과 친구에게 말하자 모두 반대했다. 나 또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격려의 말을 듣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답답해하던 어느 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발길이 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던 시간, 내 몸이 폭발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그네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때 내게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내 모습이었다. 지금을 떠올리며 ‘그때 그랬더라면’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할 거란 생각이 망설일 틈도 없이 들었다. 19살, 나는 생애 첫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망자를 위한 히말라야 룽다
망자를 위한 히말라야 룽다

 

괴로움: 행복과 불행을 반복해서 오가는 것

나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향해 달렸다. 가방 하나 메고 서울로 떠났던 18살부터 내가 기댈 곳은 내 두 손발뿐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며 돈을 모아 내 꿈을 향해 나아갈 목표로 악착같이 살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부모님 호강도 시켜드리고, 세상도 구경하고, 대학교도 가보고 싶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바를 이룰 때마다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했고 이루지 못하면 괴로워했다. 멈춤 없는 욕망 앞에서 롤러코스트를 타듯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러다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 행복한가? 난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 내가 원하는 삶은 뭐지?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땐 잘 몰랐다.

13개국 사람들과 함께 일했을 때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믿음과 행동에 왜라고 의문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곧 나를 향해 돌아왔다. 나는 왜 내가 믿는 것을 믿는 걸까? 더 나아가 인간 중심의 사고와 행동에도 의문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 한 병의 와인, 한 장의 담요

프루스트의 묘지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은 알랭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난 후였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 매료되었고 그의 흔적 앞에 서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공동묘지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공동묘지로 여행을 갈 때면 챙기는 것들이 있었다. 책, 와인, 담요! 죽은 자들의 마지막 말, 사진, 생존 시기, 조각상 등을 보고 있으면 내가 안달복달하는 삶의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두 손을 꼭 잡고 공동묘지를 산책하던 나이 든 노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평안함,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공평하게 내려앉던 부드러운 햇살, 나와 그림자, 공동묘지에서는 늘 부족함 없는 여행이 펼쳐졌다. 욕망이 멈추던 그곳, 공동묘지에서 나는 온전히 충전되어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밀라노 공동묘지
밀라노 공동묘지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

 

인생 최고의 스승을 만나다

11년 전 나는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스승을 만났다. 당시 외국에 살고 있던 내게 동생의 남편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내왔다. 너무나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에 감탄하며 스승님의 가르침과 글을 찾아 헤맸다. 스승님께서는 사람이 살면서 공부해야 할 5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물질세계, 생명 세계, 정신세계, 인류 문명사, 우리 역사. 이 다섯 가지는 전문가처럼은 아니더라도 최소 전문 서적 한 권이라도 읽을 것을 권하셨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시우 박사님의 천문학 강의를 시작으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창백한 푸른 점’을 보자 처음으로 어떤 겸허함 같은 것을 느꼈다. 수박 겉핥기식이어도 뇌과학도 공부해 가며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함도 알게 되었다.

 

공들여 만든 모래성을 떠나며

나는 인생의 전환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만든 모래성을 두고 미련 없이 뒤돌아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 년의 시간을 두고 정리하기로 했지만 일 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도 여전히 두 손 가득 쥔 것을 내려놓지 못했다.

나는 다시 죽음을 떠올렸다. 이생의 마지막 순간, 지나온 인생 풍경을 떠올리며 지금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날 사표를 냈다. 오랜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연의 한 일부로써 지구라는 행성에 최소의 흔적을 남기고 머물다 가는 삶을 온몸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삶에 기꺼이 맞이할 손님, 죽음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삶을 디자인하며 산다.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으로 지금 여기 삶을 디자인했다, 내게 죽음은 인생의 큰 변화를 결정할 때마다 함께 했다. 주어진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깊고 구체적으로 사유하게 되니, 내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싶은지 좀 더 현실적 차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장례문화의 필요성을 생각했고 2018년 ‘삶의 마지막 디자인’을 만들었다. 다음 글에 나눠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을 사랑한 칸트의 묘비명을 남겨본다.

“조용하게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더, 언제나, 새롭게, 그리고 고조되는 감탄과 숭엄한 감정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에 있는 도덕률이다.”

이남숙(구림 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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