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통신]밀알 한 알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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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통신]밀알 한 알의 죽음
  • 이남숙
  • 승인 2023.10.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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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숙(구림 장암)
녹색매장, 흙장의 기대효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질 때 대지는 숨을 죽이며 밀알이 토해내는 마지막 울음소리를 듣네. 한 알의 밀알이 비에 씻기고 그 살이 뜨거운 태양의 세례를 받으며 사라질 때까지 대지가 품고 있던 밀알을 바람에 맡기는 풍장의 시간. 밀알의 완전한 죽음을 알리며 초록의 잎사귀가 움터 나오면 대지는 또다시 그 열매를 품어줄 준비로 분주해진다네.” <김혜선 아녜스>

 

꺼지지 않는 불

우리나라 화장률은 거의 100%에 이르고 있다. 무연고 묘지, 묘지 관리 어려움으로 파묘 후 유골 화장도 늘고 있다. 이미 육아 시장을 능가한 반려동물의 화장도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화장 장려 정책으로 현재 화장장, 납골당, 수목장 부족 문제와 님비현상으로 추가 증설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27년까지 화장로 증설과 산분장의 30%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산분장:시신 화장 후 유골을 산 또는 바다에 뿌리는 방식. 보건복지부가 산분장 허가 장소 지정, 지원하는 방식) 이를 제도화하여 친환경 장례 정책으로 추진 중이다. 수목장, 납골당 시설의 경우 이미 포화상태인 경우가 많고 납골당은 유지를 위해 많은 에너지 비용이 든다.

 

도심, 근거리 쉼터 추모공원,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질환으로 진료받는 환자 특히,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환자는 2017년 대비 51% 증가했고 이로 인한 약물중독(니코틴, 알코올, 마약)과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물질적 풍요와 복지를 잘 갖추었던 북유럽도 1970년대에는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 삶의 만족도는 물질적 풍요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도 필요함을 성찰하여 정신건강 증진에 힘썼다. 그것이 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적 행복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더 잘 먹고 잘사는 경제적 관점에서 정신건강 증진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나는 죽음을 삶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도심 속 또는 근거리 추모공원은 어떨까? 죽음을 직시할 때 어떻게 살아갈까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장례 대안 : 개발제한구역 활용

도시의 화장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7개 대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개발제한구역 활용을 생각해 보았다.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공해 심화 방지를 위한 녹지 확보 등의 이유로 도입되었다. 우리나라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약 3,751km²로 올림픽 축구장 약 55만개 면적이다. 그렇다면 개발제한구역은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제한구역의 불법사례 적발 건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단속이 어렵고 적발되어도 벌금이 약해 다시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기실험프로젝트

가장 오염된 개발제한구역을 선정하여 추모공원 및 숲 조성을 하며 녹색매장이나 흙장을 실험적 장기프로젝트로 시작해 보는 것이다. 분야별 전문가(공원디자이너, 생물학자, 법의학자, 산림전문가, 장례전문가, 환경운동가 등) 참여로 시신 분해에 최적의 상태를 만드는 연구와 공원, 숲 조성을 함께 만드는 장기프로젝트다. 개발제한구역의 70%가 개인 소유지이므로 국가 및 지자체가 장기적으로 매수를 통해 진행되면 어떨까.

우리나라 7개 대도시 개발제한구역(하늘색부분)

 

추모 공원숲 조성의 기대 효과

1.문화, 예술, 농업 : 우리의 전통 장례인 상여 행렬, 씻김굿, 소리와 연극, 영화 등을 접할 수 있는 전통 장례문화 축제를 추모공원, 숲에서 매년 개최할 수 있다. 축제에는 전통을 이어가는 수공예품, 우리 음식과 술, 지역 생산 농산가공품 등을 소개하고 판매해도 좋을 것 같다. 만약 순창에서 이런 행사가 시작된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축제가 되지 않을까?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하게 되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2.장례서비스(추모행사) : 돌잔치, 결혼식을 치르듯 추모연회도 그러하면 어떨까? 생전 고인과 인연 맺은 가족, 지인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생전 고인의 삶을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고 서로의 추억과 마음을 나누는 편지나 시를 낭독하는 풍경은 어떤가.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기리고 나누는 의미 있는 추모식이지 않을까. 요즘은 생전연회를 치르는 사람들도 있다.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가는 풍경, 멋지다. 이런 서비스를 구축해 간다면 순창군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순창이 그들의 마지막 선택지가 될 수 있고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이곳을 다시 찾고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3.환경 : 화장하지 않음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그로 인한 공기 오염을 시키지 않아 환경개선에 도움이 된다. 시신을 흙으로 돌려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고 공원과 숲 조성으로 녹지대를 형성하여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할 수 있다.

4.교육 :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박물관과 죽음 교실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영국에서 죽음박물관(Death Museum), 의학박물관(Medical Museum)을 관람했던 경험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인간이 어떻게 진화되었고 그와 함께 의학의 변천사,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소개하는 장을 만든다. 학생부터 성인까지 좋은 교육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한 죽음 교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사유해보면 좋겠다.

5.경제 : 축제를 통한 예술인, 장인, 농업인, 장례 서비스직, 사무직, 녹색매장 장례 친환경 물품 공급업체, 물품을 만들 노동자도 필요하다. 또 추모공원, 숲의 유지 보수 관리에도 인력이 필요하므로 청년, 중년,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거리 창출이 가능하다.

 

생명을 품은 한 알의 밀알을 꿈꾸며

녹색매장을 통해 환경보호 및 개선(제로 화석연료 사용, 공기정화효과, 탄소중립실천), 시신의 자원화, 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 문화, 예술의 장(전통문화 보전 및 계승), 도시민의 근거리 쉼터,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산분장 방식에서 녹색매장, 흙장으로 점차 나아가길 바라본다. 우리는 어떤 100년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길인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인 채로 남는다.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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