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통신]프레데릭 프랑크를 찾아서(Finding Frederick F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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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통신]프레데릭 프랑크를 찾아서(Finding Frederick Frank)
  • 이남숙
  • 승인 2023.12.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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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숙(구림 장암)

인생의 의미는 보는 것”(The meaning of life is to see)<프레데릭 프랑크>

겨울이 시작되고 소식지 하나가 도착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세운 17년 된 학교가 폭격을 맞아 긴급구호가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어있었다. 세상 여기저기서 전쟁과 대립의 소식들을 접할 때면 나도 모르게 내가 그 상황이라면 빗대어 생각해 보게 된다. 상상은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느껴질 감정은 막연할 뿐이다. 그들의 고통 위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 무력한 감정도 든다.

이 세상에 착한 전쟁, 정의로운 전쟁은 없습니다”(법륜스님, 막사이사이상 수상식 기조연설 중) 말씀처럼 평화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옛 기억이 찾아왔다.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머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곳. 삶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에 대한 이해가 되어 시원한 울음터가 되어 주었던 곳.

 

201179

2011년 7월 9일 파셈 인 테리스 방문을 환영한 프레데릭, 클라스케, 루카스

 

나는 드디어 손에 종이 한 장을 들었다. 프레데릭 프랑크가 있는 파셈 인 테리스의 주소였다. 그게 전부였다. 어느 책에서 그의 이름과 두 줄 소개를 보고 그냥 찾아가 보고 싶었다. 뉴욕 맨하탄에서 탄 버스는 도심을 벗어나며 낡은 회색 건물들과 굴뚝 사이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뒤로하고 고속도로로 빠져나갔다. 돌보지 않은 듯한 낡은 회색 건물들 위로 파아란 하늘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던 날이었다.

맨하탄에서 북쪽으로 2시간을 달리면 워릭이 나온다고 했다. 한참을 달린 뒤 버스 기사에게 워릭의 파셈 인 테리스에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워릭에서는 두 곳에서 정차하며 파셈 인 테리스는 모른다고 했다. 그가 주변 승객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두 의자 사이로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5년 전, 여기로 이사 온 그녀의 가든디자이너 친구가 알지도 모른다며 전화로 물어봐 주겠다 했다. 결국 가든디자이너는 자신의 남동생에게까지 전화해 물었고 답은 모름이었다.

내가 제대로 찾아왔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들 때 버스는 이미 워릭의 첫 정류장에 도착했다. 낯선 이의 행선지를 찾아 주려 애써 준 두 분께 고맙다 인사를 건네고 콜택시 번호를 물으러 정류장 근처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몇 발짝 걸었을까. 가든디자이너분이 나를 불렀다. 주소를 알면 자신이 운전해 주겠다고 했다.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곳인지 본인도 궁금하다고 했다. 일단 차를 가지러 근처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자하여 초면에 그녀의 멋진 집에서 차도 마시고 이웃에 사는 남동생과도 인사하고 파셈 인 테리스를 찾아 세 명이 차에 올랐다.

 

파셈 인 테리스(Pacem in Terris)

한산한 도로가로 쭉쭉 뻗은 포플러나무들을 지나고 한가로운 시골길을 20분가량 달려 그 곳에 도착했다. 두 중년 여성은 놀라워했다. 이곳을 알게 된 게 너무도 기쁘다며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곳을 둘러본 후 떠났다. 그 후 가든디자이너는 파셈 인 테리스를 돌보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상의 평화, 지상의 낙원(Peace on Earth)

나는 그곳을 구석구석 차분히 탐색했다. 입구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내 인생에 깊은 영감을 준 세 명의 위대한 스승(교황 요한 23,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 스즈키 선사)에게 파셈 인 테리스를 바칩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탐구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지길 바라며 이 공간을 나눕니다.”

슈바이쳐 박사와는 그의 아프리카 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인연을 맺었다 한다. 자신은 영원한 수행자라고 말했던 그는 의사이자 화가, 작가로 르네상스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내 안의 평화

입구를 지나 정원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두 팔로 안아야 할 만큼 큰 나무가 서 있었다. 죽은 나무 몸통을 잘라 세워놨는데 나무 안은 네모난 구멍으로 뻥 뚫려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몸처럼 느껴졌고, 내 속에 엉켜있던 모든 감정들도 뚫린 나무 속처럼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울컥하고 올라온 감정에 코끝이 찡했다. 좀 더 걸으니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동그란 원 모양의 뱀 조각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동그란 원 모양의 뱀 조각 위 나의 모든 상반되는 감정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은 원이 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원망과 감사나는 인생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그 원 위로 녹여내고 있는 듯했다.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눈물이 소리 없이 오랫동안 흘러내렸다. 인생의 모든 경험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 안의 평화를 맛보았다.

 

클라스케와 루카스 그리고 프레데릭의 공간

혼자만의 평온한 시간을 가지며 벤치에 앉아 있자니 한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충분히 둘러보고 오두막을 찾아 문을 두드리라고 했다. 프레데릭의 아들 루카스였다. 자그마한 2층 오두막은 소박하고 정갈했다. 프레데릭의 아내 클라스케의 집이었다. 클라스케는 당시 93세로 맑게 깨어있는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맞아주었다. 파셈 인 테리스의 역사가 담긴 책에 메시지를 써서 내게 건네주었다. 보통의 미국인들도 잘 모르는 이 먼 곳을 동양인인 내가 찾아온 것이 감사하고 신기하다고 하셨다.

루카스에게 프레데릭의 작업실을 보여주라고 허락하셨다. 소박한 작가의 공간에 발을 디뎠다. 그가 98세의 나이로 죽기 3일 전까지 그린 그림은 5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그대로 놓여있었다. 하늘, 바람, 나무, 사람, 허공.

제대로 존재하려면 먼저 제대로 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보기 위해서는 안다는 착각과 오만, 편견을 버려야 한다. 안다는 오만과 착각이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프레데릭 프랑크>

제대로 본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40을 훌쩍 넘기고 이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고 나니 발견되는 나의 모습들이 조금씩 보인다. 진작 알았더라면!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제대로 못 본다는 사실을 알아 다행이다. 감사한 하루, 새로움이 피어오른다.

프레데릭 프랑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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