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광석 시인
<꽃도 사람처럼>
무늬5 나도 좀 울고 싶다
채광석 시인
일가친척 어른들 달력을 떼어내듯
앞다투어 한세상 떠나가는데
웬일이냐 친족의 우물을 나눠먹었을
이놈의 물기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팽목항을 네 번이나 다녀왔지만
난 눈물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연로하신 부모가 세상을 뜨는 날에도
이놈의 눈물샘이 끝내 터지지 않을까
참 걱정스럽다
나는 슬픔이 말라버린 것일까
누군가에게 슬픔을 적출당한 것일까
저 홀로 뺨을 타고 내리던
물기들은 서너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건 감루가 아닌 노안의 혼적,
이렇게 중얼거린 말들이 씨가 되었는가
나도 좀 울고 싶다
지금 당장 여기서 꺼이꺼이
시간과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
느닷없이 뒤늦게 찾아오는 그런 눈물 말고
자다가깐 새벽 어느 한 밤
까닭도 없이 저 홀로 새는
그런 눈물 말고
채광석 시인.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났다.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년 2번째 시집<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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