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13 형의 안부를 묻는다
채광석 시인
담장 장미꽃냄새 코를 찌르던
개봉동 어느 오르막길 끝집에
안경 쓴 한 형이 살았다
본업은 시인이었고 부업이
안경점 사장이었는데
최루탄이 폭설처럼 쏟아진 어느 늦가을
여기서 시 열심히 써보지 않을래.
개봉동 쪽방 한 칸과 낡은 286 컴퓨터 한 대를 선뜻 내주었다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섬세한 서정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목울대만 뻣뻣했던 시문 한 줄 한 줄마다
빨간 펜이 좍좍 그어지곤 했다
쪽방을 제대로 청소 못 하고 나간 날이면
손 글씨로 쓴 레드카드가 붙어 있었다
일상도 혁명가처럼 정결히.
무안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지만
왠지 그 형만 쭉 따라가다 보면
그 길 끝에 흰 빛 도는 세상이 서 있을 것 같았다
최루탄 털고 들어오는 늦은 밤이면
형이 끓여놓은 식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새벽 시를 쓰곤 했었는데
혁명은 쉽사리 오지 않았고
난 군복으로 옷만 바꿔 입었다
그 뒤로 개봉동에 들르지 못했는데
아직도 그 오르막길에는
담장 장미꽃냄새 월담하고 있으려나
많이 늙었을 터인데 이 밤도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지는 않으려나
채광석 시인.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년 2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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