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음력 일월 메주로 장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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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음력 일월 메주로 장 담그기
  • 조은영
  • 승인 2024.03.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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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회룡)

 

한해를 시작하는 정월에는 부엌살림에서 빠질 수 없는 장 담그기를 행사처럼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잘 띄워놓은 메주로 볕 좋은 음력 일월을 놓치지 않고 메주로 장 담그기를 마쳤습니다. 굳이 말일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지금껏 해오던 일이라 전혀 무시할 수가 없어서 사부작 움직이기 좋은 손 없는 날을 잡았답니다. 시어머니께 물려받은 장항아리는 소독까지 마무리해놓고, 몇 해 전에 마련한 참숯도 챙겼습니다. 이맘때 쓰려고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둔 건 고추도 빠질 수 없지요.

 

달걀으로 소금 농도 맞추기

172미터 암반에서 나오는 청정한 지하수를 항아리에 받아놓고 소금을 녹이면서 염도를 측정합니다. 메주를 잘 삭혀줄 소금의 농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어서 긴장을 하게 합니다. 달걀 하나를 씻어서 소금물에 넣고 소금을 더해가면서 달걀이 떠오르기를 기다립니다. 달걀은 알맞은 소금물 농도가 되었을 때 동전 500원 크기만 한 표면을 보여줍니다.

염도를 맞춘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메주 장 담그기는 언뜻 보면 단순하면서 간단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별한 날을 잡고 정성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된장과 간장이 오랜 세월 동안 전통 음식문화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콩 농사를 짓지 않아서 복흥에 사는 지인에게 잘 띄워진 메주 다섯 덩이를 구입하여 불을 지핀 구들방에서 3~4일을 더 띄운 뒤 작업 당일 메주 세척을 하였답니다. 단단하게 잘 마른 메주를 물에 넣고 먼지를 털어내며, 눈에 보이는 곰팡이를 제거하고 따뜻한 햇볕에 살짝 건조하여 소금물이 든 항아리에 넣으면 마지막 마무리 작업만 하면 끝입니다.

메주를 넣은 항아리에 건 고추와 참숯을 넣은 다음 발효한 녹차잎도 살짝 투척하였습니다. 장 담그기는 마무리되었지만, 메주가 뜨지 않도록 무언가를 사용하여 눌러 주어야 합니다. 작년에는 이 마무리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2% 부족한 장 담그기가 되었기에 올해는 대충 넘길 수가 없었지요. 옆지기가 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잎사귀 달린 녹차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왔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이번 장 담그기는 차향 가득한 녹차된장, 녹차간장이 될 것 같습니다.

 

밥상에서 인심이 난다

회룡마을 경로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

 

마을이 분리된 뒤로 회룡마을에도 경로당이 생기고 65세부터는 경로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나이가 부족했지만 함께하자는 요청으로 마을주민들 사이에 둘러앉아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지만, 함께 먹는 밥이 맛있다 보니 반찬거리라도 들고 찾아가게 됩니다.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신 토착민과 귀농귀촌하신 분, 젊어서는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귀향을 하신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밥상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던가요? 음식을 나누는 것처럼 서로를 가깝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인정을 나누고 친분을 쌓으며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흐뭇하고 보기에도 행복합니다.

집 식구들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마을주민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면 선뜻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식사도우미를 나서주신 이장님 사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옆지기가 만든 빵

 

주변에 가게가 없는 시골에서는 집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간단하면서 요기가 될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다가 오래전부터 관심은 있었으나 미루어 왔던 우리밀 발효종 빵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차례의 기초교육을 받았지만, 밀가루와 소금물, 발효종만을 이용하여 빵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될 무렵 천연발효빵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옆지기에게 빵 만드는 일을 맡기고 저는 맛을 보고 보조하는 수준으로 한발 물러섰답니다.

매일 빵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게 되었답니다. 맛있게 먹어주는 이웃이 있어서 만드는 사람도 보람이 있어서인지 지칠만한데도 옆지기의 빵 만들기는 쉬질 않습니다. 갈수록 풍미를 더해가는 빵이긴 하지만 달달한 제과빵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드시기에는 마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든든히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바랄 것이 없었지만, 먹거리가 풍족해서 넘쳐나는 현대에는 건강을 위해서 식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먹어야 이로운지까지 생각하여야 하기에 몸 안으로 들어가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음식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잘 죽는 일만 남았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노후의 삶을 병상에서 지낸다면 참으로 슬플 것입니다. 오래전 저희 할머니는 기관지 천식을 앓으셨지만, 스스로 움직이며 부지런한 일상을 보내시다가 여든셋에 조용한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삶을 지켜보면서 정갈한 소식과 일상에서의 작은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얼마 전 이별한 시어머니는 골다공증으로 병원생활을 하시면서 약해진 뼈 건강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머님이 좀 더 기력이 좋으실 때 음식을 통한 영양섭취와 근육운동을 하시도록 권해드렸더라면하는 뒤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노인들이 모인 곳에는 어느새 홍보관 직원(?)분들이 파고들어 알 수 없는 물건들을 만병통치약처럼 판매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약만 먹으면 아픈 곳이 없어질 것만 같아서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모아두었던 비상금을 건네주는 일들이 안타깝게도 비일비재합니다.

지역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도록 많이 있지만, 바른 먹거리와 건강관리를 위한 차별화된 교육프로그램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을주민들과 식사하는 도중에 80대 어르신이 나는 이제 잘 죽는 일만 남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눈빛에서 아픔 없이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노년의 아픔은 자존심과 의지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동네 마실도 다니면서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인생과 이별 하고 싶은 소망은 누구나의 바람일 것입니다. 70세부터 80~90대에 이르는 노령의 시기를 병원에서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을 위한 노력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어 실천하고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은 겨울이 들락거리는 날씨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홍매화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겨울이 들락거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홍매화가 저물어가고, 매화꽃 사이를 휘날리던 봄눈은 꽃잎처럼 스며들지만, 마냥 좋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미리 싹을 틔운 두릅이 서리에 냉해를 입을까 봐 종이컵을 씌워놓은 농부의 타들어 가는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강가에 버들강아지 봄소식 전한지 한참 되었건만, 산간에선 겨울눈이 내렸습니다. 아직은 음력 2월입니다. 작은 목수건 하나가 체온을 높인다고 합니다. 따뜻하게 입으시고 건강한 봄 마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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