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첫눈 오는 날, 손녀 다미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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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첫눈 오는 날, 손녀 다미가 왔습니다
  • 조은영
  • 승인 2023.11.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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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회룡)
작년 눈오는 날 내룡마을 회관 부근에서 찍은 사진

 

겨울 시작인 입동이 지나고 주말에 비까지 내려서인지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아직 제 갈 길을 가지 못한 곤충들은 어디든 조금이라도 차가움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눈치 보지 않고 찾아듭니다. 산과 강이 인접한 우리집에는 이름모를 곤충들과 무당벌레, 거미, 사마귀 등이 창고 안이며 벽에 걸어둔 작업복, 기둥과 벽면사이를 거쳐 방안까지 찾아듭니다.

특히 창고에 정리해둔 종이박스 안에는 벌레들이 집을 만들고 알을 숨겨 놓기를 몇 년째 반복하며 겨울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담하지만 햇살 좋은 나의 작업실에도 추위를 피하려, 빛바랜 사마귀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지난 봄에 만들었던 장금이 앞치마를 수선(업싸이클링) 중이었는데, 옷감을 재단하다 잘려나간 자투리 원단 사이로 추위에 오그라든 사마귀가 스멀스멀 파고듭니다. 모른 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사마귀와는 함께할 자신이 없어서, 사마귀가 숨어든 옷감을 집어 밖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한창 시절엔 때깔 좋은 초록으로 튼실하여 펄쩍펄쩍 날던 녀석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한쪽 날개가 이미 검은 갈색으로 변하였고, 몸뚱이는 거죽만 남아 말라붙은 상태라 얼마 견디지 못 할 것입니다. 언젠가 우물가에 있던 사마귀 몸 안에서 기어나오던 기다란 연가시를 본 뒤로는 울렁증이 일어나 자리를 피하곤 했었는데, 기생하던 연가시마저 떠나버린 겨울 앞에 선 녀석은 마치 떨어지는 낙엽 마냥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산골살이 8년째 세월이 약이다

섬진강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읍에 비해서 체감으로 느끼는 온도가 3도 이상은 떨어질 것입니다. 강바람까지 더해져 두터운 털옷과 방한화까지 갖추어야 모진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지인의 집 구들방에 들어왔다던 지네와 벌, 무당벌레, 새내기 등 이름모를 벌레들까지 집 안팎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곤충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철모르는 몇몇 곤충들도 곧 제 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산골살이 8년째 접어들면서 벌레나 곤충들을 보는 것이 무뎌지고 익숙해졌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곤충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러 개의 다리로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제 몸을 늘려가며 어떻게든 통과해 버리는 지네입니다. 특히 습한 장마철에 많이 볼 수 있는데, 화장실 하수구나 창틀 틈을 통과해 실내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물기까지 하는 지네는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습니다. 지네에게 한 번 물리면 어찌나 아픈지 3일 정도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녀석들이 다닐만한 곳에 소독을 해두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아무리 지독한 지네라 하더라도 겨울 속으로 사라집니다. 지네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을 지독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의 터전에 침입자는 인간일 것입니다.

마지막 잎새까지 떨어진 앙상한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들

 

할머니가 정지에서 서성이던 모습

산간지역에는 벌써 첫눈이 지나갔습니다. 집 앞 섬진강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산 중턱까지 내려앉은 하늘구름과 맞닿아 신비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이런 날에는 강에서 가장 깊다는 두무소깊은 곳에 살고 있는 천년 묵은 용왕의 아들 천용이 승천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겨울은 우리 곁으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양쪽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아직 장갑을 끼우지 않은 손이 시려워 주머니를 찾다가 땔감이 있는 장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구들방에 불을 지펴야겠습니다. 아궁이에서 자작자작 나무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다가옵니다. 고구마도 넣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불을 지필 때면 오래 전 나의 할머니가 정지(부엌)에서 서성이던 모습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일찍이 홀로되신 할머니는 장성에서 시집 온 연유로 장성댁이라 불리워졌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세면대 꼭지만 돌리면 뜨거운 물과 찬물이 콸콸 쏟아지고 스위치만 눌러도 따뜻한 밥이며 국 등 맛있는 음식들을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지만, 그 시절 할머니는 가마솥을 걸어놓은 아궁이에 소나무 낙엽이나 가는 나뭇가지를 불쏘시개로 장작에 불을 지피셨습니다. 땔감 중 적당히 튼실한 나뭇가지를 부지깽이로 사용하셨는데, 불이 장작에 붙기까지는 부뚜막으로 나오는 매운 연기에 몇 번이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었답니다.

천정이며 벽면이 시커먼 그을음으로 도배가 되었지만, 할머니는 몸에 베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덕분에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식구들은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세안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그 겨울이 내 안에서 꿈틀

겨울이 되기 전에 또래의 친구들은 땔감용 낙엽을 담아오려고 포대와 갈퀴를 들고 산으로 갑니다. 자매인 경우에는 갈퀴로 낙엽을 긁는 일과 주워 담는 일을 분담해서 합니다. 아직 저학년인 아이들이었지만 손이 어찌나 빠르던지 본인 밥값은 충분히 해내었지요.

생존을 위한 불지피기가 아닌 안락함과 그리움으로 불을 지피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굴뚝 끝에 배출기를 달아놓고 가마솥이 걸리지 않은 아궁이에 약간의 불쏘시개만을 사용해 토치로 불을 붙인 뒤 공기구멍이 있는 아궁이 문을 닫고 배출기 속도만 조절하면 간단하게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할머니의 아궁이는 아랫목만 따스워 문풍지옆 물그릇이 얼어붙고, 새벽녘에 군불까지 넣어야 하였지만 적은 땔감으로도 온 방안이 따뜻한 나의 구들방은 한 번의 불 지피기로 다음날까지도 온기가 충분하답니다.

저고리에 무명치마를 즐겨 입으셨던 할머니는 하얗게 센 긴 머리를 쪽을 틀어 은비녀, 금비녀를 번갈아 가며 꽂으셨습니다. 첫눈이 지나가고 스산한 겨울바람이 손끝을 베이는 날 꽃이 지 듯 떠나신 할머니의 그 겨울이 내 안에서 꿈틀거립니다.

아들이 다미를 데리고 내려온다는 소식과 함께 올 들어 처음 내리는 첫눈이 밤 하늘 가득 별이 되어 반짝입니다.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배낭을 짊어진 채 기차를 타면 남원역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10분쯤 소요된답니다. 순창에 기차역이 없어서 남원역까지 마중을 나가야 하지만, 다미를 보는 행복감에 불편함도 잊습니다.

새들은 아직 남아있는 감 반쪽을 잊지 않고 찾을 것입니다.

 

첫눈 오는 날 우리에게 다미가 왔습니다. 손주 다미를 안으며 아이의 이름을 살포시 불러봅니다. 그 옛날 할머니의 자장가가 을씨년스러운 겨울날을 온기로 채웁니다. 마지막 잎새까지 떨어진 앙상한 감나무에 매달린, 하나 남은 감을 까치가 쪼아 먹었나 봅니다. 새들은 아직 남아있는 반쪽을 잊지 않고 찾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반쪽이 매달려 있기를 바라봅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살아있는 생명의 흔적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한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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