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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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 조은영
  • 승인 2024.01.30 17: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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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회룡)
물길 위를 걸어 보았습니다. 가다 보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이른 아침 풀잎에 내려앉은 뿌연 서리가 겨울 냉기와 어우러져 차갑게 엄습해 오지만, 검정색 털장갑을 낀 양손은 어느 때보다 따뜻합니다. 시어머님께서 착용하시던 장갑이 셋째 며느리인 나에게 유품으로 전해졌습니다. 금붙이나 장신구도 아니어서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평범한 장갑이 처음 볼 때와는 달리, 손에 낄 때마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온기로 가득하게 합니다.

 

시어머니만큼 강한 어머니 본 적 없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저는 우리 시어머니만큼 강한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딸린 식구들을 보살피고 먹여 살리느라 남들이 단잠에 빠져있을 이른 새벽에 쏟아지는 별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비몽사몽 물 한 모금만 위장에 채운 뒤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향하셨지요. 주 고객이 식당업을 하거나, 채소가게 사장님들이어서 고달픈 새벽 장사 일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또래의 주부들이 아직은 꿀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지만 시장에 도착한 어머니의 당찬 목소리는 함께 일하시는 시장 식구들이 바삐 움직이도록 선두에 나섭니다.

첫 마수손님이 다녀가고 7명으로 구성된 팀원들이 제각기 맡은 역할들을 일사천리 해내면서, 앞치마를 겸한 국방색 돈주머니(전대)에는 백원짜리 동전부터 오백원, 천원, 만원지폐까지 넘쳐나도록 쌓입니다. 도매업인 새벽장사가 끝이 나면 전대 안의 돈을 함께 일한 동료들과 결산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시는데, 한 손에는 과일이 들려 있습니다. 하나뿐인 딸 시누이가 과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체력에서 품어져 나오는 억척스러움이 어찌나 강하던지, 때로는 버겁고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내 새끼를 살려내려는 모성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겁니다. 보릿고개를 겪으셨던 부모님 시대 배고프지 않았던 사람들이 몇이나 되었을까요? 열악한 환경에서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영특함과 강단으로 시장 일을 하신 어머님은 장사를 시작한 지 몇 해 만에 산지 밭 거래상을 하며, 시장에서 잔뼈가 굵어지고 후일에는 농산물시장 중매인을 하셨습니다.

장사의 기본은 보는 눈이 예리해야 하고 순간의 판단이 흥망을 결정한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두 눈에서 빛이 났습니다. 어머니의 주 종목은 배추였습니다. 고랭지에서 생산된 배추를 사기 위해 새벽 2시에 5톤 차량을 타고 산지에 도착하면, 현지에서 고용한 인부들이 일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산지 밭에서 녹색 망에 배추3폭을 담도록 작업이 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하나의 배추를 차량에 잘 실어서 시장(공판장)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배추를 차에 적재할 때 고난위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많이 실어야 하고 쏟아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을 비롯한 숙련된 작업자들은 물건을 실은 작업차가 시장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작업을 마무리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두둑해진 전대를 풀어 놓으시자마자 피로에 지친 몸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쓰러지듯 주무셨습니다.

성향이 외곬으로 싹싹하고 다정한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시어머님이 좋아하는 수더분한 며느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아픔으로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한이 스쳐 갑니다. 사실 어머니께서 억척스럽고 강인하지 않았다면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고, 자식들의 현재의 모습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작은 여자의 몸으로 견뎌냈을 그분의 삶이 아리게 파고듭니다.

 

그분에게도 여인의 모습이

그토록 강했던 그분에게도 여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은비녀를 꽂았던 쪽진 머리카락을 풀어서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한 그날이었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니 사이에서 어색한 냉기가 흘렀고, 시아버님께서는 단정한 머리를 망가뜨려서 선머슴아가 되었다고 속상한 푸념을 하셨지요. 드러내 놓고 애정 표현을 해대는 요즘 젊은 세대와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그분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랑방식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아무리 바빠도 머리염색을 하여 흰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까만 머리카락을 오래도록 유지하셨답니다.

이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 년에 10번 정도 지내는 조상님 기일은 정성으로 챙기셨지요. 평상시에 맘 놓고 먹지 못했던 고기며 과일, , 나물, 곶감과 병치, 조기 등 각종 생선과 전까지 푸짐한 제사상은 상다리가 휠 정도였습니다. 또한 바깥 제사인 시제에는 기본제사 음식에 참석한 일가친척들이 먹을 점심까지 준비하셨으니,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집안사람들이 시제에 참석하였는데,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라 준비한 음식은 모여든 집안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멀어질 수 있었던 일가친척들이 돈독해지는 끈이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살아생전에 배고픈 설움을 저승에서도 겪을까 봐 조상님 기일을 정성으로 모셨던 부모님 세대를 고루하다 판단하여 후손들이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사밥을 챙겨 줄 거라 믿었던 장남을 마음속 자식으로 삼으신 어머니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때 그 시절 옛 분들에겐 생전이나 사후의 밥에 대한 집착은 그 들만의 또 다른 생존이었습니다.

사실 부모세대와 밀접한 인생후반의 후손들에게도 전해 내려오는 제사를 그대로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후손인 형제자매가 한자리에 모여서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형편에 맞게 기념일을 기억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들 집으로 갑시다

나이가 들면 주변 정리를 하여야 한다며 묵은 살림살이를 버리거나 재활용에 내어놓기도 하며, 새로운 물건은 사지 않으려고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일이 말처럼 간단하질 않습니다. 한번을 쓰더라도 필요한 것들은 있어야 하기에 쉽사리 짐들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짐정리는 자손들의 몫이 됩니다.

어머님의 손때가 묻은 살림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모든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알 수 없는 미련 때문인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며칠 후면 다른 사람들의 집이 되는 텅텅 비어있는 집안을 둘러보던 남편이 뜻하지 않게 소리를 내어 어머니를 부릅니다. “어머니 여기 계시지 말고 갑시다. 아들 집으로 갑시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방, 작은방, 부엌, 거실을 차례로 돌며 어머니를 부르는데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울컥하여 눈물이 돌았습니다.

사흘 내내 하염없이 내리던 하얀 눈발이 무릎까지 차오르던 그해 겨울날, 소금물에 절인 무가 삭아서 싱건지가 되었습니다. 주물 솥단지에 밥그릇을 엎어놓고 찐 물고구마를 고물고물 자식들에게 내어놓으며, 행여나 체할까 싱건지로 목을 축이라 하셨지요. 당신이 있어서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나뭇잎이 떨어지듯 무심한 이별을 고 하신 어머님의 평안한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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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성 2024-02-07 11:16:45
가슴찡한 시모님에 대한 사랑...
며느리우 고운 심성이 봄 볕처럼 눈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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