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천천히,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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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천천히,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
  • 조은영
  • 승인 2024.02.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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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회룡)
겨울비와 차가운 바람, 하얀 눈이 오고 가는 사이에도 따사로운 햇볕과 파란 하늘이 펼쳐집니다.

 

겨울비와 차가운 바람, 하얀 눈이 오고 가는 사이에도 따사로운 햇볕과 파란 하늘이 펼쳐집니다. 아직은 엄동설한이라 언제라도 매서운 한파가 찾아들겠지만, 어쩌다 드리운 봄날 같은 하루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길을 걸었습니다.

담벼락 모퉁이에서 길고양이 세 마리가 밥을 먹고 있습니다. 식당이 많은 골목이라 손님이 먹다 남긴 잔반을, 누군가 굶주린 고양이에게 주고 간 것 같습니다. 사료가 아닌 사람이 먹다 남은 밥에는 생선 대가리와 가시도 섞여 있습니다. 그릇에는 물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야생의 고양이들은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마실 물까지 얼어버리는 날들을 보내며, 봄이 오기를 오매불망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을 겁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선물 같은 햇볕 아래 놓인 푸짐한 먹거리에, 사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목숨 줄 같은 밥을 먹는 고양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지나던 발길을 돌렸습니다.

 

비밀의 숲을 온전히 내주는 겨울

길을 걷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저 먼 길을 언제쯤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발바닥이 뜨거워지고 숨이 차오르면서 겉옷이 버거워질 무렵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실감해 봅니다. 강 건넛집 맞은편은 적성면으로 현수교만 건너면 강경마을과 도왕마을로, 아직은 원시림인 벌동산과 은적골 가는 길이 있습니다. 바람이 매서워 돌아설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옆지기와 함께한 길 걷기라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숲이 푸르름으로 빽빽한 계절에는 그 안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겨울은 우리에게 그동안 감추었던 비밀의 숲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마른 낙엽으로 쌓인 숲속 주변 나무에는 사람들이 나무에 구멍을 내고 호스를 대어서 수액을 빨아대고 있었습니다. 길을 걷기 시작한 지가 한참이나 지났기에 목이 말라오던 터라, 배낭에 준비해 온 생수를 마시면서 자신의 수액을 빼앗긴 나무들도 목이 마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윙윙기세가 거칩니다.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하면서 걸음걸이에 속력을 내어 봅니다. 산속은 해 떨어지면 곧바로 기온이 떨어지고 냉기가 몸속까지 파고들어서 견디기 힘들어집니다. 점심 후의 늦은 출발이라 목적지를 돌고 돌아오려니 맘이 급해집니다. 혼자가 아닌 동행이 있어서 가능한 은적골 가는 길은 힘이 들지만, 설렘과 기쁨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배낭이 무거울까 봐 작은 생수병을 챙긴 탓에 마실 물이 몇 모금 남지 않았습니다. 오이라도 챙겨올 걸 아쉬움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보입니다. 앞서가던 백설이(강아지)가 어느새 달려가 벌컥벌컥 흐르는 계곡물을 마셔댑니다. 사람도 동물도 메마른 목을 축여야 살아갈 수 있기에 물을 생명수라고 하나 봅니다. 다디단 물을 마신 백설이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날아갈 듯이 앞장서 달려갑니다.

백설이가 앞장서 갑니다.

 

나무들의 삶에서 우리네 인생을

모든 식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뿌리만을 의지하며 칩거하는 와중에도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는 그 빛을 잃지 않고 숲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타고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오랜 벗들과 맞이할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홀로 지켜낸 겨울 이야기를 긴 잠에서 깨어난 친구들에게 들려주겠지요.

자동차를 이용하면 몇 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일부러 시간을 내어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그리울 때는 걷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한나절 길 걷기에는 생수와 풍경을 담을 휴대전화만 있으면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산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인적이 드문 숲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와 가시덤불이 곳곳에 엉켜있지만, 초록으로 무성한 시절 칡넝쿨은 나무와 나무들을 휘감아 얽매이게 하였고 크고 작은 가시덤불은 숲을 장악하여 인적을 막았었지요. 태어난 그 자리에서 희로애락 일생을 보내야만 하는 나무들의 삶에서 우리네 인생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보았던 신우대를 은적골 가는 숲에서도 보았습니다. 나무와 식물들 사이에서 의젓하게 자리 잡은 이끼 낀 바위들이 겨울 산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것 같지만, 한결같이 가지의 뻗어난 방향이 빛을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자란 큰 나무에 가려진 늦은 나무는 키가 큰 나무를 피해서 빛을 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부러져서 멋대로 자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속에는 크고 작은 식물들과 다람쥐, , 족제비, , 고양이, 고라니, 멧돼지 등 수많은 생명들이 스스로 질서를 잡아가며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고령 주민들이 따뜻한 봄 마중하셨으면

우아한 자태의 백로 한 마리가 물 위로 떠 오른 돌을 지지대 삼아 미동도 없이 서 있습니다.
물오리 떼들이 유유자적 자유로이 움직이며 발길질을 합니다.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한 집 앞 강가에는, 우아한 자태의 백로 한 마리가 물 위로 떠 오른 돌을 지지대 삼아 미동도 없이 서 있습니다. 백로 주변에는 물오리 떼들이 유유자적 자유로이 움직이며 발길질을 합니다. 평화로운 철새들의 놀이도 잠시, 동행한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자 낌새를 알아챈 백로와 오리들이 푸드덕물살을 가로질러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선두에 선 오리 두 마리와 따르는 무리들, 그리고 뒤에서 몰고 가는 오리들의 행렬을 바라보니 고즈넉했던 마음에 벅찬 기쁨이 찾아듭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춥고 배고픈 겨울은 야생의 동물들에게 더욱 혹독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긴 겨울 속에서 반짝이는 봄날 같은 햇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고양이와 철새들이 찰나의 빛으로 생명을 이어갑니다.

개굴개굴어디에선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며칠째 이어지는 따뜻한 날씨에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다시 추워진 날씨로 추위를 피해서 하수구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경칩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개구리가 잘 견뎌 주기를 바라며 돌아서는데, 맘이 아픔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은 자연의 법칙은 다시 봄을 알리고, 우리는 봄을 맞이합니다. 집 앞 홍매화 가지에서 붉은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농부의 봄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를 알리며,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게 합니다.밭일 하시는 마을 분들의 연령이 고령이라 무엇보다 건강이 염려됩니다. 소중한 건강 잘 챙기시면서 따뜻한 봄 마중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소망해 봅니다.

집 앞 홍매화 가지에서 붉은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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