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교육(7) ‘낫’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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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교육(7) ‘낫’ 다시 보기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1.10.12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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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교장(순창여중)

낫질의 계절이 왔다. 중학교 때까지 추석이 지나면 아버지는 아침 일찍 조선낫으로 고구마 넝쿨을 걷어낸다. 어머니는 새참을 준비하고 외양간 옆 헛간에서 호미와 쇠스랑을 챙긴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두 동생과 밭에 가면 아버지는 낫으로 고구마 넝쿨을 소가 먹을 수 있도록 쳐내는 작업을 시켰다. 칡넝쿨 이상으로 얽히고설킨 고구마 넝쿨을 소먹이용으로 낫질하는 작업은 무척 힘들고 요령도 필요했다. 낫질로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굳은살이 생기고, 손가락을 몇 차례 베면서 일을 추려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나락을 베면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가니까 밥값한다고 칭찬도 들었다.

삼십이 넘으면서 고향 떠나 살며 손에 낫을 잡는 날이 별로 없었는데, 작년에 명퇴한 아내가 앞장서 삼십 평 정도의 주말 텃밭을 일구며 낫질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새삼 낫과 낫질의 위대함을 돌아보고 있다.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른 사람들 덕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아주 무식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재음미되어야 할 속담이다. 농경사회에서 낫 놓고 기억 자 모른 사람은 날마다 낫질을 수만 번 하는 사람이다. 온갖 수탈로 먹고살기 힘든 빈농이나 안착하지 못한 유민, 노비와 머슴이다. 식구들과 먹고살기 위해 낫으로 풀 베고, 곡식 거두고, 땔감 준비로 글자 옆에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무식을 말할 수 있는가?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른 사람들 덕으로 먹고살았던 지배층은 백번 뉘우치고 깨달아야 한다. 지배층이나 배운 사람들이 나라와 세상을 어지럽히고, 손으로 일하는 분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온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손으로 거둔 곡식, 왜 먹지 못하는가

조선왕조도 19세기 이후 지배층의 무지와 권력다툼, 탐욕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삼정 문란과 세도정치, 탐관오리의 패악에 낫 들고 일하는 사람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정약용이 강진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비참함을 기록한 <다산시선>을 보면, “장독엔 소금 한 톨 남지 않고, 뒤주엔 쌀 한 톨 없노라. 큰 솥 작은 솥 다 앗아가고 숟가락 젓가락 다 훔쳐 갔네”, “마른목 길쭉하여 따오기 모양이요. 병든 살갗 주름져 닭살 같구나. 우물은 있다만은 새벽 물 긷지 않고, 땔감은 있다만은 저녁밥을 짓지 못해라는 시구가 나온다. 내 손으로 거둔 곡식을 왜 식구들이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는가?

낫과 호미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은 1876년 일본이 군함을 앞세워 맺은 강화도 조약으로 더욱 피폐해졌다. 부패하고 무능한 왕조와 지배층은 제물포, 원산, 부산, 목포, 군산항 등을 열어주었다. 항구를 통한 조선의 쌀은 지배층의 향락과 사치를 위한 물품으로 교환되면서 산더미처럼 쌓여서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낫을 움켜 들고 일어난 동학혁명

생존을 위협하는 외세와 무책임하고 무능한 나라, 썩어빠진 지배층을 넘어서는 혁명의 들불은 필연이다. 1894년 갑오년 1월부터 고부 봉기로 본격화된 동학농민혁명은 낫으로 수확할 곡식이 없는 농민들이 낫을 움켜 들고, 녹두장군 부름에 떨쳐 일어섰다. 동학농민혁명군이 부안 백산에서 발포한 격문에는 목숨을 건 혁명의 대의와 결연함, 대동 세상을 향한 절절함이 있다.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목을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 밑에서 굴욕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지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은 후회하여도 돌이키지 못하리라. 갑오년 327.”

 

함께 사는 사회’, 낫과 낫질 필요

격문 발포 1년 후 3월에 농민혁명지도자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등은 종로에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공주 우금치 전투 후 방방곡곡에서 수십만의 농민군과 백성들이 대동 세상을 위해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처절하게 스러져 갔다. 그러나 낫을 든 동학농민혁명군의 대의와 숭고한 희생은 구한말 의병 활동3.1운동과 임시정부 구성-일제강점기 독립운동-4.19혁명-5.18광주민주화운동-876월항쟁-촛불혁명의 커다란 물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함께 사는 사회로 가는데 여전히 낫과 낫질이 필요하다.

신문을 펼치면, 낫 놓고 기억 자를 너무도 잘 아는 식자층과 권력자들이 지금도 나라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최순삼 교장(순창여중)
최순삼 교장(순창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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