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20) 꽃을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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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20) 꽃을 세다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2.02.23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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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 토마토 모종을 아주심기 했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 다음 날 눈이 내렸다. 그다음 날에도. 연이틀 아침 하우스는 눈에 덮여 새하얗게 빛났다.

그래도 하우스 안은 눈발이 날리는 밖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어린 모종들이 하우스 안을 가득 채우고 나니 한껏 이르지만 그야말로 봄다웠다.

아주심기를 한 뒤 모종에 물을 흠뻑 주고 나면, 2월 초 하우스 안의 어린 토마토는 천천히 자란다. 노란색 끈끈이 트랩은 벌레들을 막느라 서둘러 설치했다. 농장에 출근한 다음 모종을 살펴보는 일로 시작한다. 모종이 반 농사라고 떡잎 하나도 섣불리 볼 수 없다.

처음 몇 해는 아주심기를 한 다음 가장 큰 일은 모종을 바꿔주는 일이었다. 땅에 심은 지 하루 이틀 뒤면 시드는 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심으면서 뿌리나 줄기를 다친 것들이다. 뽑아내고 여분의 모종으로 다시 심는다.

▲눈 하우스, 어린 토마토

그리고 생장점이 꺾인 모종을 찾아본다. 식물은 뿌리와 줄기에 생장점이 있다. 뿌리의 생장점은 물과 양분을 찾아 땅속으로 자라서 뿌리가 몸체를 지탱하게 해준다. 줄기 생장점은 햇볕을 향해 위로 자란다. 잘 자라라면 생장점의 세포 분열이 왕성해야 한다. 생장점이 상처를 입거나 제거되면 오옥신이 생산되지 않아 더 자라지 않는다.

토마토의 끝눈과 곁눈에 생장점이 있는데, 곁눈은 제거하고 끝눈을 곧게 키운다. 이 부분은 가장 여린 부분이니 상처에 무척 민감하다. 농사 경험이 적을 때는 그 생장점이 조금만 훼손돼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린 모종 단계를 한참 벗어나 허리 높이로 자라고 나서도 끝눈 생장점을 실수로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코 미안!

어린 토마토든 허리만큼 자란 토마토든 생장점 부분을 잃으면 토마토에 아이코 미안!’ 소리가 절로 나오고 마냥 속상했다. 올해부터는 생장점을 잃은 모종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왜냐면 곁순에도 생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 전전긍긍하며 이런 토마토도 키워보고 저런 토마토도 키워보니, 첫 꽃이 피기도 전에 끝눈 생장점을 잃는다고 해도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끝눈의 생장점이 좋지 않은 모종도 곁순을 키워 기다리면 되었다. 곁순은 더디기는 하다. 한줄기로 자라난 원래 순보다는 모양도 이어져 있는 힘도 약하다. 그래도 자란다. 거기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농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보면 처음 생장점을 그대로 갖고 자란 토마토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수확을 한다. 그래서 빨리’ ‘많이’ ‘이라는 조급증을 살며시 내려놓고 기다림을 갖기로 한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고 생장점이 없다고 포기하고 무조건 뽑아내는 게 더 문제였다. 생명은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살아낸다.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을 세다

▲ 꽃이 피었다

열두 개다! 하우스 한 동에 핀 꽃이다. 처음 핀 꽃이 눈에 띄면, 띄엄띄엄 눈에 핀다. 그 꽃을 세었다. 그다음 날도 하우스에 나가 꽃을 세 보았다. 다음 날은 거의 두 배 가까이 는다. 그리고 또 두 배, 하우스 한 동에 핀 꽃이 전부 이백 개 가깝다. 물론 낱낱이 센 건 아니다.

어떤 꽃은 활짝 피고, 어떤 꽃은 반쯤 피었다. 토마토 한 주에 세 개 핀 것도 있고, 꽃망울이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기만 한 것도 있다. 이제 겨우 맺히기 시작하는 것도 있어서 첫 꽃이 피는 것도 모두 제각각이다.

한 닷새 꽃을 세었다. 매일 센 꽃을 합치면 수백 개다. 꽃을 세는 것은 퍽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었다. 예쁜 것을 헤아리니 당연하지 싶었다. 숫자를 세는 일로 마음이 환해지기는 오랜만이다. 마늘 한 접을 만들 때도, 양파 상자를 채울 때도 또 고구마나 감자를 캘 때도 숫자를 셀 때가 있고 꽤 뿌듯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간질이는 일은 아니었다.

꽃을 세다 보니 토마토 키가 꽤 자랐다. 며칠 사이 여기도 꽃, 저기도 꽃이다. 이제 벌이 와야 할 시간이다. 벌들이 윙윙 날아다니면 그 소리에 꽃도 더 활짝 피어나겠지.

오늘 아침, 일어나 창밖을 보니 또 눈이 왔다. 아이고 추워, 하며 농장 걱정을 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추워, 입춘도 지났는데 투덜거린다.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면 마음도 덜컥거린다.

그래서 작년에는 어땠지? 물어보면 매일매일 쓴 농사 일기에는 작년도 비슷한 날씨였다고 한다. 작년에는 눈이 이십 센티 넘게 쌓인 적도 있었다고.

그래, 맞다 그때도 춥고, 눈도 많이 왔었다. 아무리 2월 날씨가 추워도 3월에는 점점 따듯해졌고, 하우스의 4월에는 아이고 더워라 하며 손부채를 했다. 그리고 5월에는 첫 수확을 위해 꽃을 세듯이 빨갛게 익은 열매를 셌다. 그러므로 괜찮다! 눈 내리고, 추운 날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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