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에시한줄(82)참깨를 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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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에시한줄(82)참깨를 털면서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2.08.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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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려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1977>

김준태 (金奉義)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저서, <참깨를 털며>(시집) 등 다수가 있음.

 

 

햇살속의 시한줄(82)

곧 추수하는 가을이 온다.

八十八()(팔십팔, ’) 번을 가꾸어 수확했다는 벼농사는 이제 기계가 다 해버리니 농사짓는 농부의 기쁨과 감동은 옛날보다 덜하겠지만, 아직도 자잘한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할머니의 수확 때의 기쁨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중에는 할머니가 가꾸시는 참깨가 있다. 이 참깨는 하나하나 손으로 싣고 가꾸신다. 이렇게 가꾼 참깨는 무럭무럭 자라 수확 때가 되면 마당으로 가져와 참깨를 턴다. 할머니는 참깨를 털면서 참깨야 수고했다. 고맙다하시면서 살짝살짝 두들기는데, 도시에서 온 손자는 휘파람을 풀어가면서 신나게 힘껏 두들겨 터는 모습을 보시고 그 참깨대가 아플까봐 할머니가 한말씀하셨다.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서는 안되느니라.”

법화경에 보면 입아아입( (入我我入)이란 말이 있다. 내 속에 저것들이 들어있고 저것들 속에 내가 들어있으니 서로 열결이 되어 중중무진(中中無盡) 서로 도와가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즉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내가 고통을 받으면 당신도 고통스러운 것인데, 목숨을 가진 것에 대한 외경과 동정심 없이 힘이 있다고 깻단을 마구 두들기듯 살아가고 있는 요즘 세태에 대하여 학교 문턱에도 가본일 없는 할머니가 세상순리로 한말씀하신 것이다. 이 시를 쓰신 김준태 시인은 주로 농촌생활에 대하여 시를 쓰시는 분이신데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806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에 아아 광주여 우리의 십자가여!’를 실어 신문은 즉시 폐간되고 시인은 재직 중이던 전남고에서 해직되는 등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 시는 이렇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중략)

죽음으로서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서 삶을 찾으려 했던

아 통곡뿐인 남도여

불사조여?

그 후 군부정권을 향해 한마디 더 했다.

 

칼과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흙을

찌른 칼은

어느새

흙에 붙들려

녹슬어 버렸다.

<칼과흙-밭시()>.

 

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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