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농사일기(29) 빈 논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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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농사일기(29) 빈 논을 보며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2.11.16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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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추수가 끝난 논
추수가 끝난 논

 

추수가 끝났다. 마을 앞의 풍경이 싹둑 잘려나간 것처럼 달라졌다. 황금빛으로 굽이치던 논에 콤바인이 들어선 지 며칠 만에 빈들이 된 것이다. 나락은 트럭에 실려 건조장으로 가고, 거기서 또 정미소로 갔다가 집의 창고로 돌아올 것이다.

빈 논이 된 우리 집 논바닥에는 짚이 깔렸고, 또 며칠 지나지 않아 트랙터가 지푸라기를 잘라 깔고 논을 갈아엎었다. 녹비 작물로 자운영이나 헤어리비치를 심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몇 년간 자운영을 심었는데 올해는 헤어리비치를 심기로 했다. 씨앗은 작목반에서 진즉에 받아 두었다.

 

공룡알 원형곤포사일리지

밀폐·발효시킨 가축용 숙성사료

 

‘원형곤포사일리지’

 

마을 앞에 있는 논 여기저기서 바닥에 있는 지푸라기로 만든 커다란 곤포가 생겼다. 그 곤포로는 비닐을 감는 기계가 흰색 비닐 몇 겹을 꼼꼼하게 감아 사일리지를 만들었다. 기계가 논바닥에 하얀색 알을 쑥 낳아 놓는 것 같았다. 나는 보통 공룡알이라 부르는데, 크다는 의미에서지 알처럼 타원형은 아니다. 누군가는 커다란 마시멜로 같다고도 하는데 그럴듯하다.

기계들이 나타나서 원형곤포사일리지를 만드는 풍경은 몇 년째 보아도 신기해서 한참 동안 구경한다. 지름이 1미터가 넘고 무게도 400킬로가 넘는 곤포를 몇 번 오가면 뚝딱 만들어 내는 기계의 위력을 맨 먼저 느낀다. 곤포를 비닐로 감는 기계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엌에서 작은 반찬 접시 하나를 랩핑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수박을 랩핑하는 일은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런데 그 커다란 곤포를 공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돌돌 돌리며 단단히 감는 기술은 볼 때마다 대단하게 여겨진다. 이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그런 물리적인 힘에 경이감을 더 느낀다.

놀라움은 일이 끝나면 함께 끝나고, 추수가 끝나 마냥 허전했던 빈들의 풍경이 바뀌는 것도 지켜본다. 몇 마지기 논에 공룡알십여 개가 불쑥 나타난 뒤에는 돌연 빈논의 풍경도 달라진다. 그것들을 또 기계가 번쩍 들어 논둑에 나란히 쌓아 놓는다. 며칠 지나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보내지고 나면 논은 그야말로 빈다.

원형곤포사일리지, 곤포라는 말도 사일리지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 보았다. 곤포는 거적이나 새끼 따위로 짐을 포장하는 단위라고 하는데, 곡물이나 볏단을 단단히 말아놓은 것으로 운반과 저장이 편하게 압축한 것이란다. 사일리지는 옥수수나 콩, 볏단 등 수분함량이 많은 작물을 밀폐·발효시켜 만드는 가축용 숙성사료라고 한다. 2개월 정도 지나면 발효가 되어 사료로 쓴다고.

축산농가에서 소에게 먹이는 사료의 원재료비가 폭등하면서 사료비 절감이 시급하다고 한다. 기상이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등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올해는 유독 많이 만드는 것 같다. 축산농가의 걱정이 그 곤포처럼 크지 않기를 빌어 본다.

수확한 벼
쌀은 어디론가 실려가고

 

벼농사로 얻어지는 쌀

전세계 인구 34% 식량 책임

벼농사의 클라이맥스는 모내기를 끝내고 물빛과 연둣빛이 남실거릴 때와 그 모가 자라 황금들판으로 출렁일 때인 것 같다. 오랜 옛날부터 농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그 모습만으로 넉넉하고 그득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벼농사로 얻어지는 쌀은 전세계 인구의 34%의 식량을 책임진다고 한다. 수많은 인류가 그 풍경을 알고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는 추수가 끝난 논을 방학 중이라고 했지만, 논은 방학 중에도 열어 놓은 학교 같다. 참새 떼가 내려앉고 까마귀 떼도 시커멓게 내려앉았다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도 빈논을 운동장 삼아 놀기도 한다. 추수가 끝난 논은 안개도 경작하는 듯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주말 밤, 밤새 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 소리에 잠이 깨서 한참 소리를 듣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오랜 가을 가뭄 끝에 내린 비였다. 며칠 전에 논에는 헤어리비치 굵은 씨앗을 뿌렸는데 이 비에 발아가 될 것 같다. 씨앗을 뿌리면서 논에 물을 대어야 한다, 아니다, 이야기를 나눴었다. 헤어리비치는 겨울에도 왕성하게 자라서 이른 봄 논을 푸르게 메우다가 4월 말에는 보랏빛 꽃이 만발한다. 질소비료 역할도 하면서 아름다운 경관도 선물한다. 이제 올해 논농사를 모두 마쳤다.

주말 밤의 요란했던 가을비의 흔적은 팔덕 가는 메타세쿼이아 길에 남아 있었다. 침엽수인 메타세쿼이아의 단풍을 도로에 뿌려놓았다. 단풍이 떨어진 길은 노란 눈이 내려 녹지 않은 것 같았다. 메타세쿼이아는 잎 없이,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그 큰 나무의 잎은 아주 작다. 봄이 되면 새잎이 돋아난다. 역시 작은 잎이다. 그 잎으로 메타세쿼이아는 거대한 나무가 된다.

얼마 안 있어 논에 고인 물에 살얼음이 얼고 겨울이 오겠지.

논은 방학 중이지만, 새들이 먹이를 찾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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