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농사일기(30)방학 탐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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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농사일기(30)방학 탐구 생활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2.12.14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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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12월이 되어 우리 농장도 방학을 했다. 8월에 시작해 11월 말까지 가을 작기가 끝났다. 그래서 요즘 우리 농장은 방학 탐구 생활 중이다. 방학 동안 할 일이 일기 쓰기, 독후감 쓰기, 문제집 3권 풀기, 영어 단어 외우기는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자격증 따기나 해외연수도 아니다. 물론 다음 해를 위한 복습과 예습이 필요하기는 하다.

가장 큰 숙제는 정리와 준비다. 가을 작기를 마무리하며 토마토 나무를 치우고 밭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려 있는 것처럼 농장의 다음 작기도 이번 겨울 방학이 중요하다.

우리가 농부가 되어 맞이했던 첫 학기, 그러니까 첫 작기를 가끔 떠올린다. 생애 첫 번째 농사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를 땅이 품어주었다. “농사가 제일 재밌어요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손길과 몇 번의 눈길에도 저절로자라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논에 물을 빼고 처음 토마토를 심었으니 좋은 땅이 키워주고 선물을 주듯이 병충해도 없이 자랐던 것이다. 또 중요한 시기마다 멘토가 찾아오셔서 알려주셨다. 사람들의 따듯한 걱정이나 기대 같은 것도 보탬이 되었다.

이제 농부가 되어 4년차, 겨울 방학이다. 이제 5학년을 앞두고 있으니 어엿한 초등 고학년이 된 셈이랄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교과서가 달라진다. 그림보다 글씨가 많아지고, 문장은 길어진다. 과목도 늘어나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그러니 방학도 슬기롭게 보내야 한다. 일하고, 공부하고, 가끔 놀기도 하면서 말이다.

 

슬기로운 방학 생활, 녹비작물

농장의 방학 준비는 토마토 줄기를 자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전에 겨울 동안 자랄 청보리를 파종했다. 청보리는 녹비작물인데 우리 농장의 슬기로운 방학 생활의 으뜸이 바로 이 녹비작물이다.

하우스 한 동은 가을 내내 토마토 대신 수단그라스가 녹비작물로 자랐다. 가을 햇살에 어찌나 길길이 자라는지 1미터 넘게 자란 수단그라스를 잘라냈더니 또 그만큼 자라서 잘라냈다. 그루터기에서 자라나서 아직까지 남아 있다. 꽤 많은 양을 말렸다가 파쇄기로 잘라냈고, 밭에 갈아 넣는다.

녹비작물은 수확을 마친 시설하우스의 땅심을 높이기 위해서 키운다. 녹비란 녹색 식물의 줄기와 잎을 비료로 활용하는 작물로 양분 공급 효과가 크고 땅심을 높여주기 때문에 화학비료를 대체할 수 있단다. 또 미생물 활동이 왕성해지고 작물이 잘 자라며 병충해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여 친환경 농사에 필수 작물로 인정받고 있다. 잘라낸 토마토 줄기가 시들시들해지는 걸 보면 늘 푸르던 기운이 아쉽다. 이제는 청보리가 주는 녹색의 기운에 의지한다.

 

겨우살이

농장이 한가해지니 김장과 메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세상 부지런하신 어머님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뚝딱일을 해치웠지만, 이리저리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텃밭에서 잘 자란 배추와 무, , 파를 가지고 골고루 김치를 담았다. 동치미와 배추김치를 담고 나서 배추와 무를 섞어서 백김치, 파김치, 갓과 무를 섞어서 갓김치까지. 겨울나기가 걱정이 없다.

 

김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콩 다섯 말을 샀다. 그리고 물에 불렸다. 어찌나 많던지! 앞마당에 있는 드럼통 화덕 위의 커다란 솥에 두세 번을 삶아내야 했다. 그날 새벽부터 메주 만들기의 여정이 시작됐다.

콩을 삶느라 화덕 앞에 앉아 불을 땠다. 큰 장작을 몇 개 넣고 센 불로 끓이다가, 약한 불로 뜸을 들였다. 콩대를 넣으면 확확 살아나는 불구경을 했다. 콩깍지가 타닥거리는 소리에 불길도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불을 쬐며 앉아 있다가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불멍이다. 큰 장작 하나를 남겨둔 다음 은근하게 불을 땠다.

그 사이 콩이 삶아지는지 쉭쉭 허연 김이 오르고 구수하고 들큰한 냄새가 퍼진다. 콩이 눌지 않도록 긴 나무주걱으로 바닥을 살살 긁으면서 여러 번 앉았다 일어섰다 한다. 그리고 주문을 외듯이 쉽네, 쉬어! 한다. 손으로 클 문질러 보니 쉽게 뭉개진다. 삶은 콩 몇 알을 먹어본다. 잘 익었다! 김장양념을 했던 큰 대야에 옮겨 담고 뜨거울 때 밟아서 메주를 만들었다. 이제 집안 살림도 겨우살이 준비를 끝났다. 다만 글 짓는 일은 방학도 없고 숙제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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