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고전읽기(3) 조선시대 금지된 사랑
상태바
김영연의 고전읽기(3) 조선시대 금지된 사랑
  • 김영연 주인장
  • 승인 2023.03.15 0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연(길거리 책방 주인장)

우리의 이웃동네 남원은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혹시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야기는 들어 보셨는지요?

 

유영, 김진사를 만나다

옛날옛날 한양성에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수성궁이라는 안평대군의 옛날 집이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요즘같은 춘삼월, 유영이라는 선비가 막걸리 한 병을 사들고 홀로 궁 안에 들어가 술 한 병을 다 마시고 취하여 깜빡 잠에 빠져듭니다. 문득 깨어나 어떤 젊은이와 아름다운 여인을 마주하고 들은 이야기랍니다.

세종대왕의 여덟 왕자 가운데 영특하기로 유명했던 안평대군은 학업에 힘을 쏟아 밤에는 독서에 전심하고 낮에는 시를 읊거나 글씨를 쓰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군은 하늘이 재주를 남자에게만 내렸겠느냐하면서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아름다운 궁녀 열을 뽑아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궁녀는 원래 궁의 살림을 돌보는 일꾼입니다. 하지만 안평대군의 궁녀들은 일을 하는 대신 시를 짓습니다. 하지만 늘 궁 안에만 있게 하고 바깥사람과는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연못에 갇힌 물고기요, 새장에 갇힌 새 신세인 것이죠.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어린 선비 김진사가 궁으로 대군을 찾아옵니다. 두 사람이 시를 주고받는 자리에 운영이 참여하여 벼루에 먹을 갈게 됩니다. 그 날 김진사가 잘못 휘두른 먹물 한 방울이 운영의 손가락에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금지는 깨지고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운영은 영광스러워 그 손을 닦지 않았고, 그 이후로 마음이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한 마디로 상사병이 난 게지요.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인 것을. 궁녀들은 결혼조차 할 수 없고 남정네들이랑 소문이라도 나면 귀양을 가야하는 처지였습니다.

김진사와 운영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여 무녀의 도움으로 한차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궁녀의 신세가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자란을 비롯한 운영의 동료들이 남몰래 둘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진사집 젊은 하인 특이는 진사가 궁궐 담을 넘어 들어가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들의 사랑은 깊어갔지만 두려움과 걱정도 커져갔습니다.

 

숨길 수 없는 비밀과 무서운 흉계

하인 특은 진사에게 운영과 함께 도망가라는 제안을 합니다. 운영의 재산을 빼돌리고, 진사를 죽이고 운영을 차지할 목적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의 계획을 들은 궁녀 자란이 화를 내며 말립니다.

예로부터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운영의 시에는 외로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뜻이 묻어났습니다.

멀리 바라보니 푸른 연기는 가늘기도 한데

미인은 문득 비단짜기를 멈추네

바람을 쏘이며 홀로 슬퍼하니

생각은 하늘 날아 무산에 떨어지네

 

김진사의 시에도 의심스러운 구절이 있습니다.

담장을 따라 가며 몰래 풍류의 곡조를 훔치네

 

두 사람의 시를 읽으며 안평대군도 둘 사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운영의 꿈자리도 뒤숭숭합니다. 하지만 운영은 목을 매어 결백(?)을 호소하고 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특은 얼씨구나 하고 운영의 숨겨놓은 보물을 강도당했다고 김진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김진사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운영과의 모든 일이 탄로날까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사악한 특의 거짓말이 소문이 나서 대군은 궁녀들의 방을 뒤지도록 명령을 하였지요. 그리곤 운영의 옷과 보물이 다 없어진 것을 알고 모두 죽이라는 무서운 명령을 내립니다.

궁녀들은 그동안 감춰두었던 사연을 글로 지어 올립니다. 이들은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지사다’, ‘궁궐의 법도는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게 한다’, ‘김진사를 궁으로 불러들인 것은 대군이 하신 일이다하며 서로 자청하여 자신의 목숨으로 운영의 목숨을 빌어 줍니다. 궁녀들의 뜻과 눈물을 보고 대군은 노여움이 풀어져 다른 궁녀들은 돌려보내고, 운영은 따로 별당에 가두었으나, 운영은 그날 밤 자신의 뜻대로 비단 수건으로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운영이 자결한 후 김진사는 절에 제를 올리며 영혼을 위로해 줍니다. 그런데 또 어리석게도 특에게 부탁합니다. 특은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진사는 오늘 빨리 죽고 운영은 내일 다시 살아 특의 짝이 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사악한 소원을 빕니다. 후에 김진사가 이 사실을 알고 부처님께 빌고 빕니다. 운영이 다시 살아나 자신과 짝을 짓도록 빌고, 특은 지옥에 가두어 달라고 빕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특은 이미 우물에 빠져 죽어 있었습니다.

그 후 김진사는 더 이상 세상에 뜻이 없어 조용히 누워 식음을 끊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유영, 슬픈 사랑의 책을 품고 속세를 버리다

여기까지 김진사와 운영은 말과 쓰기를 마치고, 다시 유영에게 이 글을 거두어 세상에 전해 주시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김진사는 술에 취하여 전쟁(임진왜란) 후 수성궁이 퇴락한 것을 슬퍼하며 시를 읊고, 이를 듣던 유영도 깜박 잠이 들었다 산새 소리에 깨어나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김진사가 기록한 책만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유영은 쓸쓸한 마음으로 책을 거두어 돌아와 때때로 꺼내 보다가 집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그 자취를 알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비극

<운영전>은 여러 가지로 <춘향전>과 비교됩니다. <춘향전>이나 <운영전>이나 신분의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더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춘향과 운영은 중세적인 질서와 윤리 규범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설은 조선의 이념과 질서에 강한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 춘향전과 달리 김진사와 운영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요? 함께 도망가기를 포기한 운영의 소극적인 성격, 운영의 도주계획을 말리는 동료 자란, 하인 특의 간계, 김진사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서양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릅니다. <춘향전>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운영전과 유사합니다. 두 가문의 갈등이 기본적인 비극의 전제이지만, 로미오의 충동적인 살인, 줄리엣이 신부가 준 약을 먹고 죽는 선택,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는 로미오의 성급한 행동이 오버랩됩니다. 결국 비극이란 인간이 불완전한 데서 오는 결함 때문은 아닐까요?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과는 달리 운영전은 17세기 초에 어느 사대부 문인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래도 한시로 가득한 한문소설이니 서민 독자들이 읽기는 힘들었겠죠? 그래서 춘향전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터이고요.

또한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야기는 현실의 주인공 유영이 운영과 김진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사실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랑이야기가 흥미로운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