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1960~1989)
인천 옹진 출생. 유고시선집 외 다수
인천시에 기형도 문학관이 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엄마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던 아름다운 유년의 시대가 있다. 그때를 한 번쯤 회상해 보자. 어떤 때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가?
혹 엄마의 젖을 빨며 오른손으로 엄마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던 행복한 때를 생각해 보지만 그런 때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 많은 유년의 시절 속에서 독특하게 기억하고 그 생각을 시로 썼으니 그것이 ‘엄마걱정’ 이라는 시다.
기형도 시인이 태어난 옹진 연평리 섬집에서 열무 삼십 단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렸던 어릴 때를 회상하면서 이 시를 썼다. 가난을 순수한 마음으로 살던 유년시절을 좀 자라서 청년이 되어 바라보노라니 당시는 군사독재와 산업화의 시대로 안개 속이었다.
그는 <중앙일보>의 문화부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당시의 사회상을 비유해 <안개>라는 시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시켜 문단에 나왔다. 이를 계기로 문제를 제기하는 글과 시를 쓰기 시작했고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바람의 집’ ‘겨울판화’ ‘입 속에 검은 잎’ 등을 써서 안개 속 세상 속에 화두를 던졌다.
시를 썼으나 시집이 없는 그는 그동안에 쓴 시를 모아 첫 시집을 만들고 있던 1989년 3월 서울 종로에 있는 파고다 극장 안에서 뇌경색으로 작고했다. 그 때가 향년 29세.
어찌 짐작은 했을까? 유고시집에 넣을 ‘빈집’이라는 시를 써놓고 갔다. 그 시 속에 나오는 ‘짧았던 밤’ ‘겨울안개’ ‘촛불’ ‘흰종이’ ‘눈물’ ‘열망’ 등 시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말을 남겼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아 //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모르던 흰 종이들아 //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 눈을 잡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