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에 시한줄(92) 엄마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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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속에 시한줄(92) 엄마 걱정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3.07.05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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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에 시한줄(92)영원한 청년시인의 노래
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1960~1989)

인천 옹진 출생. 유고시선집 외 다수

인천시에 기형도 문학관이 있다.

 

'산촌귀가'(주 독일한인회관 소장). 1990년에 독일한인회에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청전 이상범 선생님의 화풍으로 그린 그림.

 

우리에게는 누구나 엄마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던 아름다운 유년의 시대가 있다. 그때를 한 번쯤 회상해 보자. 어떤 때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가?

혹 엄마의 젖을 빨며 오른손으로 엄마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던 행복한 때를 생각해 보지만 그런 때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 많은 유년의 시절 속에서 독특하게 기억하고 그 생각을 시로 썼으니 그것이 엄마걱정이라는 시다.

기형도 시인이 태어난 옹진 연평리 섬집에서 열무 삼십 단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렸던 어릴 때를 회상하면서 이 시를 썼다. 가난을 순수한 마음으로 살던 유년시절을 좀 자라서 청년이 되어 바라보노라니 당시는 군사독재와 산업화의 시대로 안개 속이었다.

그는 <중앙일보>의 문화부와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당시의 사회상을 비유해 <안개>라는 시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시켜 문단에 나왔다. 이를 계기로 문제를 제기하는 글과 시를 쓰기 시작했고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바람의 집’ ‘겨울판화’ ‘입 속에 검은 잎등을 써서 안개 속 세상 속에 화두를 던졌다.

시를 썼으나 시집이 없는 그는 그동안에 쓴 시를 모아 첫 시집을 만들고 있던 19893월 서울 종로에 있는 파고다 극장 안에서 뇌경색으로 작고했다. 그 때가 향년 29.

어찌 짐작은 했을까? 유고시집에 넣을 빈집이라는 시를 써놓고 갔다. 그 시 속에 나오는 짧았던 밤’ ‘겨울안개’ ‘촛불’ ‘흰종이’ ‘눈물’ ‘열망등 시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말을 남겼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아 //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모르던 흰 종이들아 //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 눈을 잡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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