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에시한줄(96)고향을 찾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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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에시한줄(96)고향을 찾는 마음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3.12.26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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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천만갈래 상념이 이는 섣달 그믐밤(際夕·제석)

경허선사(禪師鏡虛)

 

천서암회하이언(千緖暗懷何以言)

산심설냉일서헌(山深雪冷一書軒)

 

거세청명강계읍(去歲淸明江界邑)

금년제석갑산촌(今年除夕甲山村)

 

아홀향관선입몽(俄忽鄕關先入夢)

불기여객잠망흔(不期旅客暫忘痕)

 

창등경경훤화절(窓燈耿耿喧譁絶)

저청인계기의문(佇聽隣鷄幾倚門)

 

천 갈래, 만 갈래 이는 생각 어찌 말로 다 하랴

산 깊고 눈 차가운 글방의 외로운 존재여

지난해 청명절에는 강계읍에 있었고

올해 섣달그믐에는 갑산촌이라

홀연 꿈에 들면 먼저 고향으로 달려가

기약 없는 나그네 설움 잠시 잊어보나니

창가의 호롱불 가물거리고

시끄러운 소리 끊기니

옆집 닭 우는 소리에 몇 번이나 문에 기댔나!

 

우리시의 근본은 절()이었습니다. 시라는 단어를 보면 말씀언() 곁에 절 사()를 썼으니 곧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시라는 것입니다. 이 시를 쓰신 분 역시 산사에서 불심을 닦으시며 사셨던 선사이신데 어느 해인가 섣달그믐밤 홀로 초롱불 앞에 앉아 이일 저일 세상 일들을 생각하노라니 만감이 교차하는데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 탄하셨습니다.

어쩌면 속세에서는 출가를 해 그를 잊은 지 오래이고 이름마저도 버리고 법명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으니 살아있다는 것은 새벽에 두들기는 목탁 소리고 깨어나라 치는 범종 소리뿐이니 속세에 시달리며 사는 우리가 어찌 그 심사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청명절에는 강계에 있었고, 올해 섣달그믐에는 갑산촌이라, 홀연 꿈에 들면 먼저 고향으로 달려가 기약 없는 나그네 설음 잠시 잊어 보나니어쩌면 엄중하게 사는 선승 세계 속에서는 기행을 엿볼 수 있지만 꿈속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 세속인의 마음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언제나 일년에 한번 오는 섣달그금, 해외여행이다, 해맞이다, 들뜨지 말고 선사처럼 조용히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어떨까 합니다.

 

경허선사(禪師鏡虛, 1849~1912)

전북 전주 출신으로 본관은 여산이고 이름은 송두옥이다. 태어난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9세 때 청계사로 출가하여 만화(萬華) 스님에게서 경론을 배웠고 그 후 용암 혜언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하면서 천장앞에서 만공, 혜월, 수월 3대 제자를 지도하였다.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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