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풍요를 즐겼을 가로수가 바람에 떨고 있다. 커피집 이 층에 앉아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 마른 가지가 창 아래 보인다. 나무는 푸름만 풍요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푸름만을 기다리는 것은 내 마음 헐벗음 때문이다. 내 지난 한 해는 어떤 빛이었을까. 꿈도 기대도 크고 넓었지만, 어느 것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는 마음의 결론이 있다. 타이핑 오타조차 많아진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점점 무엇인가가 달라지고 있는 한 해를 보냈다.
만년필을 씻는다. 투명한 물이 비치도록 세척해야 하는 이유는 모세관(毛細管)의 윤활(潤滑) 때문만은 아니다. ‘보내주신 엽서가 배달 중 비에 맞아 다 지워졌습니다. 쓰신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전화를 받은 뒤였다. 새 잉크를 채운 뒤의 필촉(筆觸)은 전보다 나아졌다. 질퍽거리기 이전의 선(線) 그리기의 풍부함이 나긋해진다. 더구나 물에 번지지 않는단다. 이젠 만년필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 느낌이 곧 풍요(豐饒)다.
잡기장 한 권 필기가 때맞추어 끝났다. 새 잡기장 첫 장에 쓴 ‘기·갑진 정월 (起 甲辰 正月)’. 이 공책에 무엇이 채워질까. 근래에 시 한 편 옮겨 적지 않았다. 세밑에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언어들이 귀도 아닌 눈을 어지럽혔다. 마음을 움직이는 심연의 파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만이지만. 내 눈이 나빠진 것도 이유가 그런 언어 때문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핑계지만 깊은 물속은 차라리 고요하지 않는가. 난세를 깔짝대는 언어도 내겐 공해다.
새해.
나무들 잎이 필 때가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