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쪽빛한쪽(21)수수동유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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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쪽빛한쪽(21)수수동유월2
  • 선산곡 작가
  • 승인 2023.06.2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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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의 길을 일러주는 잎사귀들, 다시 찾아온 첫여름 수수동(水隨洞) 풍경이다. 큰 창들을 가득 채운 짙푸른 엽록소(葉綠素) 빛깔들을 차분하게 바라본다. 유월이 되면 으레 찾아왔던 마음 속 진혼의 조화(弔花)가 천천히 거두어지는 모양이다.

산책길, 마을 입구에 핀 접시꽃 붉은 이파리가 곱다. 어떤 꽃이든 이파리가 다칠까 가만히 손등으로 올려보는 짓도 버릇이다. 접촉을 대신하는 손짓이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꽃이 알아줄 리 없다. 지난해 받아 놓았던 그 꽃씨는 어디에 두었는지 이른 봄에 뿌리는 것을 또 잊어버렸다.

수수동에 함께 집을 들였던 한 이웃이 이사를 했다. 단 하나 미련도 없다는 듯 인사도 나누지 않고 떠나버린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수렁에 발을 빼듯 탈탈 털 수 있었을 관계의 의미가 섭섭해진다.

어느 장인(匠人)이 공들여 쌓았던 그 집 돌담은 마을입구의 얼굴을 밝히기에 충분했었다. 흙 한줌 바르지 않고 뽐냈던 축조의 미가 언제부턴가 군데군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돌처럼 세월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속담에 시샘 많은 마누라와 배부른 담은 쓸모없다 했건만, 파충(爬蟲)이 넘나들며 숨기 바쁜 곳이라는 섬뜩함에 담 곁을 지나는 발길은 늘 조심스럽다. 돌담 위로 뻗은 넝쿨장미가지도 전정(剪定)이 필요할 만큼 조화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새 주인은 있겠지만 아직은 비어있는 집 뜰에 깔린 정적이 무심하다.

얼마 전 많이 내린 비로 개울물은 한결 맑아졌다. 1급수에만 산다는 다슬기가 점점(點點) 눈에 띈다. 한낮까지 물 위에 그늘을 주었던 산비탈나무들은 몇 년 사이 더 울창해졌다. 그 숲에 선 노각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모양이다. 노각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진다. 숲에 속절없이 떨어진 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바람에 날려 물 위로 진 꽃은 다시 생명을 지닌 존재가 된다. 그 꽃들이 물위에서 맴돌도록 정성을 들였던 돌물막이성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곧 노각 꽃이 피겠지. 그러나 물 위에 진 꽃은 다시 피는 꽃이 될 것이다.

얼마 전 두 그루 나무에서 겨우 열 댓 개의 매실을 땄다, 꽃이 필 때 비바람이 불더니 벌조차 숨었던 게 분명하다. 흉작이라는 말조차도 무색할 따름이었다. 죽은 줄 알고 베어낸 때죽나무 밑동에 새 가지가 돋은 것은 작년이었다. 어느새 커버린 벚나무 때문에 그늘에 작게 숨었으니 제대로 성장을 할지 모르겠다. 처음 다닥다닥 매달렸던 오디는 단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쩜 그렇게 싹 씻을 수 있느냐는 푸념은 웃음 대신이다.

냇가 둑에 무성히 번진 비비추는 어느 절에서 얻어온 것이었다. 처음 옥잠화(玉簪花)인줄 알았다가 비비추로 판명 난 것도 올 봄 집에 놀러 온 식물박사들 덕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커버린 목 백합은 도대체 언제 꽃을 매달지, 눈 여겨 보지만 올해도 또 그냥 지나갈 모양이다.

사람끼리의 관계는 허전해지지만 채워지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모든 것을 물처럼 따라야지(水隨動). 또 한해의 유월이 속절없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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