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쪽빛한쪽(22)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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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쪽빛한쪽(22)무제
  • 선산곡 작가
  • 승인 2023.08.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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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장마에 큰물이 졌다. 온 나라가 물난리를 겪었을 때 내 집 곁을 흐르는 개울물도 위협적으로 흘렀다. 운장산 계곡에서부터 불어난 물의 유속(流速)이 초()를 다투듯 했다. 산 옆구리 벽을 때리며 내닫는 물살에 산에서 뻗은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꺾일 듯 꺾이지 않고 버티는 너울거림은 유영(遊泳)의 극치였다. 물의 무뢰(武牢)한 힘을 연약(軟弱)함으로 맞서는 흔들림이 저항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장마가 그치자 천천히 물은 줄어들었다. 유연으로 유영을 즐긴 나뭇가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람을 타고 있었다. 개울 가장자리엔 큰물이 안고 온 제법 큰 돌자갈들이 전에 없던 삼각의 섬을 만들어 놓았다. 꿈쩍 않을 것 같았던 큰 바위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제법 밀려나 있었다. 흐르는 물은 명경(明鏡)처럼 투명했다. 얼마 전 개울을 가득 채웠던 탁류(濁流)에 부질없었던 탁심(濁心)도 흘러갔을까.

오랜만에 새가 울었다.

 

이젠 폭염이다.

폭염을 이기기 위해 이틀 동안 세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는 문장은 삼복(三伏)이면 찾아오는 기억이다. 무슨 책을 읽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30여 년 전 그 편지를 받은 시인(詩人)은 곧바로 내가 사는 옥천동(玉川洞) 누옥을 찾아왔다. 봉숭아꽃물 든 딸아이 손톱을 보고 시작 메모를 하던 그는 일찍 세상을 떴다. 그때의 시심도 묻어 함께 가지고 가 버렸는지 그의 유작에 봉숭아꽃물은 없었다. 그때 통한(痛恨)으로 여긴 결별(訣別)도 이젠 무디어졌으니 세월은 흐른 만큼 흐른 모양이다.

만국여재홍로중(萬國如在紅爐中·온 나라가 화로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에 독서가 얼마나 효과 있으랴마는 조선 시대 어느 대왕님 실록(實錄)을 읽다 말고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바람 한 점 없는 것 같다. 멀리서 매미 우는 소리, 하지만 정적은 깨지지 않는다.

선산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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