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교육(33) 눈(雪)길과 눈(目)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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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교육(33) 눈(雪)길과 눈(目)길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4.01.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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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순창여중 교장

올겨울도 동지(冬至)가 지나면서 춥고 눈이 많이 온다. 순창은 유독 눈이 많이 오는 고장이다. 쌍치와 복흥지역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가끔 전국 뉴스에서 눈()길을 끈다.

육십이 넘고, 학교의 책임자가 되니 눈 오는 날은 설렘보다 걱정과 추억의 시간이 많다.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고 열정을 다하는 학교 축제가 겨울방학 전에 학생회, 학부모회와 함께 준비하여 열린다. 강추위와 눈발이 날려도 잘 치러질지? 전주, 광주, 남원 등에서 출·퇴근하는 교직원들이 눈길과 빙판길에 아무 사고가 없을지? 학교의 난방시설, 전기시설, 상하수도는 원활하게 작동할지? 식생활관의 원활한 운영으로 학생들의 급식은 문제가 없을지? 학교에서 강추위와 눈 속에서 눈()길을 줄 곳이 많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따뜻한 눈길이 가는 곳에 사람도 세상도 평안해지고 살맛이 난다. 돌아보면 필자에게 추운 눈()길에서 따뜻한 눈()길을 보내 준 분들이 많았다. 눈에 밟히는 눈()길 중, 사는 이유와 살아가는 힘을 준 아버지와 아들의 눈()길을 기억해본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초등학교에 다녔다. 구림면과 경계 지역 산골 시골에서 팔덕초까지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푹푹 빠지는 눈길로 등하교를 하는 데 발도 시렸지만, 참기 힘든 추위는 동네 앞뜰 논 가운데로 난 오솔길을 따라 집에 올 때 부는 눈 섞인 칼바람이었다. 큰아들 문열이어서인지 초등학교 때 다른 애들보다 체격이 작았다. 늘 상 코를 흘리고 다녔고, 겁도 많아서 동네 친구들보다 더 많이 추위에 떨었다. 별명도 겁보였다. 하교 길에 귀가 얼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회문산 쪽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깨복쟁이 친구들과 월곡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어서 얼얼한 몸으로 동네가 보이는 오솔길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데 맨 앞에 가던 친구가 뒤돌아보며 순삼아~ 니네 아부지 오셨다, 추우니까 너 데리러 오셨는 갑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등에 업히라는 그윽한 눈()길을 보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눈초리였다. 아버지 등은 무척 따뜻했고 넓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동네가 보이기 시작하는 오솔길 시작 지점에 몇 번 더 와 계셨다.

어머니는 털신과 빵모자를 3~4학년 때 사 주었다. 필자는 동네 어귀에 부는 눈 섞인 칼바람을 막아 준 아버지의 따뜻하고 넓은 등 뒤에서 평안함을 넘어 자유를 맛보았다. 그리고 아들을 업고 차가운 칼바람을 막으면서 깨복쟁이 친구들 앞으로 성큼 앞장서 가는 아버지의 든든한 모습은 평생의 버팀목이었다.

2년 전 춥디추운 날이었다. 대학 친구들과 송년 모임을 하고 집 근처 소방서 앞 길거리 가게에서 붕어빵 10개를 사서 집에 갔다. 회식이나 만남 자리를 가진 후 취기가 오르면 무의식적으로 붕어빵을 사서 집에 간다. 추운 겨울밤 눈()길에서 파는 붕어빵 냄새도 좋지만, 발 동동거리며 붕어빵을 굽고 파는 분을 지나치면서 눈()을 감기는 쉽지 않다.

아들 아빠가 이 늦은 시간에 또 붕어빵을 많이도 사 오셨다. 이럴 줄 알았다.”

군대도 다녀오고, 막노동도 해보고, 외국에 나가 혼자서 1년을 살고,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아버지가 붕어빵을 사서,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갈 때 모습은 너무 천진난만하고 행복해 보였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군대 갔다 와서 친구들과 술 먹고 집 근처 골목에서 아버지가 붕어빵 봉지를 들고 가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는데, 왠지 아버지가 짠하더라구요. 붕어빵 봉지를 든 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눈()길을 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늘 크고 힘 있는 분이었는데.”

급하게 아내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면서 철든 아들에게 들켜버린 자신도 모르는 내 모습에 눈물이 고였다. 어른들이 말했다. 철이 든 자식에게 부모는 애잔하게 보인다고.

올겨울에는 눈() 밖에 있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다. 먹고 사는데 너무 힘들어 눈을 딱 감고 사는 사람이 줄어야 세상이 좋아진다. 그런데 추운 거리와 쪽방에서 힘겹게 사는 분들에게 세상인심은 갈수록 매몰차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길이 끊어진 곳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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