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교육(32)칼 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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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교육(32)칼 가는 마음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3.12.12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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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순창여중 교장

보름 전 저녁때 칼을 갈았다. 세 자루를 50분 갈았다. 김장을 앞두고 하는 연례행사다. 결혼해서 30년 넘게 일 년에 네다섯 번 칼을 간다. 삼 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도 최 서방이 칼을 갈아주면 쓰기도 편하고, 힘이 덜 든다고 칭찬하셨다. 그래서 필자가 칼을 갈아 날을 세우는 일은 의무감도 따르지만, 재미와 보람도 있다. 살림을 하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을 잘하는 게 별로 없어 더 열심히 챙긴다.

요사이 집에서 칼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편리한 시대를 비끼어 사는 우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바깥사람들이 몰라줘도 은근히 뿌듯함을 느끼고 산다. 지금 쓰고 있는 숫돌은 15년 정도 되었다. 순창 고향에서 오래전에 아버지가 농사지을 때 썼던 것으로 낫을 가는 데 쓰던 것이다. 길이와 두께가 닳고 닳아서 칼을 갈 때 거의 반절이 손안에 들어온다. 칼의 쓰임새에 따라 칼 가는 방법이 약간 차이가 있지만, 칼을 갈 때 마음은 우직(愚直)하고 한결같아야 한다.

 

칼 가는 일, 상당한 공력 필요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쪼그리고 앉아서 칼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우선 칼 가는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시작해야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집중력이 필요하다. 숫돌 위로 칼날이 오고 가던지 칼날 위로 숫돌이 오고 가던지 강약 조절과 밀착조절이 일관되고 적절해야 한다. 숫돌과 칼날의 상호작용이 일관되고 적절하게 반복될 때 칼날은 세워진다.

필자가 말하는 적절함은 칼을 자주 갈아 본 사람은 안다. 칼 가는 동안 누가 이야기를 붙어 오는 데 신경을 쓰거나 딴생각을 하면 바로 손가락을 벨 수 있다. 특히 잡()생각이 있는 상태에서 칼을 갈면 다치기도 하지만, 칼날도 서지 않는다. 30년 이상 칼을 갈면서 서너 번 손을 벤 적이 있다. 따져 보면 처음에 가졌던 칼 가는 사람의 집중력이 유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깜냥에 열심히 갈았다고 생각했는데, 칼을 들고 엄지손가락 지문으로 슬그머니 칼날을 긁어 보면 감촉이 무디다. 날이 덜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리와 손목도 아프다. 이쯤 해서 끝내고 싶다. 아내가 칼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이 없으므로 적당히 끝내고 싶은 유혹이 앞선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보다 우직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끝내기는 쉽지 않다.

 

맹지반의 겸손과 우직함

<논어>에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퇴각해야 할 때도 끝까지 우직하게 집중력을 잃지 않고 전투를 마무리하는 장수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장수 맹지반(孟之反)에 관한 이야기다. 다들 저 살기에 바쁜 퇴각 상황에서 성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에 맹지반은 성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타고 있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며 일부러 뒤에 서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놈의 말이 앞으로 달려가지 않았구려!”라며 멋쩍게 말했다.

성안으로 퇴각하지 못한 병사가 한 명도 없음을 확인한 후, 마지막에 성문으로 들어와, 별일 아닌 듯이 말이 달리지 못해서 가장 늦게 퇴각했다는 맹지반의 겸손과 우직함은 울림이 크다. 성안으로 들어서서 한 손에 칼자루를 잡고, 갑옷에 흙먼지를 툭툭 털면서 끝까지 전투를 마무리하는 맹지반을 상상하면, 참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감동(感動)을 타고 온다.

 

꾀를 부리면 날이 서지 않는다

칼을 갈 때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愚直)하고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꾀를 부리면 날이 서지 않는다. 날이 서지 않는 칼로는 살림을 꾸려가기가 어렵다.

입법권력을 새로 세우는 국회의원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다시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술수와 꾀를 동원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위정자들이 살림집이나 소상공인 가게에서 칼을 갈고 사는 사람들의 형편을 얼마나 알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민생을 말하지만, 칼을 갈아 날을 세워 식재료를 다듬어 먹고 사는 서민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쟁터에서 자기 목숨을 뒤로 하고 마지막까지 병사들을 챙기는 맹지반은 아니어도, 내년 봄에는 일관되고 우직하게 칼을 갈아 날을 세워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괜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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