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겨울 앞에서 분주한 숲속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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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겨울 앞에서 분주한 숲속 생명들
  • 조은영
  • 승인 2023.11.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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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동계 회룡)
구절초가 진한 가을향을 머금고 돌아왔습니다.

 

돌틈사이에 심어둔 구절초가 진한 가을향을 머금고 돌아왔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구철초이지만 가을을 알리고 겨울 문턱에서 꽃이 핀 채로 첫눈에 파묻히는 구철초는 아리도록 어여쁜 꽃입니다.

진한 갈색에 검정 무늬가 있는 가을나비가 구철초 주변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짙어가는 가을 구절초는 나비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긴 팔 티셔츠 몇 번 입으면 홀연히 지나가는 무심한 가을이기에 아쉬움이 더하나 봅니다.

급격히 낮아진 날씨로 벌과 나비들이 가여울 만큼 세력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겹겹이 하얀 꽃잎으로 감싸고 있는 구절초의 노오란 꽃술에 사력을 다해 모여듭니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나비는 꽃과의 춤사위를 이어갑니다. 이제 시월의 가을은 겨울 문턱입니다.

 

구절초, 쑥부쟁이, 코스모스

나비들은 꽃과의 마지막 사랑

몇 해 전 마을 이웃에서 분양받은 쑥부쟁이가 마당 구석진 틈사이에 피어 있습니다.

 

가을에 피는 꽃은 구절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 마을 이웃에서 분양받은 쑥부쟁이가 마당 구석진 틈사이에 피어 있습니다. 지상의 것이 아닌 듯 신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 꽃은 보라색과 하얀빛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언뜻 보면 국화 같으나 국화에서 볼 수 없는 느낌이 전달됩니다.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위로가 필요할 때 쑥부쟁이 꽃을 생각하면 얽혀있던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가늘고 단단한 뿌리에서 무수히 많은 잔 뿌리들이 가지를 치고, 한쪽이 잘려나가도 다시 살아나 또다시 긴 뿌리를 돌틈 사이사이에 파묻히는 쑥부쟁이는 뽑히고 밟혀도 다시 살아납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름다움을 이어가는 가을꽃 쑥부쟁이에서 새로운 봄을 봄니다.

코스모스 주변에는 흰바탕에 까만 얼룩무늬 나비가 날아듭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유독 가을나비가 파란하늘을 풀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곧 겨울이 머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코스모스도 요즘은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아마도 번식력이 좋다보니, 집 마당에 심어두기는 부담이 있나 봅니다. 나비들과 어우러진 하늘하늘 코스모스의 춤사위는 꽃 중의 일품일 것입니다. 추위가 더해지면 어딘가에서 지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운명이지만, 나비들은 꽃과의 마지막 사랑에 타들어 가는 줄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겨울은 혹독

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빨래줄에 걸어놓은 재활용 비닐봉지 깊은 속까지 무당벌레가 들어왔습니다. 미처 제집을 마련하지 못한 곤충들은 낮아진 온도에 집안 기둥 틈 사이며, 구석진 모서리, 천정의 나무 틈 사이까지 들어갑니다. 하얀눈이 내리는 긴긴 겨울을 이 녀석들과 같이 보내었던 지난 겨울을 생각하니, 올겨울에도 모른 체 공간 한켠을 내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겨울은 혹독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겨울의 시작점에서 주부인 나는 철갈이 옷장 정리를 합니다. 30대에 옷을 만드는 일을 하였지만, 남의 옷을 만들다 보니 정작 내 옷은 챙기질 못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만들 수 있었기에 사 입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여 평생 맘에 드는 옷을 옷장에 걸어둘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젊고 고운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그저 편한 옷이면 그만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섬유의 발달로 헤어져서 못 입는 옷들이 없는 현실이지만, 헌옷 보관함에는 버려진 옷들이 넘쳐납니다.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화학적 부작용과 물이 소요되는지 알고 난 후에는, 옷장 속 오래된 옷들을 정리하는 일들이 추억의 앨범처럼 정겹기까지 합니다.

장롱 깊숙이 차곡차곡 자리한 빛바랜 청바지를 재단해서 가방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청바지는 두껍고 단단해서 다양한 디자인의 멋스러운 가방이나, 새로운 스타일의 치마 등 업사이클링이 가능합니다. 유행이 지난 원피스는 기장을 짧게 하고 칼라에 변화를 주어 블라우스로 재탄생 합니다. 다시 입을 수 있는 옷과 변화를 주어야 할 옷들을 분리하여 정리하고,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낮아지는 시기라 두꺼운 옷들도 꺼내 놓으며 옷장정리를 마무리해 나가니 하루가 지나갑니다.

 

숲이 자연으로 지켜져야 사람도 건강

겨울채비 잘 하시길 바랍니다

겨울 앞에서 숲속 생명들도 분주히 움직입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떨어진 밤송이에서 알밤을 꺼내어 앞니로 단단한 겉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주변에는 진한 갈색 밤껍질이 여기저기 수북합니다. 숲이 잠들고 하얀눈이 내리는 긴긴 겨울을 이겨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다람쥐 가족들이 무사히 봄을 맞이할 것입니다. 도토리와 상수리도 이들 숲 친구들의 일용할 양식으로 생명유지에 필요합니다. 숲이 자연으로 지켜져야 사람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여름에 담근 잘 숙성된 청귤 차 한잔을 마시는데, 힘을 잃은 벌 한 마리가 날아듭니다. 종일 움직이다 비타민이 필요할 때 마시는 따뜻한 청귤 차의 진한 향을 벌이 알아본 것이지요. 조금은 시큼한 맛이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잠시 머물다 가버립니다.

강물을 비추던 햇살이 기울어가고 산골의 하루가 다해가는 해질녘에 아직도 넘어가지 못한 서산의 해가 이중삼중 치밀하게 쳐놓은 거미의 그물망을 비추고 있습니다. 거미가 먹다 버린 곤충들의 사체와 바람에 날린 나뭇잎까지 주인 없는 거미줄에 매여서, 저녘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집주인 거미는 겨울채비를 떠난 것 같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 추위와 굶주림에 살아남기 위한 야생의 생명들과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이 쉬질 않습니다. 황금 들판녘에 알알이 굵은 나락들이 베어지고, 밭두렁의 누런 호박들도 수고한 농부의 곳간에 채워졌습니다.

봄에 씨앗부터 들녘에서 먹고 자며 비바람을 맞으며 굳건하게 견뎌낸 고구마, 들깨, 참깨, 토란, , 배추 등도 부지런하고 야무진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겨우내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숲속 생명들에게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길 기도해 봅니다.

장마와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겨울 준비를 해야 하지만,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도 살아가야 하기에 따뜻한 차 한잔에 힘을 내어 봅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겨울채비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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