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사는 동네]우리 동네
상태바
[가재가 사는 동네]우리 동네
  • 신민수 시인
  • 승인 2024.02.20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민수 시인(인계 세룡)

우리 동네는 핸드폰이 안 터진다. 우리 동네는 스카이 라이프가 안 된다. 우리 동네는 소와 돼지가 없다. 그대신 우리 동네는 별이 많다. 우리 동네는 찔레꽃이 핀다. 우리 동네는 소쩍새가 밤마다 운다.

내 전화번호 말고는 하나도 외우고 있는 번호가 없다. 아내와 아이들 번호도 모른다. 어쩌다 내 번호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집전화는 없는지 오래다. 하루종일 전화 한 통 오지 않은 날이 더 많다. 전화할 일, 전화할 사람도 없다. 궁금할 일도 없으니 티브이도 안 본다.

그럼 왜 사느냐고 묻는다. 가끔씩 물어본다. 이유는 없다.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 아무런 불편이 없고 편해서 좋다고, 말이 섞이지 않으니 오해도 다툼도 없어 신간이 편해서 좋다고, 배고프면 밥 먹고, 심심하면 땀흘리며 일하고. 신록의 숲에서 발가벗고 수영하고, 산새들과 대화하고, 그리우면 글쓰고, 졸리면 별을 안고 잠든다.

단군 이래 가장 태평성대라는데 가진 자들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게으른 자들은 불평불만을 외치고, 저 잘났다고 하는 자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입에 칼을 물고 휘두르고 있다. 벌건 대낮에 거리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우리 동네는 조용하다. 첩첩산중이라서, 무지랭이 농부라서 찾은 이들이 없다.

아직 눈은 보이고, 귀는 들리고, 입은 술술 풀리나니 나가기만 하면 탈이 난다. 외출을 자제하는데도 오미크론이란 놈한테 혼났다. 싸립문을 굳게 닫아걸고 금줄을 치고 차 키는 잊어버리고 안방퉁수가 되어나 보자. 어깨가 아프지 않을 만금만 짊어지고,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자. 낮에는 산딸기 따먹고, 밤에는 소쩍새와 놀자. 행여라도 누가 찾거든 그럴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꿀물이라도 준비는 해놓자.

요즘 별로 볼만한 뉴스가 없었는데 멀리 영국에서 손흥민 선수가 프리미어 득점왕이 되었다는 단비같은 소식이다. 우리 동네, 지금 바람은 간절하게 그리고 유일한 한 가지. 소낙비라 도 한둘금 쏟아졌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