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사는 동네]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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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사는 동네]아버지
  • 신민수 시인
  • 승인 2023.12.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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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수 시인 (인계 세룡)

 

우리집 냉장고에는 우유와 아이스크림과 사과가 살고 있다. 첩첩산중 외딴집, 아침에 일어나면 요구르트, 부추, 복분자, , 오두개가 뒤엉켜 식도를 넘어 행진을 한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르겠지만 잠에서 깨어난 똥의 냄새는 고약하다. 보고싶지 않은 것이라서 변기에 물 내리고 방문 나서면 앞산에 떠오르는 봄날의 햇살은 눈부시다.

아버지 집에는 측간이 있었다. 정재도 따로 있었다. 그러나 전기는 없었다. 물동이에 맹물로 목을 적시고 새벽에 산을 오르셨던 아버지는 구석기시대를 사셨다. 아버지 집에는 어쩌다 막걸리는 쉬었다 갔지만, 밀크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다. 여름에 아이스크림 이십오리길 꼬챙이만 졸래졸래 따라오는 먼먼나라 첩첩산중.

아버지는 자식들 밥 굶기지 않는 것이 일, 나는 손주들 이쁘게 커가는 것 보는 것이 일. 똥통에 탑처럼 쌓이는 과거와 미래. 아버지 집에는 측간이 있었다.

반세기만의 변혁이다. 측간은 이사 가고 냉장고 없이는 못사는 집 구석기에 태어나서 5G시대를 살아가는 농부의 세상, 아버지는 지금도 봄이 오면 똥장군 등에 지고 장구배미 보리밭 푸른 벌판으로 걸어가고 계신다. 아버지는 오십 년 전에 주름산 기슭에 흙집을 짓고 살고 계신다.

눈뜨기 바쁘게 고사리산으로 갔다. 잔서리가 내렸다. 찬이슬에 장갑이 젖어 손이 시럽다. 한시간 반, 허리굽혀 20키로 수확, 내일 생고사리 광주공판장으로, 어제 채취한 두릅 16박스 중에서 7박스는 광주 중앙청과공판장으로, 9박스는 농협을 통해 서울가락공판장으로 보냈다. 생각보다 좋은 가격이다. 초순은 개인 판매, 곁순은 농산물도매시장으로 판매 걱정은 없다. 전국의 두릅 70%는 순창참두릅, 가격도 타지역보다 비싸게 경매된다고 한다. 광주는 마을회관 앞에다, 서울은 면농협창고에다. 요즈음 아침마다 하는 일이다. 노동의 댓가는 현금이다.

오후에는 체리수형 현장교육, 인계 용암마을 십년 전 심었다는 체리나무 주렁주렁 맺혔다. 주인장 징그럽게 많이 열기도허고 무진장허게 달고 맛있단다. 우리 지역도 체리농사 가능 확인. 작년에 백 주 심었는데 더 심어볼까?

오후 네시. 두릅수확 시작 어둑해서 산을 내려왔다. 선별작업 25박스 포장하고 나니 아홉 시. 샤워하고 밥먹고 나니 열시, 봄나물 많이 먹어서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피곤하지 않아 책상에 앉아 토닥토닥 하고 나니 자정이다.

석기시대에 아버지가 흙집 준공하셨을 때가 오십사세이셨다. 그때 당시 아버지는 수염 긴 할아버지셨다. 십이년을 덜 산 아들에게 지금 누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기분이 썩 안 좋다. 아버지 생전에 좋아하던 수박, 참외는 해년마다 심고 복숭아, 살구, 자두, 앵두, 포도, 체리, 왕대추, 포리똥, , , 딸기, 오두개, 호두, 꾸지는 열 주 이상씩 심어놨으니 철따라 맛보실 수 있게 하시라도 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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