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13) 애쓰셨어요! 선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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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13) 애쓰셨어요! 선별기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1.06.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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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토마토 수확을 끝냈다. 


추위도 가시지 않은 입춘 무렵부터 자라고, 열매 맺고 익어 수확의 기쁨을 안겨준 토마토가 고맙고, 고장 한 번 없이 돌아간 선별기도 기특하다. 나는 선별 담당이다 보니, 매일 청소하고 매만지게 되는 게 선별기다. 그래선지 이 선별기에 애썼다며 인사하고, 토닥이고 싶어진다.


귀농한 첫해를 무슨 농사를 지을까 궁리하며 보낸 우리 부부는 이듬해에 시설농사를 시작했다. 하우스를 짓고 그야말로 ‘시설’을 갖추는 일은 철물점을 가는 일이었다. 도시에서 마트나 편의점에 드나들 듯 철물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구경도 했다. 대형마트 같은 철물점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곳에 있는 가위만 하더라도 그동안 알던 주방 가위, 문방 가위의 종류를 훌쩍 뛰어 넘어 모양도 기능도 제각각인 수십 종 가위들의 세계를 보여줬다. 가위 뿐이랴, 하다못해(?) 장갑까지 어찌나 다양한지 철물점은 물건들의 신세계였다.


그곳에서 몇 천원부터 몇 십 만원까지 이런저런 농기구를 사고, 가위며 못, 장갑, 토시 테이프 같은 소소한 물품을 샀다. 우리 농장의 물건 대부분은 이 철물점에서 왔지만 작업동에는 몇몇 도시 출신이 있다. 중고 소파와 탁자, 냉장고다. 


그리고 특별한 이력의 선별기가 한 대 있다. 이 선별기는 산타가 준다는 ‘선물’처럼 뚝 떨어졌다. 토마토 시설 농사를 시작한 첫해는 별의별게 다 필요했다.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설치하느라 자르고, 조이고, 맞추는 일을 했다. 덩치도 크고 값도 제법 나가는 선별기는 수확을 위해서는 꼭 필요했지만 맨 나중에 사기로 했다. 사실 뭘 사야 좋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말짱한 선별기 한 대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실 선별기였다. 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 보기로 했다. 그 이튿날 구림의 어느 마을로 트럭을 몰았다. 원래 주인은 출타 중이었고, 주인과 우리를 다 아는 분이 빈집으로 안내했다. 선별기는 방수 천막을 입고 먼지를 잔뜩 이고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주인은 이 선별기를 사놓고 매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어 몇 년 째 이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원래 주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새것이나 다름없고, 아무 대가도 필요 없고, 그저 농사 잘 짓기만 바란다고 했다. 맘에 들면 당장이라도 가져가라고. 


천막을 벗기자 연두색 몸체에 튼튼하고 깨끗한 선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몰고 갔던 트럭에 선별기를 싣고 돌아왔다. 작업동 안에 내려놓았고, 얼마 뒤에는 매실을 선별하던 ‘드럼’이라 불리는 선별통은 수소문 끝에 기계를 생산한 공장으로 싣고 가서 바꿔왔다. 드디어 제대로 된 작업동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이 선별기가 첫해부터 토마토를 선별하기 시작해서 이제 4년째다. 연두색 긴 몸체에 파란색 선별통은 다섯이다. 1번과부터 5번과까지 크기에 따라 선별되는 것이다. 뒤로 굴러 끝까지 더 멀리 갈수록 굵고 튼실한 1번과가 된다. 초등학생이던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어 아직 자라는 중이다. 우리 부부도 50대를 지나고 있다. 1번과처럼 크고 단단하게 자라서 끝까지 굴러 선별되기를 바랄 수도 있고, 그보다 작은, 더 작은 과실이 될 수도 있다. 선별기를 돌리면 모든 통들이 굴러야 한다. 5번부터 1번까지 잘만 익는다면 자기에게 딱 어울리는 맛과 향이 있기 마련이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사람들도 큰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작은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선별기를 주신 분께는 ‘작기’마다 토마토를 보낸다. 어떤 때는 1번과, 어떤 때는 3번과다. 
애쓰셨어요! 선별기, 수확기 내내 구르느라. 이제 ‘구리스’를 몇 번 바르고, 에어컴프레셔로 이곳저곳 훅훅 날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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