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사람처럼]무늬10 돌아오지 못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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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사람처럼]무늬10 돌아오지 못한 시
  • 채광석 시인
  • 승인 2023.07.12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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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10 돌아오지 못한 시

채광석

 

내가 아는 한 동생은

스무 살부터 죽어라 시를 썼고

스물일곱 되던 해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로

봄날 화관처럼 얼굴 내밀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그 뒤로 시는 안 쓰고 돈만 빌려달랬다

무작정 일본으로 중국으로 떠돌더니

십 년 만에 독립군 잔당처럼 불쑥 나타나

돈도 안 갚고 당연조로 말했다

형님 나 배고프우 취직 좀 시켜주오.

시는 죽어도 안 쓰고

입시생들 논술 답안지 첨삭만 죽어라 하며 살더니

마흔 살 되던 해 늦가을 불쑥 사표를 내던졌다

형님 나 결혼도 하고 애도 생겼으니 이제 가우

그 사이 난 사업도 접고 병도 찾아와

동네 앞산 뒷산만을 소요했는데

봄 산행에서 만난 어느 꽃바람을 잘못 쏘였는지

번역사로 살고 있다는 그에게

문득 안부 전화를 하게 되었다

형님 나 문학병 도지면 우리 식구 다 굶어 죽으니

다신 서로 연락하지 맙시다.

한 이십여 년 시 안 쓰다가

이제 시나 쓰며 살아보자 꼬드긴

나도 참 가벼운 개새끼였다

 

채광석 시인.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2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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