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 농사일기(37)처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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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 농사일기(37)처서를 기다리며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3.08.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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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요즘 어쩌다 자욱한 안개로 하루가 시작될 때가 있다. 논 가운데 있는 농장으로 가는 길, 늘 보던 풍경이 달라진다. 오늘 만난 안개는 옅은 안개다.

이런 날은 모든 게 흐릿하다. 동네 앞 논 가운데서 아침부터 햇살에 반짝이던 하우스가 슬며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동네 외딴집도 안개에 묻히고, 전봇대도 오랜만에 몸을 숨겼다. 길은 내가 앞으로 가는 만큼만 다시 생겨났다. 그 길을 걸어서 농장에 갔다.

용내뜰 앞을 흐르는 사천의 수굿한 물줄기도 흐릿하고, 사천을 끼고 이어지는 영산강 자전거길도 멀리는 안개에 묻혀 가뭇하다. 이곳에 살며 이런 안개를 꽤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는 아니지만 안개 속에서 걷고, 걷다가 말고 여기가 어딘가 가늠하게 된다.

강아지풀은 다 커도 강아지풀

안개 속에서 강아지풀이 보였다. 흔하디흔한 강아지풀도 오늘은 우수에 잠긴 듯 보인다. 이름은 말 그대로 강아지 꼬리를 닮았다는 뜻이다. 어려서 놀 때 서로 간지럼을 태우기도 하고 콧수염을 붙이며 놀던 풀이다.

씨앗이 제법 굵어지고 있는 강아지풀은 볏과 식물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흉년이 들면 먹었다고 한다. 서속이라고도 부르는 조가 바로 강아지풀속에 속하는 곡물이라고 한다. 조는 강아지풀을 작물화한 것으로 오곡(, 보리, , , 기장) 중 하나다.

강아지풀은 다 커도 강아지풀이라 아이들과 친한 풀이다. 사소한 일로 누군가와 싸우고 나서 강이지풀로 간질이는 화해법을 시도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진을 찍느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키 큰 강아지풀과 작은 풀 사이에 거미줄이 단단히 이어져 있다.

 

칡넝쿨의 기세 당해낼 자 무엇

이 안개 속에서 가장 왕성한 것은 칡넝쿨이다. 칡넝쿨의 기세를 당해낼 자 무엇도 없으리라고. 어디든 점령해 버린다. 지금 점령지는 폐비닐 수거장이다. 울타리를 모두 덮고 나서 이제는 타고 전봇대로 진격중이다.

칡넝쿨은 햇볕을 좋아하고 엄청난 생명력으로 하루에 30cm나 자란다고 한다. 옛날에는 친근한 먹거리로 건강식으로 인식이 되었지만 요즘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10대 식물 중 하나로 어디서나 골칫거리다. 칡넝쿨은 커다란 나무를 휘감아 목을 옥죄듯 고사시키는 무서운 식물이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이마가 벗어진다

잠깐 헤매는 동안 안개가 더 옅어졌다. 요즘은 아침부터 땡볕이라 이런 안개가 오히려 반갑다. 안개가 걷히는 한 두 시간을 일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어머니가 오늘은 안개가 껴서 무지하게 덥겠구나 하신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이마가 벗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안개가 걷힌 뒤 그야말로 뙤약볕이 되기는 한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진짜 그런지도. 새벽 안개는 구름 없는 맑은 날에 생기는데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땅 주변의 공기가 위쪽 공기보다 차가워진다. 대기중의 수증기는 이슬점 온도 이하가 될 때 지상 가까이에 안개가 낀다고 항상 날씨가 맑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6월부터 7월말까지 토마토 농장은 한가하다. 봄 농사를 마무리하고 가을 농사를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토마토 나무를 뽑고, 말려서 파쇄를 하고, 밭을 갈고 가을 토마토를 심는 대신 수단그라스를 심는 한 동에 파종을 했다. 또 친환경 인증이 1년 기간이 만료되어 재인증 심사를 진행했다.

또 올해도 어김없이 엄청난 기후재난이다. 폭우가 온 나라를 뒤집어놓고 지나간 뒤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농사일은 한가했지만, 걱정은 한보따리였다. 걱정도 농사짓는 일 중 하나인가 보다. 열흘 남짓 버티다 보면 찾아 올 처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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