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 농사일기(36) 파쇄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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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 농사일기(36) 파쇄를 하며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3.07.12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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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 '글 짓는 농부'

 

지난 달 중순에 토마토 줄기를 잘랐다. 열매 몇 알 남지 않게 봄 농사가 끝난 것이다. 장마가 시작 전에 수확을 끝냈고 이제는 다음 작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수확이 끝나도 2미터 넘게 자란 토마토 줄기는 푸르고 왕성했다. 곁순에서 여전히 꽃도 피어났다. 2월에 심은 토마토는 30센티 안팎의 모종에서 이만큼 자랐다. 꽃대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익었다. 병충해도 견디며 잘 살아낸 나무지만 이제 끝이었다. 전정가위를 들고 나섰다. 밑동을 최대한 짧게 잘라내야 한다.

줄기를 자르는데 어디선지 푹푹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토마토가 소리를 낸다는데…… 그 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라던데 이상하다. 멈칫하다 다시 시작하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식물, 스트레스 받으면 고주파 소음 발생

토마토나 담배 등의 식물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주파의 소음을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연구팀이 그 소리를 녹음하고 구분하는데 성공해 그 결과를 세계적인 학술지 <>에 발표했다.

토마토는 물을 먹지 못하거나 줄기가 잘릴 때의 고통을 40~80킬로헤르츠(kHz)의 고주파를 발산했다고 한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20~20,000Hz여서 토마토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연구팀에 의하면 토마토가 내는 소리는 병뚜껑을 따는 딸깍소리나 에어캡이 터지는 뽁뽁소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줄기가 잘렸을 때 1시간에 50차례 정도 소리를 냈다니, 토마토가 비명을 지르는 셈이다.

 

파쇄 퇴비친환경 선순환 농업

모종을 심고, 꽃이 피는 걸 보고, 그 숫자를 세고, 콩알만 한 열매가 맺히는 걸 보는 일은 즐겁다. 열매가 점점 많아지고 붉어지는 걸 보는 것도 신난다. 수확하는 기쁨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줄기를 자르는 일은 기꺼운 마음만은 아니다. 그래도 파쇄를 하고 퇴비화하는 게 친환경 선순환 농업이라고 한다.

파쇄를 위해서는 잘라낸 줄기를 잘 말려야 한다. 장대비 속에서도 줄기는 갈색으로 변해갔고, 딱딱해졌다. 해가 좋은 날에는 뜨거운 하우스 안에서 바싹 말랐다. 그러는 사이 7월 중순이 되어간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 농기계임대사업소에 갔다. 예약해 두었던 잔가지 파쇄기를 빌려왔다. 파쇄기는 궤도 바퀴를 가진 힘센 기계다. 몇 년 전, 처음 파쇄작업을 할 때 본 파쇄기는 꽤나 크고 무서워 보였다. 가지를 밀어 넣는 입구도 무척 넓었고, 큰소리를 내며 잘라내는 칼날은 무서웠다. 어느 정도 분량과 속도로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우리는 서툴렀다.

파쇄를 시작하니 토마토 줄기는 엄청나게 많고, 기계 소리는 컸다. 조금만 작업을 해도 먼지는 많고, 토마토의 긴 줄기는 돌아가다 말리기 일쑤였다. 우리는 이 힘든 일을 빨리 해치우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많이 줄기를 밀어 넣었다. 기계가 멈추고, 잔해들이 파쇄기 날에 꽉 끼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끼어 있는 줄기를 가위로 자르고 칼로 자르고 다시 시동을 걸고를 반복했었다. 그 시간이 더 많이 걸렸고 힘들었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기계가 아예 고장 나기도 했다. 해마다 파쇄작업이 가장 큰일 중에 하나였다. 작년에도 작업은 수월하지 않았다.

 

천천히 하는 작업이 오히려 수월

금요일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덜 덥고 먼지도 덜하니 날씨가 도와주는 거다. 빌려온 파쇄기 시동을 걸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파쇄기가 움직였다. 투입구에 적당한 뭉치로 줄기를 밀어 넣는다. 기계를 작동하는 건 남편이 줄기를 나르는 건 내 담당이다.

툭툭, 탁탁줄기가 잘게 잘리면서 배출구 앞으로 튀어 나가며 쌓인다. 올해는 남편이나 나나 이심전심으로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로 했다. 한꺼번에 많이 빨리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파쇄기도 엄청나게 힘이 세고 빠르지 않고, 우리도 그렇다. 그리 급할 것도 없다. 천천히 하는 작업이 오히려 수월하게 진행된다. 기계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고, 나도 훨씬 느긋하고 덜 힘들다. 그래선지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크고 무겁게 보이던 파쇄기가 올해는 제법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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