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 농사일기(38)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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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 농사일기(38)소란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3.09.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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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소란했던 여름이 지나고 있다. 시끄럽던 매미소리는 잦아들고 귀뚜라미가 운다. 이 여름은 늘 그렇듯이 아니 어느 때보다 더 나라 안팎은 온갖 이슈로 시끄러웠다. 작은 시골마을도 다르지 않다. 바깥의 이 소란 속에서 마음의 평화도 흔들렸다.

 

소란=벼룩 때문에 말이 날뛰며 소동

소란한 여름을 만들던 매미소리는 수컷 매미가 뱃속의 울림통에서 공명하면서 북소리처럼 큰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소리를 내기 위해 수컷 매미는 몸속 절반을 비워두는 진화를 했다니 놀랍다. 그러니까 매미들이 일시에 울어대면 수많은 작은북이 울려대듯 온 동네가 요란할 수밖에 없다.

매미라고 하면 땅속에서 7, 밖으로 나와 7일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종류에 따라 땅속에서 유충으로 3~7년을 살고, 성충으로 1~3주를 산다고 한다. 성충으로 사는 사이에 짝을 찾고 번식을 해야 하니 그토록 처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여름의 소란하면 떠오르는 것은 매미지만 시끄럽다는 뜻의 소()자는 (말 마)자와 (벼룩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자는 벌레를 손으로 잡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벼룩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벼룩 때문에 말이 날뛰며 소동을 피운다는 뜻이 되었다고 한다.

 

텃밭, 고추는 끝물이고 배추를 심다

여름의 끝자락 뒷밭의 꽈리고추와 청양고추는 모두 따서 저장고 냉동실로 들어갔다. 여름내 먹고 남을 만큼 열매를 내주던 가지 나무도 베어냈다. 그 자리에는 배추를 심었다. 남겨둔 고추는 네다섯 번 따고나니 이제 끝물이다.

올해는 오이가 시원치 않았다. 작년에는 오이가 또하며 한 번에 열 몇 개 남짓 오이를 따냈다. 그래서 오이지를 세 번이나 담았다. 겨울에 그 오이지를 꺼내 먹으며 꽤나 즐거운 마음이었다. 한 여름 돈 만원이면 넉넉한 오이지를 담을 수 있겠지만 텃밭 농사로 얻은 것과는 달랐다.

텃밭 오이들은 제각각 늘씬하거나 통통하니 뭉툭하고 끝이 구부러져 있기도 했다. 제각각의 모양이었고 오이를 따내던 싱그러운 기억도 겨울까지 조금은 남아있었다. 올해는 오이 농사가 좀 시원치 않았다. 밭에서 막 따낸 물씬한 오이 냄새도 귀했다. 그나마 늙은 오이 몇 개를 얻을 수 있어 서운함을 달랬다.

 

늙은 오이를 끓여서 들깨탕?!

뒤늦게 얻은 늙은 오이도 마트나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노각과는 모양이며 때깔이 영 달랐다. 사는 노각은 오이가 맞나 싶게 어른 팔뚝만큼 크다. 그물 모양으로 두꺼워진 껍질도 단단하다. 텃밭에서 늙은 오이는 그렇게 자기 몸을 크게 키우지도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지 못했다. 다만 푸르던 빛깔이 누렇게 되었고 씨가 영글어 있었다.

모든 농사가 그런 것처럼 오이도 넝쿨이 튼튼하고 잎이 좋아야 한다. 올해는 넝쿨도 베베 틀어지고 잎도 시원찮았다. 끝물도 일찍 왔다. 겨우 늙은 오이 서너 개를 남겨 놓았다. 그 오이로 늙은 오이 들깨탕을 끓였다.

껍질을 까고 속을 긁어내고 크지 않게 대강 잘라서 넉넉하게 다싯물을 붓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춰 끓이는 게 다다. 적당히 끓고 나면 들깨가루를 넣기만 하면 된다. 세상 소박한 이 음식이지만 맛은 꽤 특별하다.

오이를 끓여 먹는다고?”

이 음식에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오이는 날것 그대로 먹는 대표적인 채소니까. 오이무침도 생으로 만든다. 오히려 차게 식혀 오이냉국으로 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 오이를 끓여 먹는다고 하니 퍽 낯선 일이었다. 한 가지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하는 이 고장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어쨌든 시어머니가 하던 음식을 내가 하다 보니 늙은오이 들깨탕을 자주 하게 된다.

시원찮은 농사의 늙고 못난 작은 오이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질을 한다. 손쉽게 늙은 오이탕을 끓인다. 늙은 오이의 살캉한 식감과 담백하고 순한 국물이 속을 편안하게 한다. 이런 음식들을 먹다 보면 마음이 잠잠해진다.

그러다가 또 끓어오르는 마음이 고요해지기를 여러 번. 끓다가 식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가을이 시작되도록 계속되는 이곳저곳의 소란 속에서 늙은 오이로 들깨탕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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