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 농사일기(39)움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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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 농사일기(39)움파처럼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4.01.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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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한겨울 대파가 싱그럽다.

봄이라면 모를까 겨울에 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드문 대상이다. 다용도실 화분에서 품어내는 푸르고 실한 기운이 만만치 않다. 해마다 대파는 그곳에서 싱싱하게 겨울을 보낸다.

재작년에는 대파 농사가 실했다. 김장을 하고도 밭에 남은 대파를 텃밭에서 이사시켜 커다란 양동이에 흙을 깔고 묻어두었다. 그리고 겨우내 뽑아다 먹었다.

올해는 대파 농사가 변변치 않아 김장에도 넉넉히 쓰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마트에서 한 단씩 사다가 작은 화분에 모셔두기로 했다. 밭에 남은 몇은 누렇게 떠서 겨울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선지 그 싱그러움이 더 귀하다.

 

파꽃이 필 때

 

대파를 보니 지난 늦봄 파꽃이 필 때 생각이 난다. 어느 어스름한 저녁, 오래 알고 지낸 이와 통화를 하다가 파꽃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 파꽃이 피었어요 했더니 파꽃이요? , 파꽃 좋아하는데.... 요즘에도 파꽃이 피는구나 한다. 안 본 지 몇십 년 넘은 것 같다고. 어릴 때 보고는 못 보았다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 싶어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파꽃이 흰 꽃을 터트리면, 백전노장의 늙은 배우가 쉰 목소리로 하고 웃는 것 같아요 말하며 우리도 서로 파, 파하고 웃었다.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파꽃이 피었다가 씨를 품고, 그 씨앗으로 또 대파가 되었다가 또 꽃을 피우며 수백 년 넘게 살아 왔다.

파꽃은 굵고 단단해진 길다란 꽃대 위에 탁구공만한 크기로 동그랗게 피어난다. 파꽃은 둥글게 핀 꽃송이가 한 송이가 아니다. 셀 수 없는 작은 꽃이 함께 피어난 꽃덩이(?) 꽃뭉치(?)가 우리가 보는 파꽃이다.

파꽃은 색깔이 화려하지도 않고 모양이 그리 어여쁘지도 않다. 파 자체가 워낙 강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꽃이 피워내는 향기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파꽃은 꿀벌들에게는 인기가 대단하다. 파꽃에는 거의 언제나 붕붕, 윙윙 많은 꿀벌들이 오간다.

파꽃에 벌이 왜 이렇게 많지? 이상하고 궁금하다. 장미꽃이라면 당연하다고 여겼을 텐데 고정관념 때문이다. 어느 누가 이상하게 여기거나 말거나 파꽃은 꿀단지 하나를 안고 있는 게 분명했다. 향기 또한 그윽한 게 틀림없다. 올해 늦봄 파꽃이 필 때 무심히 지나다 또 벌과 나비를 보게 될 거다.

파꽃이 질 무렵 까맣고 작은 씨들이 엄청나게 생겨난다. 파꽃은 그 작은 꽃 하나에 씨방이 3개나 있고 씨방마다 씨앗이 2개씩 들어 있다니 탁구공만 한 그보다 좀 더 큰 테니스공만 한 파꽃 한 덩이에 엄청 많은 씨앗이 들어 있고 그 씨앗을 뿌리는 거라는데. 우리는 파꽃은 구경만 하고 모종을 사다 심었다.

 

움파처럼

음식을 해보면 곱게 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는 일이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일 중 하나다. 대파를 다듬어 굵은 줄기에 여러 번 칼집을 넣고 잘게 썰어 시금치를 무치고, 냉이를 무치는 일은 별 거 아닌 듯 손이 많이 간다.

우리나라 음식에서 국을 끓이든 나물을 하든 조림을 하든 빠질 수 없는 채소니 겨우내 먹던 대파가 떨어지고 나면 텃밭의 움파가 봄 보약이라고 한다. 움파는 겨울에 베어낸 줄기에서 봄이 되면 따듯한 햇살에 고개를 내밀고 자라난 파다.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또는 베어 낸 뿌리에서 나는 싹을 가리키는 를 합쳐 부르는 이름만으로도 기운차다. 24절기 중 첫 번째로 맞이하는 입춘에 궁중에서 먹는 음식에도 움파로 햇나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텃밭 가장자리에 남은 파 몇 뿌리는 영 기운을 잃은 듯하다. 누렇게 뜬 떡잎이 영 구실을 못하게 생겼다. 그래도 땅속의 뿌리는 어떻게든 생명을 지킨다. 겨울 강추위에 끝끝내 버텨 봄을 맞이한다. 그리고 움움 자란다.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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