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유월은 바쁘다. 매일 토마토를 따야 해서 농사 달력은 ‘따는 달’이라고 이름 지었다. 토마토를 따느라 겨를이 없는 사이에 어머니가 캐고 있던 마늘을 거들어서 마저 캐고, 대를 자르고, 서른 개씩 묶어 걸어두었다. 마늘 수확을 마치자마자 비가 왔다! 아이고 잘했다며 서로 칭찬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캐놓은 양파까지 갈무리했다.

마늘과 양파가 겨우내 땅속에 있다가 봄부터 자라나며 얼마나 굵은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캐놓고 보니 실하고 굵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는데도 무척 뿌듯했다.

 

색깔 농사(?)를 짓다

토마토를 따며 날마다 익어가는 것들을 바라본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토마토 색은 초록과 빨강으로 알았다. 어쩌면 사서 먹는 빨간색만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초록, 아니 초록이 되기 전은 연두였으니 거기서 빨강이 되는 거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색이 있는지 색깔 농사(?)를 짓는 것 같기도 하다.

익어가는 중인 토마토는 빨간색이 되고 싶은 모든 색이 다 들어있는 것 같다. 많고 많은 빨강을 어떻게 부르나 우리말 계통색 이름을 찾아보니 선명한, 밝은, 진한, 흐린, 탁한, 어두운, 회적색, 어두운 회적색, 검은 빨강이 있다.

진한 빨강색은 자두, 사과, 석류가 있고 또 장미와 루비색도 진한 빨강이다. 밝은 빨강을 표현하는 선홍, 다홍, 연지색이 있다. 빨간 갈색 대추색, 노란 주황 늙은 호박, 그런 온갖 계통의 붉은 것들을 거쳐 그냥 빨강 토마토가 된다.

 

눈에 잘 띄는 빨간색

연두부터 시작하니, 연두는 또 얼마나 많은지. 연두도 선명한부터 밝고 진하고 연하고 흐리며 탁한 것을 다 갖고 있고 거기다 그냥 연두, 노란 연두, 녹연두, 회연두도 있다. 연두에서 빨강으로 익어가는 중에 색깔은 그야말로 가지각색!

열매들이 빨강으로 익어가는 것은 눈에 잘 띄는 색이고, 맛있게 보이기 때문이란다. 새나 동물의 눈에 잘 보이고, 먹음직하게 비치기에 동물들이 열매를 즐겨 먹게 되고, 배설하면 대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시작과는 다른 모습… ‘익다’

익다라는 한자는 熟(익을 숙)인데 ‘익다’뿐 아니라 여물다, 숙련하다, 정통하다, 면밀하게 하다, 정련하다의 뜻이 들어있다. 익는다는 것은 다 자라서 여물다, 뜨거운 열을 받아 그 성질과 맛이 달라지다, 빚거나 담근 음식이 맛이 들다의 뜻이 있다.

익다라는 동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 시작과는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익다는 익어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어떻게 익어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오래도록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 한다.

지금 당장은 토마토 익어가는 것만 쳐다보느라 나의 ‘익다’와 동의어인 ‘읽다’에 게을렀다. 또 밤에 하던 동네 한 바퀴 산책도 못했다. 먼 곳은 아니더라도 산도 보고 물도 보겠다며 잠시 다녀오는 소풍도 걸렀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도 못했고, 몇몇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따는 달’에서 ‘마무리 달’로

그러는 사이 장미가 피었다가 지고 있고 어느새 수국이 한창이다. 석류꽃도 피려 하고, 산에 있는 보리수도 익었을 것 같다.

이제 이달 말쯤에는 ‘따는 달’에서 ‘마무리 달’로 넘어간다. 따는 달을 보내느라 미뤄두었던 것들을 할 수 있으려나? 잘 익어가려면 햇볕, 비바람, 안개, 구름, 땀, 한숨, 노래, 희망, 짜증 또, 또 많은 게 필요할 테고 나도 그럴 것이다.

잘 익고 싶은데, 햇볕 좋은 날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마무리했다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잘 익은 보리수나 따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