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문섭-인연의끈 제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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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정문섭-인연의끈 제15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1.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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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16세손에 연이어 항렬대로 이름들이 나오고 24세손에 도열(道烈)이 나왔다. 그 아래 경석(景錫), 상진(相振), 인득(寅得인근(寅根, 27세손)이 죽 연결되어 있었다. 부현(28세손), 치준·치승(29세손), 호연·성연(30세손)으로 이어진 부분은 국한문 혼용으로 글씨체가 이전 것과 좀 달라 보였다.

이 족보는 말이여, 여기 인득 할아버지 때에 만들어진 것이여. 뒷부분은 내가 낭중에 덧붙여 쓴 거라네. 내 손자 부분 여그는 안직 족보에 넣지 않았어.”

그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

맞네. 기준이 자네가 알아 본대로 그 방씨는 우리 집 집사인 게 맞아. ‘그분은 내가 아니고 여기 인득 할아버지시라네. 그 양반 생전에 장연이를 돌봐 주기 시작혔제. 글고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자네들 두 형제를 잘 챙겨주라는 당부를 허신 거고, 내가 바통을 받아 방씨를 통해 마무리 지은 것이제.

장연이 이런 모든 것을 알 리가 없었는디 더욱이 어린 길연이가 무엇을 더 알았것는가? 여하간 자네들이 나에 대해 궁금해 허고 오해를 가졌을 것이네만, 지금부터 내 하는 얘기를 들어보믄, 치용 그분이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나 장연이가 방씨와 나를 알지 못하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란 말이여.“

길연이 갈급하여 물었다.

그게 저희들이 제일 궁금했당게요. 인자 시원히 말씸혀 보쇼이.”

그러세. ! 인득 그 양반에 대해 말헐라고 봉게, 우리 두 집안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얘기해야 허는디, 막상 그것을 말하려니, 무덤까지 비밀로 하려 했는디, 결국 자네들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랄까, 어쩔 도리가 없게 되어부렀구만. 허나 다짐해 둘게 있어. 지금까지 나가 주저하고 망설여 온 가장 큰 이유는 특히 우리 자손들 누구도 이 비밀을 알면 안 된다 이리 생각했기 때문이제. 오늘 들은 얘기는 자네 둘만 아는 비밀로 혀주게.“

오래 전부터 어르신 외손자와 만나 왔지만, 뭐 집안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으니 마음 푹 놓으세요.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어르신 말씀을 따라 아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요. 걱정 마셔요.“

! 오늘 결국 털어 놓게 되었구나. ! 저 시상에 가면 인득 할아버지께서 잘했다고 하실능가? 놀래지덜 말고 들어보게. 우선, 이 윗대 증조할아버지 26세손 상진 이 분이, 원래 자네 집안의 노비 즉, 종이었다네.”

예에? 어찌 그런 일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아마도, 자네 집안 18세손 경혜 할아버지 때 이후에 노비로 들어왔을 것이여. 어떤 경로로 그리 되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네. 조상님들의 이름은 족보를 맹글 때 항렬에 맞춰 이름을 끼워 넣은 거라고 봐야 헐 거시네. 이러한 주종관계는 기준 자네의 5대조 명진 할아버지 때까지 대대로 이어졌다고 봐야것제. 물론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안혀. 허지만 사실인 건 맞아. 인득 할아버지가 관리(官吏)를 한 나에게만 알려 주셨제. 자네들도 생각해보게. 다른 자손들이 알면 어찌 되것능가? 감당하지 못혀 창피해 허고 낙담헐 것 아닌가? 그걸 걱정하신 게지. 나도 그렇고.”

어르신, 우리가 머 좋은 일이라고 다른 사람헌티 나불거리고 다니겠습니까요.”

내가, 오늘 결국 이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은, 그분이 나중에 양반과 상놈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 아니 역전이 되는 그런 시상으로 변해진다면, 이런 얘기는 옛 조상들의 아름다운 미담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알아도 무방할 거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네. 나도 그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무조건 덮고 가기에는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시상에는 영원한 비밀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히서 이제 털어 놓는 거라네. 그려도 난 이것을 우리 자손들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아.

, 이만 일어나세. 기준이 자네 차로 먼저 순창 자네 선영(先塋)부터 가세. 남원 사랭이도 가세. 가명서 내 얘길 듣게. 내가 앞에 앉을 테니 자네는 뒤에 앉게.“

기준이 가방 속에 넣어둔 소형 녹음기를 꺼내어 틀어 놓았다. 그의 이야기가 조선시대 중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차분해지며 잔잔해지고 있었다.

 

 

길고 긴 인연

조선 중·후기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이 휩쓸어 지나가면서 온 나라 땅이 황폐화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 가난해진 조정(朝廷)이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공명첩(空名帖)을 남발하는 바람에 양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또 땅이 많은 향촌지주와 일부 토호세력들이 그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양반으로 편입되는 일이 생겨나면서 조선시대 유교전통과 신분질서가 점차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공물을 쌀로 내는 제도는 선조 때 율곡 이이(李珥), 유성룡(柳成龍) 등이 의견을 냈으나 흐지부지되었다가, 17세기 초 광해군 즉위 때 방납(防納)의 폐해를 시정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조정이 공물을 각종 현물대신 미곡이나 전포로 바꾸어 납세하도록 하고, 과세기준을 종전의 가호(家戶)에서 토지의 결수(結數. 1: 3천 평)로 바꾼 것이었다. 이 대동법(大同法)이 지방지주와 방납인들이 끈질기게 반대하는 가운데에서도 김육(金堉) 등 역대 여러 대신들이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하여, 마침내 백여 년이 지난 18세기 초(1708) 숙종 말기에 황해도까지 확대되어 전국에 걸쳐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조세제도가 물품화폐인 미곡과 전포로 징수되는 금납화로 바뀌면서 상품·화폐경제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광해군 초기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李晬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峯類說)>과 유형원(柳馨遠)이 쓴 <반계수록(磻溪隧錄)>에 이어 이익(李瀷유수원(柳壽垣) 등으로 이어지고, 조선 후기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영조·정조시대(1724-1800)에 이르러 박지원(朴趾源정약용(丁若鏞김정희(金正喜) 등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실용적 학문 즉 실사구시(實事求是) 실학이 일어나 농업과 더불어 수공업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정조 시대 채제공(蔡濟恭)의 건의로 금난전권(禁亂廛權, 조선 후기 난전을 규제할 수 있도록 나라로부터 부여받은 시전의 특권)이 폐지되어 상인들이 자유로이 활동하게 되니 전국적인 시장권이 형성되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공인(工人)들이 주도하여 이를 사고파는 상업이 발전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유통경제가 활발해지고 상업자본이 발달하면서 한양과 개성을 중심으로 부산과 인천, 원산, 목포 등 큰 항구와 작은 포구에 물상객주(物商客主)-장사치를 집에 머물러 묵게 하거나 그들의 물품을 소개하는 일 또는 흥정을 붙이는 주로 하는 영업. 또는 그런 사람-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큰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거나 객줏집에 소속되어 물건을 지어 옮겨가며 사고파는 보부상(褓負商)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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