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1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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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11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1.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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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끈 11

 

기준은 지난 3월 이후 전통식품개발사업을 신규 사업으로 넣기 위해 동분서주하여 마침내 경제기획원 예산실 문턱을 넘기고 후속조치를 하느라 바빴다. 8월 중순에야 겨우 여름휴가, 그것도 주말을 낀 23일의 짧은 휴가를 받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동해안이라도 갔으면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전주에만 꽂혀 있었다.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린 기준이 다시 그 대문 앞에 섰다. 종을 흔들자 60대 초반의 한 부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대문 안으로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을 거쳐 앞뒤로 간격이 좀 떨어진 기와집 두 채가 보였다. 앞집 현관문이 열리고 안에서 역정을 내는 듯 노인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야야! 니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나헌티 물어보지도 않고 문안으로 들이고 그려?”

현관문이 열리고 금테안경을 한 긴 수염의 백발노인이 마당 한 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는 기준을 힐끗 쳐다보았다. 기준이 공손히 명함을 드리자 탐탁스럽지 않은 듯 뜨악한 얼굴로 기준을 쳐다보더니 대문 쪽으로 나가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경로당 앞에서 김 총무가 반겨하며 그들을 별실인 사무실로 안내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기준이 공손히 무릎을 꿇어 큰 절을 올린 후 사량마을에 다녀 온 자초지종을 다 말하였다.

다시 결론지어 말씀드리자면,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어르신이 바로 제 큰 아버지와 아버지의 은인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어르신이 왜 방씨를 통해 고아인 장연을 그리 챙겨주셨고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는지? 또 어찌하여 연락처조차 알 수 없게 되었는지? 그게 제 의문들입니다. 그리고 그분 즉, 어르신이 왜 저를 안 만나려 하시는지? 하여튼 제가 궁금한 게 많습니다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기준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누구도 알지 못할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숙이다가 들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참이나 묵묵부답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겄네이. 자네가 찾는 그 정치승, 내가 맞긴 맞아. 하여튼 자네가 그간 많은 것을 알아내느라 고생이 많았구먼. 허지만 지금 내가 더 이상 뭐라 말해줄 수가 업씅게 그리 알소이. 내 윗대 할아버지가 허신 말씀도 있고이 내 생각도 그렇단 말이네. 물론 세상이 변허기는 혔지만. 하여튼 간에 더 이상 묻지 말고 그냥 가줬으면 좋겠구마이. 그리고한 가지 물어봄세. 젊은이가 다닌다는 과천 거그 말이여. 전북 사람으로 어떤 사람덜이 있는겨?”

? 정읍 사람으로 선달진 국장이 계시죠. 또 임실 사람으로 차수열 과장, 무주에 허일중 과장, 제일 높은 사람으로는 진안사람으로 이구창이란 분이 계십니다. 차관보로 높아요. 업무 땜에 뵙긴 합니다만. 그런데그건 왜 물으시죠?“

! 아닐세. 기냥, 물어 본 거여.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말하기 곤란헝게 그만 돌아가시게. 부탁이여.”

? 어르신,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제 아버님의 소원입니다. 어르신 연세도 있으시고, 좀 만나 주세요. ?”

잠시 안타깝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치승, 그러나 여전히 입을 다물며 요지부동한 모습을 보였다. 이튿날 아침에도 기준이 다시 그 집을 찾았으나 문은 더 굳게 닫혀 있었다. 그 후 추석 연휴에도 기준이 기대를 갖고 한 번 더 찾아갔지만, 그 소슬 대문은 더 열리지 않았다.

업무로 또 사적인 일로 다사다난했던 그 89년은 이렇게 무심히 흘러갔다. 기준이 아버지와 전화를 할 때면 치승 그분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고, 그의 머리와 가슴 한 쪽 구석에는 늘 그분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았다.

 

1989년 연말 마침내 국회에서 신년도 예산()이 통과되었다.

돌이켜 보면, <향토전통식품개발사업>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제고하여 농가의 소득을 올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신규 사업으로 예산을 따기까지 지난 2년여 동안 정말 우여곡절과 여럿의 수고가 많았다. ()에서 식품산업을 개발하려 할 때에 타 부처의 반대와 견제가 심했으나, 김 과장의 지혜와 아이디어, 그리고 그의 끈질긴 설득과 집념으로 농촌에서 농민이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도 농산물을 가공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이 일이었다.

김 과장은 장관이 주관하는 <신규사업선정평가회의>에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서 보고할 때에 기준에게 우선 향토와 전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식품이 되도록, 예를 들면 순창고추장의 경우 권위가 있는 식품연구가 ㅇㅇㅇ 박사 등에게 그들이 연구한 사료와 자료를 발표하게 하고 또 인용하도록 지시하였다.

-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성계와 같이 순창 회문산 만일사에서 기도를 올릴 때 이성계가 어느 농가에서 먹었던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하여 후에 왕이 되어 진상케 하였다는 설화, 이성계가 왜구토벌을 위해 순창을 지나가다 어느 농가에서 보리밥에 고추장을 비벼서 곁들인 점심을 얻어먹게 되었고 훗날 왕이 되어 콕 찍어 진상품으로 올리게 명하였다는 이야기, 영조대왕이 여든 한 살까지 장수(長壽)하게 된 것은 거친 음식과 타락 죽, 특히 순창이 본관인 사헌부 지평 조종부(趙宗溥) 집의 고추장을 상식(常食)하였기 때문이라는 것, 조선 후기 내의원 이시필(李時弼)이 쓴 소문사설에 나오는 순창고초장조법(淳昌苦草醬造法)과 의관이며 농학자인 유중림(柳重臨)이 쓴 증보산림경제(1766)에 나오는 조만초장법(造蠻椒醬法)이 전래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고, 옛 부터 물이 좋아 옥천(玉川)이라 불려온 고장 순창이 고추장 된장 등 발효식품을 잘 만들고 상식하여 장수촌(長壽村)이 되었다는 것 등등 -

이런 발표를 들은 장관이 순창전통고추장을 이 사업의 전면에 내세워 예산실을 설득해 나가라고 지시하며, 다른 지역도 이처럼 연구 사례와 또 건강에 좋다는 점을 동의보감등 옛 문헌을 조사하여 발굴하고 이를 부각시키라고 당부하였다.

*1751년 음 윤 518, 궁중약방의 도제조 김약로(金若魯)가 영조에게 아뢰었다. “요즈음도 고추장을 계속 드시옵니까?” 그러자 영조가 그렇다고 하면서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이 맛이 대단히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약로는 그것은 조종부 집의 것입니다. 다시 올리라고 할까요?” 라고 말했다.

*조만초장법(造蠻椒醬法),순창고초장조법(淳昌苦草醬造法)내용 : 중략

1752년 음 411<승정원일기> : 이 날도 김약로가 조종부의 장()은 과연 잘 잠갔다고들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영조는 고추장은 근래 들어 담근 것이지, 만약 옛날에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부승지 김선행(金善行)지방의 여염집에서는 성행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영조 때 들어서야 수라에 고추장을 올렸던 듯하다. 그러나 서울이나 지방의 여염집에서도 이미 고추장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 자료 출처 : 블로그 조병교 시인-<영조와 지평 조종부 집의 고추장>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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