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4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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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14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1.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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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장관의 입원이 장기화 될 것을 예상한 청와대가 이 차관을 장관대행으로 임명하였다. 차관 재직관록이 제법 긴데다 장관 부재중에도 어려운 국정감사를 잘 치러냈다는 공로가 인정된 것이었다. 게다가 대통령선거가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서너 달 임기도 못 채울 장관 자리를 탐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장관이 되고, 하여튼 팔자 좋은 놈은 아무도 못 따라 잡아,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더니.’

 

그 다음 주 토요일 오후, 기준이 권남중과 정부과천청사 테니스장에서 운동을 한 후 단둘이 주변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게 말이네. 차관님의 얘기에 따르면, 지난여름 그 ㅇㅇ회 회장 선거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그 이 회장이 김 의원에게 청탁을 하고, 그게 모자랐던지 이 차관까지 끌어대 뇌물을 바친 것 같아. 당시 이 회장의 오른팔이라는 상무 그 자가 차관에게 회장과 같이 부킹을 해 놨다 해서 영문도 모른 채 갔다더군. 물론 거기에 간 것 자체가 잘못된 거지만. 그 상무가 골프백도 다 내리고 올리고, 하여튼 그날 집에 돌아온 후, 차 트렁크에서 백을 꺼내려는데 글쎄 갈색골프백이 하나 더 있더라는 거야. 팔자에 없는 골프채가 한 벌 더 생긴 거야. 흐흐.”

그러니까 뇌물을 받은 거네. 평소에도 뭐 잘 받은 거 아니요?”

글쎄 말이야. 평소 술을 잘 얻어 마시니 그건. 그런데 그날 밤 늦게 부친이 위독하시다는 급한 전화를 받고. 온 가족이 부랴부랴 전주에 내려갔다가, 그 이튿날 저녁에 이 회장 구속 뉴스를 보게 된 거지. 그때 퍼뜩 그 이 회장이 은근히 나 좀 도와주세요.’라 말하며 씩 웃던 모습과 골프백이 같이 연상되더래. 소름이 쫘악 돋더라는 거야. 본인도 가족도 모두 전주에 있으니 물리적으로 올라올 수도 없게 되고, 어떻게 되겠어? 난감해진 거지. 그 양반이 안절부절못하다가 궁리 끝에 나를 찾은 거야. 마침 내가 전주에서 감사출장 중이라서 한달음에 그 병원으로 달려갈 수가 있었지. ‘어찌하면 좋겠나?’라고 다급하게 물으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바로 정 계장을 떠 올렸지. 약간 망설이더군. 내가 강하게 믿으세요.’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입맛을 다시며 아파트 동 호수와 열쇠위치를 말씀하신 거야.”

햐아! 그거 하마터면 덤터기 크게 쓸 뻔 했네요. 무슨 수사 드라마도 아니고 휴! 어쨌든 그 양반이 어찌 나를 믿고 그런 일을 맡기시나 했더니. 권 선배가 그리 말하셨군요. 내가 자기를 미워하는지는 알았던가 보네. 허 참. 어쨌든 나 감동 먹네. 믿어지지가 않네요.”

허허. 그 양반이 밖으로는 차갑게 굴어도, 뭔지 모르지만 당신을 믿는 뭐가 있었나 보지 뭐. 흐흐. 근데, 그거, 얼마나 들어 있습디까?”

뭐가요? 그게·설마, 골프채가 뇌물이 아니고? 나 그거 안 열어 봤는데, 야아! 나도 궁금하네. 권 선배, 그거, 같이 가 봅시다. 허 참!”

야아! 당신도 참 어지간 하구만 어지간해! 그 회장이 그래, 골프채 하나만 달랑 보냈겠어? 그 속에 든 것은 틀림없이 배춧잎인 거야. 이 이런 숙맥이 어디 있나?”

둘은 바로 기준의 아파트에 들어가 그 골프백을 열었다. 골프채는 퍼터 하나만 달랑 들어 있고, 정말 배춧잎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권남중이 거 봐라.’는 표정을 지었다.

! 이거 어떡해? 여기 그대로 놔둬? 도둑 들까 더 걱정이네 허. 이번 대통령 선거 끝나고 조용해지면, 처리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장관 그 양반도 궁금해 하셨을 건데.”

둘은 골프백을 서재 안 은밀한 곳으로 옮겨 더 깊숙이 넣어 두었다.

 

치승 할아버지의 고백

10월 중순 국정감사가 끝나고 좀 한가해진 기준이 일요일이 낀 23일의 휴가를 내어 고향에 가 길연에게 치승 할아버지의 외손자가 이구창 장관대행이라는 사실을 다 말씀드렸다. 길연은 아들 기준이 많은 노력을 들여 마침내 은혜를 주신 그분을 만나게 된다는 기쁜 소식에 들떠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기준이 아버지와 함께 전주 남고산 자락으로 향했다. 치승이 길연의 손을 맞잡고 감격한 듯 망연히 바라보셨다. 길연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르신, 혹시 옛적 겨울 한밤중에 우리 집에 오신 분 아니신기라우? 낯이 좀 익네요. 마포 집문서도 주시고 가신 그분, 맞지라우?”

! 맞네. 자네 기억력도 좋아, 허허. 그러고 봉게 우린 구면이 된 셈이구마이. 그때가 언제였든가? 자유당 말기 개띠(1958) 섣달, 설 며칠 전이었제 아마. 우리 그때는 다 젊었었는디 말이여. 내 나이 이미 여든이 넘어씅게, 자네도 이젠 좀 늙었구마이. 안 사람은몇 년 전에 가 불고, 딸네미는 오늘 아침 서울 아들네 집 보냈네. 차 대접도 못허고이, 미안혀.”

괜찮습니다요. 인자 봉게 몇 십 년이 지나 부렀네요. 어르신이 그때 종적도 없이 사라져 부러서 지가 얼마나 애가 탔는디요. 마포 집 재산세 고지서가 나오고 지 통장에 월세가 쌓일 때마당 그 은혜를 잊을 수 업서씨요. 늘 어떤 분인가 허고 궁금했었지라우. 이제꺼정.”

그러니께2년 전 여름에 기준이가 방씨의 행적을 알아내어 마침내 내를 찾아 왔을 때 크게 놀랐어. 그때 당연히 내가 모든 것을 다 말해 줬어야 혔지만, 내 나름 고심이 많다 봉게 만나기가 껄끄러웠단 말이네. 좀 미안허구마이.

지난 번 내 사위가 세상을 떴을 적에 이 사람이 와 가꼬 구창이가 내 외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야부렀으니, 내가 더 이상, 숨기고 도망갈 곳이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단 말이여. 당시 마음이 급한 쪽은 나였어, 기준이가 혹여 우리 그 애한테다 이것저것 물어 보고 무신 말이라도 해뿐다면, 내 입장에서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수습도 안 될 것 같드랑게. 혀서 내가 급히 그 쪽지 글을 건넨 거였어.“

우리 야도 요새 이 장관 얼굴 볼 때마당 어르신 생각이 낭께 궁금혀 죽것다 했어요. 어짯거나 인자 말씀해 주신당게 다행이어라우.”

기준은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나오는 개띠 해 섣달’, ‘마포 집을 들으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치승의 비밀 얘기를 먼저 듣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을 하며 물어보는 것을 잠시 뒤로 미뤘다.

 

치승이 몸을 일으켜 벽장문을 열고 책 한권을 꺼내었다. 오랜 된 듯 부옇게 바래있었다. 한지(韓紙)로 좀 두터운, 표지에 한자로 <草溪鄭氏 千戶長公派 族譜(초계정씨 천호장공파 족보)> 세로로 선명히 쓰인 필사본 족보 보첩이었다.

앞부분에 정배걸 시조에 대하여 나오고 역대 할아버지들의 이름과 내력들이 이어졌다. 기준 집안의 족보와 그 내용이 같았다. 그런데 중간에 접혀져 있는 쪽을 열어 보니 13세손 충청관찰사와 그 자손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14세손 숙겸에게 세 아들이 있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 족보에는 두 아들뿐인데 셋째 아들을 덧붙여 치승의 조상으로 올려 있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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