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3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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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13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1.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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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이 차관은 창밖을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후에 조용히 짧게 내 뱉었다.

내 뭐라 해야 되나? 흐흠.”

기준이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 나중에 책잡힐까 봐 가타부타 말을 안 하네 참.’ 기준은 퇴근을 하면서 꼭 해야 한다면 다른 계장에게 넘기십시오.’라고 말하며 관련서류 전체를 과장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과장이 노발대발하며 방방 뛰었으나, 그는 몸살 핑계를 대고 이틀 휴가를 내고 집에 틀어 박혔다. 그의 업무는 결국 옆에 있던 송 사무관이 맡아 하게 되었다. 기준은 뜨거운 감자를 떠넘긴 것 같아 마음이 찝찝하여 송 사무관을 쳐다보기가 영 민망하고 미안하였다.

 

초가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기준이 저녁을 먹고 아내와 같이 집 근처 체육공원을 산책하다가 집에 돌아와 9TV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첫 화면에 ㅇㅇ회 회장 부정선거 당선, 전격 압수수색자막이 뜨고, 이 회장이 겁을 먹고 허탈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 시간도 안 되어 기준이 뜬금없이 권남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 계장, 듣기만 해요. 우선 적어 보소. 이 차관 집, X0380X, 열쇠는 현관문 왼쪽 창 방충망 밑에 끼여 있어. 지금 당장 그 아파트로 달려가시게. 문 열고 들어가 베란다에 있는 두 개의 골프백 중에 갈색 골프백, 그거 무조건 들고 나와 정 계장 집에 보관해주게. 참고로 차관님은 부친이 위독하셔서 온 가족이 전주에 와 있으셔요. 나는 정기 감사업무로 여기에 장기출장 나왔다가 이곳 병원에 같이 있다오.”

기준은 도대체 어떤 영문인지 전혀 몰랐지만, ‘왜 하필 나야?’하고 투덜대며, 걸어 십 여분 거리도 안 되는 그의 아파트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과연, 베란다에 두 개의 골프백이 보였다. 바로 갈색골프백을 한쪽 어깨에 멨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없고 생각보다 좀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집 뒷 베란다 창고 한쪽에 넣어 두었다.

이튿날 아침 뉴스에 ㅇㅇ에서 김 의원실과 자택을 수색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사대가 바삐 오가고 있었다. 오전 9, 급기야 차관실도 압수수색에 들어가고, 이 차관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도 그의 아파트는 총무과장의 입회하에 이미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날 밤, 뉴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 ㅇㅇ회 회장 선거과정에서 경쟁자끼리 싸움이 붙었고, 선거에 진 쪽에서 김 의원이 이 회장을 밀어주었다.’는 투서고발을 청와대에 내고, 모 언론이 단독취재로 공개함에 따라 전격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그의 집에서 돈 상자가 나와 급기야 둘 다 구속이 될 것 같다. 이구창 차관도 연루된 것으로 보고 압수수색을 벌였으나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 -

이 차관이 일요일 오후 늦게 급히 올라왔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결국 차관의 부친상(父親喪)이 전해지고 그는 임종을 보지 못한 불효막심한 자식이 되었다.’라며 망연한 모습으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기준은 사실밀린 일이 많아 문상까지 갈 형편이 안 되었고 갈 마음도 크게 나지 않아 미적대고 있었는데, 권남중이 전화로 와야지. 뭔 소리야?’라고 정색하여 말했으므로 신승호 과장과 여럿이 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전주 터미널에서 권의 차에 기준과 몇이 동승하여 전주 남쪽 외곽에 있다는 이 차관의 본가를 향했다. 오후 네 시 반, 차는 전주천 남쪽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권 선배, 지금 길을 알고 가는 거지요? 여기 길이 눈에 좀 익네.”

난 두 번째 오는 거야. 저기 보이지? 왼쪽 골목 끝 한옥 기와집이야. 차관님 외할아버지가 지으신 거래. 칸 수도 많고 마당도 넓어, 대지가 한 오륙백 평은 조이 되는 것 같지 아마.”

마을 경로당을 지나 왼쪽 골목 끄트머리에 줄줄이 서 있는 조화(弔花)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준은 가슴이 퉁탕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슬 대문 문패를 보고기준은 갑자기 어지러워지며 혼돈에 빠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그러나 명백해졌다. 영정에 인사를 드리고 마주친 상주(喪主) 이구창 차관, 그와 맞절을 마치고 나와, 마루 왼쪽 방문 앞에서 마주친 눈에 익은 백발의 노인-망연자실하여 우두커니 먼 산을 보며 쭈그려 앉아 있는 치승-그분과 눈이 딱 마주쳤던 것이다. 당황해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기준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기준은 문상 온 선배 동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멍해 있었다. ‘설마, 그랬던 거야? 그분의 외손자가 바로 이구창, 기준이 초임 사무관 시절 그렇게 기준을 몰아세우고 갈구며 원칙만 내세우는 융통성 없는 자라고 비웃던. 그래서 기준도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며 욕까지 해대었던 그가.’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와 북적거렸다. 이 차관은 상주로서 문상객을 맞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정기출이 상주(喪主) 주변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기준은 기출이가 왜 거기에서 왔다 갔다 하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준 일행이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깨가 축 내려앉은 백발, 그분이 조용히 기준에게 다가왔다. 말없이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이윽고 몰래 종이쪽지 하나를 손바닥에 쥐어 주고 돌아섰다.

- 누구에게도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두어 달 후 시간을 내어 자네 아버지와 같이 한 번 다녀가게. 미리 전화 주시게. 063 2X4 5X78 -

이 차관이 좀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는 어수선했다. 장관이 보름 전 이미 갑작스레 폐암으로 입원하고 있었으므로, 이 차관은 삼우제가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 와 업무에 복귀하여 장관을 대신해 닥쳐온 국정감사에 전력을 다해 대처해 나갔다. 감사 막바지에 이미 구속되어 있는 김 의원에 대한 반대 당 의원들의 성토가 빗발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또 막대한 예산을 멋대로 불요불급한 자기 지역구 저수지를 막는데 썼다.’는 비판적 이야기도 흘러나오면서, 결국 과장과 송 계장에게도 불똥이 떨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기준은 과장과 함께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 송 계장을 앞세우고 의원 보좌관들을 찾아다녔다. 과장이 고개를 숙이며 사정사정하고 기준이 쪽지를 보여주며 설명에 나섰다.

보좌관님. 여기 송 사무관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보세요. 높은 데서 이 쪽지를 주니 마음이 약하고 여린 이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그리 한 것입니다. 과장 전결사항이라 위는 모르는 일입니다. 건드려 봤자 침소봉대(針小棒大)될 것이고. 이쪽도 뭐 역효과가.”

쪽지를 본 보좌관들, 평소 지역구 일을 자주 청탁해 오던 그들이 눈치가 빨랐다. 이게 누워 침 뱉기이고, 일개 사무관을 상대로 뭐 따져 봤자 의원들의 체면도 서지 않을 것 같고, 이미 수감된 김 의원을 비판해 봤자 실익이 없을 것 같으니까, ‘그만 넘어가자.’는 분위기를 만들면서송 사무관이 살아났다.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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