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12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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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12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11.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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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끈 12

 

김 과장은 이 신규 사업의 채택과 예산 확보를 위해 또 다른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는 기준을 대동하고 이 사업의 대상 지역구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질문지를 쥐어 주었다. 국회 상임위에서 경제기획원 부총리와 농수산부 장관은 왜 아직까지 전통식품을 개발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내용으로 질타하게 하였다. 사업추진의 필요성을 의원의 힘을 빌려 역설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작전은 주효하였다. 의원들의 질타에 부총리와 장관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게 되고 예산실이 마침내 움직이고,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지자체장을 독려하니 이전에 실사 팀이 조사한 곳 말고도 많은 곳에서 사업신청이 쇄도하게 되었다.

손 국장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자기 지역을 선정해 달라는 의원들의 여러 압력과 청탁을 적절히 선별해 막아내느라 진땀을 흘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기준은 비록 어려웠던 시간이었지만 김 과장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부()가 새로운 역할과 모습을 가지게 된 것에 자부심과 더불어 보람을 느꼈다.

* 필자 주 : 실제로 이 사업은 확장되어 식품국이 생기고 훗날 부()의 명칭이 식품이 들어간 <농림축산식품부>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에 <농산물가공산업육성법>이 제정되고, 후에 <식품산업진흥법>으로 바뀌었다.

순창군의 경우, 자기 집에서 각자의 전통비법으로 고추장을 담아온 여성기능인들을 모아 순창읍 백산리(88고속도로 주변)에 따로 조성한 <전통고추장민속마을>로 이주시켜 담그게 하고, 더 나아가 이 마을을 중심으로 고추장뿐만 아니라 된장, 장아찌 등 장유(醬油)산업을 체계적으로 확대발전시켜 장유의 메카가 되게 하였다.

 

1990년 초, 마침내 순창전통고추장을 비롯하여 보성 녹차, 청양 구기자, 풍기 인삼, 예천 지보 참기름, 합천 한과 등 <8개 도 15개 시범사업(보조50%+융자30%+자부담20%)>이 마침내 첫 삽을 떼기 시작하였다. 남원에서도 섬진강 상류부터 광양의 하류까지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는 매실을 수매하여 장아찌, 매실청, 매실주 등 전통식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사업계획이 시작되었다. 이미 확보된 공장부지에 공장을 건축하고 가공설비와 장비를 앉히는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어느 덧 초겨울, 남원 양 시장이 매실가공공장 준공식에 국장을 초청하고 기준이 손 국장을 수행하였다. 공장 정문 앞에 서 있는 기념비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에는 - 정치준·치승 형제가 1952년에 섬진강변의 3정보의 땅을 마을에 기부하였고, 1950년대 말 이곳에 동네 주관으로 매실을 심어로 시작하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비문 맨 밑에는 선명히 - 남원 시장 양덕만, 공장 대표 방진호- 라고 쓰여 있었다.

준공식 주요 내빈석에 백발의 치승 할아버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양 시장이 경과보고를 하면서 땅을 기부한 그를 일으켜 박수를 받게 하고 축사를 부탁하고 있었다.

 

골프백

치승 할아버지와의 접촉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가운데 기준의 시간은 답답하게 흘러갔다. 신승호가 1987년 이미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ㅇㅇ국에서 일하다가 1990년 ㅇㅇ국 기반과장으로 옮겼다. 1991년 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개각이 이뤄지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권토중래를 노리던 이구창 차관보가마침내 차관으로 올라섰다. 축하해야 했었지만, 기준의 마음속에는 예전에 그를 싫어하고 어줍지 않게 여겼던 생각이 떠오르며 그다지 썩 달가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도 결국 이리 올라가네. 참 끈질긴 생명력이야. 알아줘야 해.’

5월에 기준도 자리를 옮겼다. ㅇㅇ국에서 저수지를 막고 지하수관정을 파는 업무를 주관하는 개발과의 주무 계장이 되어 같은 국에서 신승호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기준은 옛적 일이 생각났다. 신 과장이 다소 달라진 것 같긴 했지만 기준의 머리 한 구석에는 어쨌거나 여전히 나쁜 기억과 앙금으로 남아 있어 그를 그저 사무적으로만 대했다. 기준은 주무 계장으로서 국·과의 업무를 종합하고 국회답변자료를 꼼꼼히 챙겼다. 특히 신 과장에게 책잡히지 않으려 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업무를 열심히 더 주동적으로 챙겨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국장 주관회의에서도 그는 예전과 달리 기준의 일에 대하여 가타부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저수지 개발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많은 농촌 지역구 의원들이 관심을 갖는 주요사업이었다. 책임은 막중하고 의원보좌관들의 전화가 자주 오고 토목건설업체들의 방문이 잦은 자리였지만, 예산실과도 늘 부딪치고 예산을 늘리기 위해 을()의 위치에서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준의 책상위에 경제기획원 예산실이 펴낸 <토목사업 예산지침과 편성요령>이라는 책자가 놓여 있었다. 기준이 이 책을 구하려고 애쓰던 참이라 눈이 확 밝아졌다. 누가 보냈는지를 알아 볼 겨를도 없이 책을 펴고 열독에 들어갔다. 그 책자 때문에 기준은 저수지와 관정, 그 밖의 토목사업에 관련된 예산을 편성하고 세부자료를 작성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다른 과 계장들을 불러 교육도 시켰다.

예산실 담당과장이 기준이 만든 예산자료를 보고 퍼펙트하다. 토목을 전공했나?’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과장이 위에 보고를 하고, 기획관리실장이 예산 관련 국장회의에서 기준의 사례를 칭찬하였다. 기준은 그제야 누가 이 자료를 갖다 놓았지?’ 하며 궁금해 하였다.

그 후에도 기준의 책상에는 저수지와 댐에 대한 실무 자료들이 놓여 있었고, 업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기준은 자료를 갖다 놓은 사람을 찾지 못했다.

 

7월 중순, ㅇㅇ협력과에 근무 중인 정기출이 부친상을 당하였다. 기준은 권남중의 차에 오강섭과 같이 기출의 본가인 안성에 문상을 갔다.

기출의 아버지는 안성에서 경찰서장까지 지내셨대요. 정년퇴직 후에 물려받은 배 과수원으로 가 귀농귀촌하신 거야. 그간 지병인 고혈압 증세가 많이 호전되어 갔다는데, 땡볕에 무리하게 일하시다가 그만.”

장남이더군. 근데 영정사진 보니까 기출이가 아버지와 모습이 좀 달라. 게다가 누나와 동생들도 안 닮았어. 기출이가 동생들보다 키가 더 크고 몸집도 다르더구먼.”

 

어느 날, 국장이 기준을 따로 불렀다.

정 사무관. 이 쪽지를 봐. 여기 이곳을 올해 사업의 목록에 넣어.”

? 거 꽤 큰 규모인데요. 아니? 설계도 아직 안 끝난 건데, 이미 작년에 설계가 끝나 착수에 들어가야 하는 사업도 못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거 누가 말한 거예요?”

이거, 보라고. 김 의원 지역구야. 거기에서 내려온 거네. 그냥눈 감고 넣어 두어, 원칙도 좋지만.”

국장님, 이건, 청와대가 말해도 안 되는 겁니다. 제 생각에도 안 맞고요. 나중에 감사라도 나오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내 모르는 일.’이라며 다들 빠져나가겠지요. 차관님께 말이라도 해놔야지요.”

어이. 이 사람, 그냥 넘어가. 그 양반 모르는 일이야. 그런 일로 애먼 차관님 힘들게 하지 말고. , 이 친구, 하여간에.”

기준은 옛적 초임사무관 시절 그에게 시달리던 일들이 생각나며 두려움에 다소 머뭇거리긴 했지만, 이제 고참 사무관이 되어 관록과 배짱이 제법 붙은 그는 숨을 고르고 용기를 내었다.

차관님도 그러실 테지만, 저희가 영혼까지 버리면서까지 그리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계속 남아 있어야 할 늘공 아닙니까?”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중국전문교수 7년,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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