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의시한줄(97)산동네에 오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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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의시한줄(97)산동네에 오는 눈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4.02.06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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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에 오는 눈

 

신경림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많이 온다

집고 꿰매고 때워 누더기가 된

골목과 누게막과 구멍가게 위에

눈은 쌓이고 또 쌓인다

때로는 슬레이트 지붕 밑을 기웃대고

비닐로 가린 창틀을 서성대며

남 볼세라 사랑놀음에 얼굴도 붉히지만

때와 땀에 찌든 얘기

피멍든 노래가 제 가슴 밑에서

먹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것도 눈은 안다

이 나라 온갖 잘난 것들 모여 들어

서로 찢고 발기고

마침내 저네들 발붙이고 사는

땅덩이마저 넝마로 만든

장안의 휘황한 불빛을 비웃으면서

눈은 내리고 또 내린다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오래 온다

신경림(1935~ ) 충북 충주 출생.

시집 : <농무>, <새재>, <가난한 사랑 노래>

 

하늘 아래 산동네는 눈도 많이 온다

사계절이 또렷한 우리나라는 참 복된 나라다.

그중에서도 겨울에는 모두 수고했다. 이제는 쉬거라하고 하얗게 눈을 내려주어 덮고 다둑이는 그 마음과 손결이야말로 따뜻한 겨울 속에 백미다. 그래서인지 겨우내 눈이 와서 눈의 나라로 만든 곳은 그 눈 속에서 꿈을 꾸고 깨끗한 눈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사람들은 순박하고 그 사람들이 가꾸는 농사 역시 잘 되었다.

또 눈이 오기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같은 기쁜 날에는 눈이 내려주기를 기다렸다. 그 눈을 밟고 발자국을 남기면서 고향으로 가고 싶었고, 그 눈을 머리에 얹고 <고향설>이란 노래를 부르며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그때마다 내려주는 눈은 분명히 아무런 소리가 없이 조용했으나 펑펑 숨 가쁘게 오는 눈은 큰소리 지름이 있었다.

이 나라 온갖 잘난 것들 / 서로 찢고 발기고 / 마침내 저네들 발붙이고 사는 / 땅덩이마저 넝마로 만든 (중략)” 그네들을 모두 깨끗이 덮어 버리겠다고 오는 눈이다. 그래서 나도 한마디 거든다.

난장이들아(꿈이 없는 사람) 이 못난이들아(놀며 먹고 사는 사람) 저는 녹거든 뛰어라, / 뛰어가서 모두 네 것으로 만들어 / 반짝이며 살거라 (중략)”

 

순창은 예부터 하늘 아래 높은 지역이어서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소위 삼방이라 일컫는 복흥, 쌍치, 구림 지역을 말하는데 이곳은 고원 지대여서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곳에 와서 뒹굴며 눈을 많이 내려놓고 가서 얼마 전만 해도 교통이 두절되고 이웃 간에 소식이 끊기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순창은 청정지역 산골이라 했고 이 지역 사람들은 사람이 순하고, 인정도 많고, 농사도 순하게 잘되고, 장수하는 고을이 된 것은 겨울마다 눈을 많이 내려준 하늘아래 고을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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