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26) 유등면 외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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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26) 유등면 외이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4.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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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이리(外伊里)는 유등면 소재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내이마을(안유등)과 외이마을(밖유등)을 통합해 외이리가 되었다. 동쪽으로 유촌리, 남쪽으로 풍산면 두승리, 북쪽으로 오교리, 서쪽으로 건곡리가 인접해 있다. 2021330일 기준 인구는 외이마을이 73가구, 117(남자 50, 여자 67)명이고, 내이마을은 38가구, 106(남자 38, 여자 42)명이다.

 

외이마을

 

외이마을은 정금산(停䑤山169m)이 주산이고 순창읍에서 내려오는 경천이 마을 앞에서 섬진강과 합수되는 산약수강(山弱水强)의 취락지다. 마을이 배() 형국이어서 강여울’(동북쪽 초등학교 부근), ‘배창들’(남쪽 들), ‘배나들’(동쪽 들) 등 배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마을의 번성을 위해 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세운 사람 키 높이의 정주석(배말뚝)이 서 있다(유등초등학교 옆). 마을 안에 우물을 파서는 안 된다고 하여 마을 주변에 공동우물 5개를 파고 나무를 1주씩 심었다고 하며,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다섯 샘에서 각각 당산제를 지냈다. 토착 성씨로는 남원 윤씨, 대구 배씨, 고령 신씨, 평택 임씨(순창관)가 있다.

외이마을 전경
외이마을 전경

 

내이마을

정금산이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다 남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구부러지듯 돌아서는 청룡등 안에 소쿠리 안처럼 마을이 형성되니 내이(內伊)마을이다. 고령 신씨(高靈申氏) 12대조가 처음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며 달성 배씨도 비슷한 시기에 입향했다고 한다.

내이마을 전경
내이마을 전경

온진정

온진정(蘊眞亭)은 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청백리(淸白吏) 신공제가 세운 누정이다. 이천(伊川) 언덕 위에 있다고 동국여지승람》ㆍ《여지지》ㆍ《옥천군지(1760)에 기록 돼 있다.

신공제(申公濟14691536)는 귀래정 신말주의 손자다. 할아버지 신말주 밑에서 글을 배웠고, 과거에 합격해 할아버지 곁을 떠나 서울 등지에서 벼슬살이하다가 신말주가 노환이 들자 외직을 자청해 능성(화순 능주) 현령으로 내려왔다. 능성과 순창의 거리가 가까워서 현감 신공제는 순창에 자주 와서 할아버지를 돌봤다. 1503(연산군 9)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능성현령을 사임하고 순창에서 3년 동안 여묘(廬墓)살이를 했다. 그때 온진정을 짓고, 스스로 이계주인(伊溪主人)이라 했는데, 호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유등 소재지 앞을 흐르는 물을 이계천이라 한다.

당시에는 섬진강 나룻배가 온진정 앞까지 들어오기도 했으며 강변 모래가 가늘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인근 시객들이 뱃놀이 등을 즐기면서 담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온진정은 세월이 흘러 터만 남아 있었는데 2019경천 고향의 강 정비 사업을 통해 복원되었다.

온진정
온진정

 

오세 육효 정려각

유등면 외이리 478-1번지에 있는 오세 육효 정려는 고려말 두문동 선비들의 주역인 충신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인 평택임씨 순창관(중시조는 임선미의 부친 임중연) 5대에 걸친 여섯 효자를 기리는 정문(旌門)이다. 6명의 효자는 임시채(林時采), 임양성(林養性), 임광수(林光洙)와 임종혁(林宗赫)임종빈(林宗彬) 형제 그리고 임환(林煥)이다.

임시채(중시조 중연의 14세손)는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여 보이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소생케 했으며, 선친 묘소에서 시묘하던 중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큰 호랑이가 임 씨를 보호하며 3년 동안 같이 묘를 지켰다고 한다. 또한, 영조 임금이 세상을 떠나니 곡을 하고 3년간 소복하여 순창읍에서 호세(戶稅)와 부역을 면제하고 쌀과 고기를 주어 표창했다.

임양성(15세손)은 아버지의 효를 본받아 실천했다. 아버지가 등창으로 신음하니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낫게 했다. 정조 임금이 승하하니 집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아침저녁으로 슬피 울며 능이 위치한 곳을 바라보며 곡하며 충과 효가 하나임을 보였다.

임광수(16세손)는 어머니가 병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지만 꿩을 잡지 못했다. 하늘이 효성에 감복해서인지 꿩이 품 안으로 날아들어 이를 잡아 봉양했다 한다. 아버지 시묘막이 10리 밖에 있는데도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식사 공양을 빼먹지 않았다.

임종혁과 임종빈은 17세손이다. 종혁은 집안 법도에 따라 행동하며 아버지 묘소에 시묘살이하다가 복을 벗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우 종빈이 뒤를 이어 3년 시묘를 마쳤다.

임환(18세손)은 임종빈의 아들로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해 맛있는 음식을 공양하는데 정성을 다했다.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아버지 묘를 찾아 곡했다.

1892(고종 29) 임시채임양성의 정려가 내려졌고, 다음 해에는 임광수임종혁임종빈임환 정려가 내려졌다. 1910년 외이리에 오세육효정려각(五世六孝旌閭閣)이 건립되었다.

오세 육효 정려각
오세 육효 정려각

 

전통마을 숲 복원사업

외이리는 지난 2017년 전통마을 숲 복원사업에 선정됐다. 전통마을 숲 복원사업은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마을 숲을 복원해 숲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 주변 경관과 연계해 산림관광자원으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외이마을 숲에는 수령이 3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1999년 지정)1, 150년 이상 된 느티나무 노거수 3본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 주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마을 숲 옆으로 섬진강 자전거 도로가 연결돼 많은 동호인이 쉬어가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외이마을에는 마을숲 느티나무 외에도 마을 입구(558-3번지)에 자리한 28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외이마을 숲
외이마을 숲

 

외이리 힐링공원

외이리 힐링공원은 주민 쉼터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공원 안에 파크골프장를 조성해 주민의 여가활동 기회를 높이고 있다. 순창읍유등면풍산면 주민의 숙원사업인 경천 고향의 강 정비사업하나로 지난 2019년 완공됐다.

외이리 힐링공원
외이리 힐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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