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3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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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3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08.23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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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 정문섭 장편소설
캘리그라피 : 뜨레 정명남
삽화 : 권동현

 

 

인연의끝

1: 인연

3

 

이구창 국장과 정기출 주사보

시월 초하루, 정부세종로청사에서 만난 총무과장이 기준을 장관실로 데려갔다. 인자한 모습을 띤 장관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였다.

농촌에서 자랐다니 농심(農心)은 있을 것이고, 여하튼 많이 생소할 거요. 이 공무원 사회에 빨리 적응하려면 세 가지를 잘해야 되네. 상급자 말 잘 들어 배우고,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고. 밑에 사람들 잘 챙기고 베풀어야 돼. 명심하시게. 들어 봤소? 노마식도(老馬識道)! 늙은 말이 돌아 길을 잘 안다 이 말이여. 특히 나이가 있는 아랫사람들 의견도 잘 경청하고 말이여. 경험도 중요하거든. 친하게 지내도록 해요.”

총무과장이 차관실로 그를 데려갔다. 차관이 마침 차관보와 몇몇 국장들과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올리자 차관이 임명장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뭐 그리 인사 안 해도 돼요. 허허!, 하여튼 우리 부에 온 것을 축하하네. 자네가 우리 부()를 희망했다니 고맙고. 정기준이라? 어이 이구창 국장! 동향이네. 순창이나 진안이나 뭐 같은 곳 아냐? 총무과장. 이 친구 어디로 보내? 기왕이면 엄한 이 국장 밑에 보내. 수습 좀 단단히 받게 해. 허허!”

기준은 임명장을 들고 인사계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각 과를 돌아 인사를 마치고 ㅇㅇ정책국장실 문 앞에 도착했다. 여비서 미스 리가 일어나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인사계 직원이 소개의 말을 하였다.

, 새로 오신 정기준 사무관님이야. 국장님 안에 계셔? 인사드리러 온 거네.”

아 예. 잠깐만요. 안에 총무과장님이 계시거든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방 안으로부터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나왔다.

국장님. 윗선에서 그리 한 거니 받아 주세요. 수습기간이 중요하거든요. 훈련 잘 시키시고, 챙겨주실 분은 이 국장님 말고 누가 계십니까? 하하! 착실해 보이긴 하던데요. .”

차관님 그 양반도 그렇지, 공개적으로 그리 말하니 내 안 받겠다고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원칙은 많이 배웠겠지만, 행정경험도 거의 전무한 사람을, 하필 나한테 앵겨. 참 내! 명이니 어쩔 수 없이 내 따르겠지만 말이오.”

기준 옆에 같이 서 있던 인사계 직원이 무안하고 어색해 하는 그의 팔을 잡고 복도로 나왔다.

못 들은 척하세요.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라잖아요. 잘 해내면 되죠 뭐.”

조금 후 두 사람이 국장실로 들어가려다 입구에 서 있는 기준을 쳐다보았다. 그중 나이가 든 한 사람이 그의 손에 있던 임명장을 보고 국장실로 데려 갔다.

국장님. 새로 온 사무관 왔습니다. 정 사무관. 국장님께 인사 드려.”

! 됐어요. 아까 차관실에서 봤어. 김 과장. 차관님이 말이야. 이 친구 잘 챙기라 하시데. 거 엊그제 유학 간 박사무관이 하던 거 농업후계자육성업무 그거 맡겨. 정 사무관 말이야. 앞으로 청와대 역점사업이 될 거니 잘 해애 돼. 그리고 앞으로 우리 부의 사정을 잘 알아 나가야 하는데, 이거부터 한번 해봐. 매일아침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에 나오는 우리 부 소관 내용, 그거 스크랩해 봐. 그리고 권형. 이 친구 직원들한테 두루두루 잘 인사시키게.”

첫 근무 사무실에 들어가니 세 명의 사무관이 악수를 청하였다. 모두에게 인사를 마치자. 권남중 주무주사가 그를 맨 왼쪽에 있는 앞자리에 안내해 주었다. 기준보다 네 살 많은 이강섭 주사를 비롯한 여럿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권남중은 기준을 따로 복도로 불러내 커피를 마시며 과내 직원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신승호 사무관은 53년생으로 사무관 6년 차요. 1년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왔어요. 정 사무관보다 두 살 어리네요. 나머지 윤 사무관과 송 사무관은 40대 초반으로 2년 차 3년 차 사무관입니다. 이강섭 주사는 홍성사람으로 5년 전에 본부로 올라와 일하고 있죠. 일 잘한다고 소문 나 있어 데려가려는 데가 많습니다. 뺏기지 마세요. 하하. 그 밑에 정기출 주사보는, 야아, 정 사무관님과 이름이 끝 자만 다르네요. 일가간인가? 나중에 족보를 따져보셔야겠네. 하하!”

권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뭐 아는 게 없어서 말이죠.”

점심때가 되자 권 주사가 기준을 이끌고 국장실로 왔다. 둘은 이 국장과 김 과장의 뒤를 따르며 청사 간부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 국장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조용히 물었다.

자네, 본이 합천 초계던데, 맞나?”

기준이 기다렸다는 듯 얼른 대답하였다.

. 그렇습니다. 천호장공파입니다. 31세손이죠.”

조 국장이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툭하고 던지며 물었다.

남원에도 초계 정씨가 있던데. 혹시 같은 집안인가?”

? 순창 우리 집안이 옛적에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긴 했지만 남원 쪽은 없는데요. 파가 같은 일가가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다른 데서 사시던 분이 남원으로 오셨을 수도 있겠지요.“

 

이튿날부터 기준은 바빴다. 아침 일찍 국장실에 배달되는 여러 조간을 읽으며 부서와 관련된 모든 기사를 스크랩하였다. 주요부분에 줄을 치고 다시 손 글씨로 요약한 것을 앞에 붙여 여덟시에 출근하는 국장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무덤덤하거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저 사무적으로 스크랩 자료를 대충 후려 보고 넘어 갔다. 그런데 2주일도 채 넘지 않은 월요일 아침 그가 갑자기 기준에게 질문을 툭 던졌다.

여기 나온 이 신문 기사 말이여. 무슨 말인지 말해 보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우리 입장은 뭐야?”

? 아 그게저기.”

이 사람아! 스크랩만 하면 다인가? 여기 온지 얼마야? 아직도 내용 파악이 안 된 거야. ? 가위질만 해 갖고 와?”

이 국장의 호통소리가 복도에까지 들렸다. 기준은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기준은 억울했다. ‘공무원 시작한 지 보름도 안 된 사람이 어찌 농업과 농촌정책을 이해하고 있겠는가? 보도 자료로 낸 것도 아닌 것을 이제 봤는데, 어찌 그 내용을 미리 알고 대답하겠는가? 이건 순 어거지야!’

기준이 국회 예상답변 자료와 기안 문서를 갖고 갈 때면, 국장은 일일이 문맥을 따지고 글씨 토씨 하나 숫자 하나하나를 따지며 하나라도 틀리면 거 보란 듯이 도대체 초등학교를 어디서 다닌 거야?’하고 비아냥하는 듯 표정을 지었다. 때로는 문서에 뭐가 잘못되었는지 큰 소리를 내어 질책하고, 급기야는 과장을 불러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좀 잘 가르치란 말이오.’라고 책망하는 소리를 하였다. 기준은 그때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국장이 그러나 국회나 외부행사에 가면 얼마나 굽실거리고 알랑대는지, 기준은 특히나 이 국장이 자기보다 윗선이라는 다른 부서, 국회보좌관이나 블루하우스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전화를 할 때면 허리를 깍듯이 꺾어 가면서 예스 멘 노릇을 하며 비굴한 웃음을 짓는그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다. 한 마디로 강에 약하고 약에 강한 전형적인머리 잘 굴리고 약삭빠른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여덟시 반이 되면, 기준은 늘 하던 대로 과장이 주관하는 계장회의에서 어제 한 일을 보고하고 오늘의 할 일을 보고하였다.

그런데 기준이 자기 차례가 되어 나름 챙겨 정리한 자료를 보며 말을 하면, 주무 계장인 신 사무관이 끼어들어 뭔가 보충하는 말을 하였다. 기준은 처음에는 업무파악이 잘 안 되어 있어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그 도가 지나치고 어떤 때는 기준의 업무를 자기 업무인양 말하고 자기가 과장이나 된 것처럼 간섭을 하는 것이었다. 기준은 같은 사무관으로서 체면이 많이 깎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불만이 쌓여 갔다. 이강섭 주사가 기준에게 화풀이를 했다.

아니, 계장님. 이게 뭡니까? 왜 우리 업무를 신 사무관 그 사람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합니까? 우리가 뭐 그 사람 부하여? 눈꼴시어 못 봐주겠네. 정말.”

기준은 이튿날 계 직원들과 저녁을 하며 권 주사와 자리를 같이 하였다.

권 선배님. , 요새 죽을 지경입니다. 그 신 사무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뭐 그리 아는 게 많은지안다생이예요. 안다생!“

아하. 정 사무관님도 힘드시나 보네. 유학 간 박사무관에게도 그러던데, 직속 후배라 그랬다고 보겠지만.”

이강섭 주사가 또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나이도 어린데, 더더욱 그러면 안 되지 않나요? 자기 일이나 잘하지. .”

그렇죠? 그 사람, 남의 일에 간섭 좀 안했으면 좋겠는데. 아 참 힘들어!”

정기출 주사보도 화가 나 한마디 하였다.

같은 사무관 끼리 그리 갈구면 안 되지. 고참이더라도 그렇죠. 내 언제 한 번 받아 버릴 겁니다.”

권 주사가 손을 내저으며 말리는 말을 하였다.

정 사무관님, 오시자마자 이런 복잡한 조직에 좀 맞춰가기가 힘들겠지만, . 어쩔 수 없죠. 참을 인, 허허하고 그냥 넘어가세요. , 이 사람들. 너무 그러지 마. 그러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나면 어찌 감당하려고 해? 입조심들 해 엉!”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 순창중(17), 순창농림고(25), 육군사관학교(31·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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