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인연의끈 4회-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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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연의끈 4회-정문섭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3.08.3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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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끈

1: 인연

4

·군에서 농어민후계자 대상자를 심사하여 추천하면 시·도는 취합만 하여 중앙에 올리고 중앙은 전체 숫자를 놓고 기계적으로 각 지방별로 분배하여 지원자금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기준은 일부 기초자치단체가 그저 지원대상 숫자만 늘리려는지 심사요건에 제대로 맞지 않는 농어민도 명단에 넣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국장에게 출장결과보고서를 올리며 결재 문서를 기안하여 국장실에 들어갔다.

어이, 이 사람아. 이리 기안하면 어찌 되겠나? 자네 말대로 정확히 하려면 시·군 담당자 혼자 너무 바빠서 야근만 하다 코피 터져. 그냥 나이 제한을 엄격히 지키고 농지가 없다는 내용이 포함된 본인 자술서나 잘 받아 챙겨 놓으라고 해. !”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나랏돈이 무자격자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냥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제가 그래서 한 달 간이라도 한시적으로 다른 직원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 철저히 조사를 하라.’ 이리 공문을 내리려는 거 아닙니까? 완벽히 해야 예산 낭비도 막고 감사에.”

이런 융통성 없긴. 사람들이 몰려와야 예산을 더 따 내지. 청와대가 그랬잖아. 많이많이 주라고, . 막혔어! 어이 참! 도로 가져가!”

기준은 평소에 원칙주의자에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봐 나름 조심하여 왔으나 어느 순간 국장이라는 위세에 밀려 그런 사람으로 몰리고 있었다. 기준은 늘 원리원칙에 따르며, 공정과 공익을 우선순위에 둔다.’ 이런 나름대로의 근무수칙에 충실하려 노력해왔건만, 국장은 이런 기준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기준이 업무 결재를 올릴 때마다 분명 합리적이고 또 문제가 없어 과장의 결재를 받았으나 의원이나 윗선의 뭔가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가끔 국장의 손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로 인해 쌓이는 갈등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점차 원칙을 거스르는 또 시도 때도 없이 은근히 트집을 잡는 이 국장에 대해 불만이 쌓이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대들 배짱도 없고 또 실력도 경험도 아직 부족한 기준은 스스로 분을 삭이며 끙끙 앓아야 만 했다. 기준은 그가 어딘지 모르게 의도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하고 트집을 잡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준은 아무도 없는 화장실로 가거나 청사 뒤 숲속에 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개나리 십장생!’ 육두문자를 써 욕을 해대었다.

 

첫 출근 후 기준이 이처럼 고난의 석 달이 지난 정초 무렵, 그는 권남중과 따로 저녁을 같이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요새 보니 얼굴이 뭐 반쪽이던데, 몸에 무슨 일 생겼소?”

아 그게. 보시다시피, 의사 말이 만성위장염, 신경성이라 하는데, 소화가 잘 안되어 좀 끌끌거립니다. 요새 그저 소화제로 버티고 삽니다. .”

아침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에이. 초임 사무관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몸이 남아 있어야지, 허허, 이러다가 진짜 병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게 말이오. 예전에는 늘 뛰고 달리고 그러다가 하루가 가고 몸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여기 오니 맨 날 책상머리에 쳐 박혀 있어야 하고 위에는 층층시하로 쌓여 계시지 아래로는 형뻘인 분들이 앉아 계시니 어디 운신할 데가 있나요? 특히 그놈의 스크랩 땜에 스트레스가 더 쌓이네요.”

거 참, 그 양반이 좀 까칠하긴 해. 내 좀 보니까 유독 거기에게만 독하게 구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까지는. 왜 그러시지? 뭐 짐작 가는 것 있으시오?”

글쎄, 뭐 그런 거 잘 모르겠고, 그냥 미운 털 박힌 거지. 막혔다고 하잖아요. .”

어쨌건 내 한 가지 요령을 가르쳐 줄게 그리하소. 공보실 미스 공, 알죠. 그 직원이 매일 조간을 스크랩해서 장·차관실과 1급 방에 보낸다 말이오. 한 부 더 복사해 달라 부탁해서 그거로 요약하면, 반시간은 벌 거 아니오? 아침도 거르지 않고. 하여튼 말이죠. 무시당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려면뭐 정책 자료 같은 거 많이 읽어 두세요. 그래야 견뎌날 거 아닙니까?”

아이고, 권 선배님. 제가 뭐 장관이요? 내 업무도 바쁜데 남의 업무까지 속속들이 다 알아야 하게. 저요. 그래도 근무 첫 주말부터 보따리 싸들고 다녀요. 아내한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말이죠. 하여튼 권 선배님. 좋은 팁을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근데 권 선배님, 한 가지 물어 봅시다. 고향이 어디세요? 경상도 싸나이신 것 같은데?”

아이고, 참 무심하시긴, 한 솥밥을 먹은 지 언제인데, 안동! 안동 권가입니다. 43년생, 해방 전이죠. 이제 보니 국장님의 신상도 잘 모르고 있겠구먼. 도대체 뭘 생각하면서 출근하는 거요? 국장이 뭐 그리 높다고 맨 날 어려워하고 쩔쩔매시오?”

권 선배님. 여기 오기 전 오랫동안 상명하복이 철저하게 밴 시간을 보내왔는데, 아무리 좋은 상관이라도 하여튼 어렵단 말이오. 과장님과는 이제 겨우 터놓고 속말을 하지만, 보시다시피 국장님이 어찌나 엄하신지, 꼼꼼히 따지고 트집이나 잡으려 하는 것 같고, 하여튼 여태껏 그 양반한테 칭찬 한 번 못 들어 봤단 말입니다. 맨 날 깨지다 보니 정신 줄 다 놓을 지경이라니까요. 게다가 나이도 열 살이나 차이가 나다보니 그 양반 앞에만 서면한없이 졸아들고 버벅거리게 되는 것을 어찌하겠소? 고향 사람? 이 조그마한 나라에, 그런 거 저 원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저 공평하게라도 대해주시면 원이 없겠네요. .”

그래도 참으쇼. 소신? 내려놓으세요. 아직은, 더 닳아지셔야 해. 허허.”

아이고. 그게 내 마음의 갈등이긴 한데, 알겠어요. 시간이 좀 지나야. . 그리고 권 선배님, 이번 봄 되기 전에 사무관으로 승진한다고요? 다른 동기보다 빠르다 들었는데, 시험을 잘 본 모양입니다. 하여튼 축하드립니다. 이제 사무관을 달게 되셨으니 저한테 이제부터 말 놓으시죠. 여덟 살이나 어린 제가 오히려 불편하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서른아홉에 관()을 달게 되네요.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뭐. 관서에서 좀 일찍 올라오다 보니 시험을 빨리 보게 된 거죠. 첫 시험에 덜컥 되고 보니, 나이 있으신 선배님들한테는 좀 미안하죠 뭐. 말 놓으라고요? 까짓 거 그리합시다. 그래도 임명장 받고 나서. 허허.

이제 행정공무원으로 새 출발했으니 새 환경에 맞게 처세를 좀 하세요. 자기 생각이 다 옳을 것 같지요? 국장도 닳고 닳다보니 또 높아지려니 그런 처세술로 바뀐 거겠죠. 타락했다 해야 되나? 그리고 원칙? 그거 좀 둥글둥글, 직원들과도 술자리도 좀 갖고, 국장한테는 동향이라며 좀 친근하게 굴고 아부도 적당히 하고 뭐 좀 그래야지, 정말이지 원. 이리 뻣뻣이 살다간 숨 막혀 죽을 거요. 옆에서 봐도 갑갑해. 아이고!”

제가그리 막혔나? 아부? 거 아무나 못해요 허. , 근데 국장 이 양반은 어떤 분입니까?”

이 국장님? 국장들 중 최고참이죠. 1급 승진 영순위인데 윗사람들에게 잘하니 뭐 아무래도 차관은 하시지 않겠어요. 더 나아가 운이 되면 장관도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장관감인지는. 글쎄요. 아랫사람에게 좀 꽝꽝 소리치는 게 좀 그렇긴 하죠.”

허 참! 나한테만 그리 꽝꽝거리나 했더니. 하여튼 난 힘들어 죽을 지경이요.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겨우 한다는 게 뒷산에 올라 혼자 CZ팔 씨부렁거리고, 저한테 이리 편하게 대해 주시는 권 선배님한테나 신세타령하는 거지 어디 가서 말하겠어요. 어휴! 정말. 그 양반이 업무를 잘 하게 하고 능력을 키워 주려고 그런다? 그건, 아닌 거 같단 말입니다. 어휴 어디로 도망을 가던지 해야지 뭐. 나 원.”

어디로? 다른 데 간다고 뭐 좋아질 것 같아요? . 들었는지 모르겠소만, 첫 인상이 원칙 맨, 좀 막힌 사람이라고들 소문이 나 있어요. 물론 좀 바꿔지긴 했다 머 이런 말이 들리긴 합디다만, 차라리 여기서 잘 단련하고 지내는 게 훨씬 나을 거요. 그리고 말이죠. 나이 어린 신 사무관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려면실력을 키우셔야 해요. 공부를 더 하셔야 한다 이 말입니다. 하하.”

실력! 공부! 하 그러긴 한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나요? 시간도 좀 지나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해야죠 뭐. 한 가지, 국장님의 집안내력을 알 수 없을까요? 본적이라든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제가 뭣 땜에 맨 날 깨이는지, 좀 궁금해요.”

거 뭣하게요. 간단해요. 본적이 진안인 거 아시죠? 어디 보자. 메모해 놓은 게, 부모가 전주에 사시고, 외갓집도 전주네. 21녀 중 장남이구만. 학교는 서울에 있는 대학 나오고. 뭐 그 정도 밖에.”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 정문섭 박사 이력

1951년 적성 고원 출생

-적성초(27회), 순창중(17회), 순창농림고(25회), 육군사관학교(31기·중국어 전공)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어학연수원(중국어),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관리과정 수료

-1981년 농수산부 행정사무관 공직 입문, 2009년 고위공무원 퇴직

-1996~2000, 2004~2007 중국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농업인재개발원 원장, 한국수산무역협회 전무이사, 한국농업연수원 원장, 건국대 충주캠퍼스 겸임교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네팔 자문단 포카라대학 교수 파견

-<한·대만 농지임대차제도 비교연구>(1988, 대만 국립정치대학 법학 석사학위 논문)

-<한·중 농지제도 비교연구>(2000, 중국 농업대학 관리학 박사학위 논문)

-<인문고사성어>(2013, 이담북스, 415쪽)

-‘공무원 연금’(월간) 공모 연금수필문학상(2019) <안나푸르나 봉, 그곳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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